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효와 충과 경로사상을 뿌리의식으로 하여 예의를 지키면서 살아온 민족입니다. 즉 부모님께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하며 노인과 어른을 공경하는 숭고한 전통을 신명처럼 여긴 세계 인류 중 가장 예절바른 심성이 착한 민족입니다. 그러나 시대의 변천으로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뿌리의식인 효친경로사상이 사회구조가 산업화, 도시화, 핵가족화 되는 서구적인 사고방식으로 변모하면서 백의민족의 결백성과 동방예의지국으로서의 자랑스러운 우리 민족의 역사와 전통은 소멸위기에 처한 것만 같아 매우 염려되는 바가 큽니다. 이로 인하여 효 사상은 점차 퇴색되고, 노인 경시 풍조는 더욱 고조된 나머지 부모나 노인들은 거추장스럽고 귀찮은 존재로 전락되어 심지어는 노인과 부모를 구타, 또는 무참히 살해하는 잔인무도한 사건이 발생하는 등, 도덕은 위험수위를 오르내리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나라 이름조차 모르는 국민을 양산하는 교육이라면 애국이 무엇이고 효도가 무엇인가를 어찌 깨달을 수가 있을까 싶습니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마음을 가르쳐 기르는 행위를 교육이라는 뜻으로 정확히 가르쳤다면 어찌 부모님을 외면하고 불효하는 자녀들이 있을 수 있을까요? 1인당 국민소득이 3만5천불, 세계경제 10위권을 넘나드는 생활 속에서 사람 사는 도리를 깨닫지 못하고 오직 물질적 풍요를 쫓으면서 육체적 본능만을 충족하는 것만이 인생의 가치이고 행복이며 이상인 것 같은 착각 속에 살아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물질보다는 정신을 소중히 여기는 인간본성을 되찾는 자세로 전환해야 할 시점에 와 있습니다. 물질적 추구는 악의 길이며 악은 인간원조의 소산이기에 악한 생각을 반드시 고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의 뿌리는 효를 바탕으로 한 것이기에 이를 강도 높게 교육시켜 이 땅에 다시 뿌리를 내리게 해야 하겠습니다. 가정에서 효심의 뿌리가 내려야만 가정이 안정되고 사회와 국가가 안정됩니다. 왜냐하면 가정과 국가는 일치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효는 부모에 대한 존경심과 공경해야겠다는 예절의 근본으로써 서양의 단순한 자식 된 의무로써 물질적 부양과는 사실상 그 이념이 다릅니다. 영국의 석학인 아놀드 토인비 교수는 역사발전의 원동력은 도전과 응전에 있다고 금세기에 살고 있는 인류 모두에게 경고했습니다. 이렇게 말한 토인비 교수는 우리나라의 효친경로문화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한국에는 수출품이 많지만 영국에 수입하고 싶은 것이 꼭 있다면 그것은 바로 부모님께 효도하고 어른을 공경하는 한국의 대 가족제도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요? 토인비 교수까지도 부러워한 우리민족의 전통적인 효 윤리는 우리 의식 속에서 점차 무관심하게 된지 오랜 것 같습니다. 일제 36년과 6.25전쟁을 겪으면서 우리의 전통적 윤리와 도덕성이 일차적으로 붕괴된 60~70년대의 급격한 산업화 단계에서 철저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현대사회에서 더 한층 강도 높은 ‘효’ 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효는 예로부터 만행의 근본이라 했습니다. 모든 인간행동의 근본이 될 수 있는 이러한 효는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부모님과 노인문제가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문제되고 있는 시점에서 왜 효가 중요하고 또한 시급히 효친 경로사상의 정립이 국가 사회적으로 해결되지 않고는 안 될 절실한 과제인 시대적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한국의 전통문화에서의 효와 조선시대에서의 경로정책에서 과거 우리 한민족이 효와 노인문제를 국가 정책에서 얼마나 강력하게 다루었는가를 사료를 통해 고찰해 보았습니다.
