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마태복음 13:24~30)
사람은 외모를 보고 쉽게 판단하고 정죄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십니다. 선지자 사무엘도 이새의 아들 중에 왕의 후보를 고를 때 외모로 판단했으나 하나님은 “마음”을 보시면서 다윗을 택하셨습니다. 외모 밖에 볼 수 없는 우리는 교회생활에서도 형제를 잘못 판단하고 정죄할 위험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 안에는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가라지 비유”입니다. 곡식 씨앗을 뿌린 밭에 원수가 몰래 와서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습니다. 결실기가 가까워 “가라지”가 함께 자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 일꾼들은 주인에게 물었고, 주인은 곡식이 다칠 수도 있으니 추수 때까지 그대로 놔두라고 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현재로써는 누가 알곡이며 가라지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 애꿎은 가라지 찾기는 그만 두고 자기 신앙을 성실하게 지켜가야 할 것입니다.
첫째,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라지는 줄기와 잎이 곡식과 비슷해서 육안으로는 쉽게 구분할 수 없고 열매가 열려야만 비로소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교회 안에도 거듭난 알곡과 거듭나지 않은 가라지가 함께 자라고 있지만 잘 구분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판단할 권한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마태복음 13:24~25; 고린도후서 5:10). 그러니 우리로서는 더더욱 함부로 판단하지 말고 모두를 형제로 대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충실한 열매를 주렁주렁 맺어야 합니다.
주인은 풍성한 열매를 기대합니다. 그러므로 밭에서 자라는 곡식이 뿌리를 내려 충실한 열매를 맺듯이, 우리도 교회 안에 깊이 뿌리내리고 성장해서 충실한 열매를 맺어가야 할 것입니다(마태복음 13:30; 잠언 24:19).
셋째, 하나님의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밭에서 자라는 곡식이 낮의 더위와 밤의 추위, 가뭄이나 병충해 등을 견디면서 충실한 열매를 맺듯이, 우리도 힘들고 어려워도 추수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때가 이르면 우리 주님께서 알곡인 우리를 천국 창고에 들이실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마태복음 13:30; 갈라디아서 6:9)
성도 여러분!
가라지 비유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교회 안에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로써는 누가 알곡이며 가라지인지 알 수 없으니 우리는 서로를 함부로 정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애꿎은 가라지 찾기 대신에 자기 신앙을 성실하게 지켜가야 합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추수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