한민족은 수 천 년을 생존해 오면서 예절을 중시한 민족입니다. 그러기에 한민족은 무엇보다도 효와 경로사상 속에 예절을 인간가치 기준을 가늠하는 척도로 삼아왔고 이를 바탕으로 한민족 의식 속에서 뿌리 깊게 전승되었습니다. 예로부터 뿌리 없는 나무 없고 근원 없는 물이 없는 것입니다. 부모님 없이 태어난 인간은 존재 할 수 없습니다. 뿌리가 상하면 나무가 자랄 수 없고, 물의 근원이 마르면 물이 흐를 수 없습니다. 효친 경로사상의 붕괴는 인간성의 상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한민족은 옛 부터 효와 충과 경로의식이 투철한 예절과 예의를 존중한 민족입니다. 효 사상이 고취되기 시작한 것은 삼국시대 교육기관을 통해서였습니다. 조선시대의 임금조차도 스스로가 효에 실천자로 여기고 행동해야만 했습니다. 또한 효행을 장려하기 위해서 각종 제도가 만들어졌습니다. 관리에게는 부모님을 돌보기 위한 휴가를 주었으며, 노부모님을 모신 관리는 부모님의 거주지로부터 너무 먼 곳으로 부임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 밖에 효행자 들에게는 관직을 내리거나 세금과 노역을 면제 하는 등 여러 가지 혜택을 주었습니다. 그럼으로써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효에 관한 사상이 뿌리내리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우리 민족은 수 천 년 간 효, 충, 경로사상이 투철하여 면면히 단절되지 않고 오늘에까지 이어 왔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경제와 산업의 급속한 발전에 힘입어 세계의 손꼽히는 무역국이 되었고 국민의 소득과 생활수준도 선진국 대열에 진입할 만큼 물질적으로는 풍요롭고 윤택해졌습니다. 이로 인해 삼강오륜의 명맥은 이제 그 생명을 잃게 될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유교에서 말하는 공자는 기원전 551년에 태어나서 효를 강조했고 한국에 성리학이 들어오면서 죽은 부모에게 제사를 강요했지만, 그러나 성경은 공자보다 1000년 앞서 태어난 모세를 통하여 십계명을 주시고 제 5계명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강조했습니다. 당연히 효는 성경적 가르침이 먼저인 것입니다. 진정한 효도는 죽은 자에게 제사하고 밥상을 차리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실 때 잘 해드려야지 죽었는데 백날 무덤에 찾아와서 술 부어놓고 북어 대가리 갖다놓은 들 산짐승만 좋아하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효도의 가르침은 불교에도 있고 유교에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기독교만큼 효도를 강조하는 종교는 없습니다.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그의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여러분, 세상의 어떤 종교에서 불효하는 자식을 죽이라는 종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만큼 효도를 강조하는 종교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미국의 중, 고등학교에서 부모공경을 가르칠 때 가장 많이 인용하는 인물이 조지 워싱턴 대통령입니다. 워싱턴은 바다를 벗 삼아 세계를 항해하는 멋진 선장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는 선원으로 취직해 먼 뱃길을 떠날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를 찾아가 작별인사를 드렸습니다. 아들과의 이별이 아쉬워 슬피 우는 어머니를 보고 워싱턴은 마음을 돌렸습니다. '어머니의 눈물과 내 꿈을 바꿀 수는 없다.' 워싱턴은 항해를 포기했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아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하나님께 축복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사랑하는 아들의 앞길이 평탄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실 것이다” 간절히 축복했습니다. 결국 효자 워싱턴은 ‘선장’대신 1789년에 미국초대‘대통령’이라는 복을 받았습니다. 이보다 더 높은 지위가 어디 있으며 이보다 더한 성공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에게 ‘장수’와 ‘명예’라는 이름의 복을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