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웨슬리는 교회의 본질과 기능, 그리고 교회 형태에 관하여 깊은 연구 끝에 새로운 이해를 갖게 된다. 그것은 교회가 단지 어떤 형식이나 제도라기보다는 보편적인 이해를 가진 성도들의 모임이며, 또한 하나님의 성령으로서 능력 받은 공동체라는 것이다. 웨슬리는 바울이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하는 에베소서 4장의 말씀을 근거해서 교회를 “하나의 믿음과 하나의 소망을 가지고 한 세례를 받고, 또 한 영에 의해 연합된 사람들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사람들 모두”로 정의하고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한국교회는 진정한 의미에서 모이는 교회도, 흩어지는 교회도 아닌 오히려 집단주의적으로 모이는 교회와 개인주의적으로 흩어져 버린 교회, 즉 ‘공동체 없는 교회’로 전락해 버렸다는데 그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은준관은 지적하였는데(은준관,《교회·선교·교육》(서울: 전망사, 1982), 102.) 한국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의 본질은 잘 짚어 주었다고 본다.
그 이유는 교회의 본질인 ecclesia(선택된 무리의 모임)에는 세상으로부터 구분되어 모이는 교회인 선택(Called out)의 차원도 있지만 동시에 다시 세상으로 보냄을 받고 흩어지는 파송(Called into)의 차원을 함께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ecclesia로서의 교회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나선 사람들의 모이는 행위와 함께 하나님의 파송에 응답하고 나선 사람들의 흩어짐 속에서 그 생명력이 약속된다. 그러나 이 모이고 흩어지는 구조(Come and Go Structure)는 서로 관계없는 형태가 아니라 진정한 ecclesia인 공동체의 교회(Gemein Kirche)가 갖는 구조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에 대한 개념을 신학적으로 정리한 것이 바로 ‘교회 안의 작은 교회’(ecclesiolae in ecclesia)이다. 여기에서 ecclesiolae는 “말씀 안에서 살며 또 경건의 훈련생활 아래에서 살면서 많은 무리 가운데서 특히 성결의 누룩이 되고자 노력하는 세례받은 자들의 작은 자발적인 집단들”을 의미한다.
마틴 루터(Martin Luther) - 필립 스페너(Philip Jacob Spener) - 루드비히 진젠돌프(Ludwig Von Zinzendof) - 존 웨슬리(John Wesley)로 이어지는 “교회 안의 작은 교회”는 교회의 체제를 친교(만남)와 선교(봉사)의 구조로 변혁해 나가는 1차적인 개혁뿐만 아니라 그 안에 많은 창조적인 선교 공동체를 구성하는 이중 전략(Double strategy)을 의미하는 것이다. 루터는 《독일 미사와 예배규정》의 서문에서 세 가지 예배가 있다고 하면서 그 세 번째의 예배를 마치 신약교회의 가정교회와 유사함을 피력했는데, “…세 번째 종류의 예배는 오직, 진지하게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갈망하며,…어떤 집에서 만나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세례를 받고 성찬에 참여하며 교회와 다른 일들을 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핸드릭 크래머(H. Kraemer)는 이 “교회 안의 작은 교회”를 가리켜서 “순수한 기독교적 세포 조직”(Genuine christian cells) 혹은 “그리스도 중심의 형제됨”(Christocentric fraternity)이라고 일컬음으로서 신앙 소공동체에 세상을 선교(봉사)하기 위하여 분화된 공동체로서의 의미를 부여하였다.
이와 같이 ‘작은 교회’(ecclesiolae)를 통하여 교회(ecclesia)의 참 모습을 회복하려는 신앙 소공동체 운동은 기구화되고 제도화되어 버린 교회에 대한 교제(Koinonia)와 선교(Mission)의 회복운동이요, 종파화되어 도피적 성격을 지닌 교회에 대해서는 역사적이고 선교적 소명의 회복운동이요, 공동체성을 상실한 교회에 대해서는 공동체성의 회복운동이요, 나아가 교회의 개혁과 갱신(Renewal) 운동이다.
선교적 관점(Perspective)에서 교회는 끊임없이 이 세상을 향하여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과 생명과 정의의 복음 선포와 나아가 복음의 본질인 억눌린 자를 자유케 하며, 병든 자를 회복시키며, 귀머거리를 듣게 하며, 죄와 고통의 세계로부터의 진정한 해방을 도와주어야 한다. 역사적으로 부흥(revival)과 침체를 쉴 새 없이 반복해 온 교회는 복음에 대적하는 이 세상과 사단의 세력에 대항하여 승리를 쟁취해 왔다. 그 시대의 교회는 교회에 허락하신 사명인 교회 본질 회복과 특권인 세계 선교의 사명을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신실하게 감당해야 한다.
사도행전 1장 8절에는 기독교 신앙의 전파 계획에 대한 비전이 제시되어 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은 유대와 사마리아를 거쳐 땅 끝까지 퍼져갈 것이었다. 선교운동의 시작은 성령강림으로 가능했고, 단 회적이며 역사적인 성령강림 사건은 교회의 기원이 되었다. 그리고 당시의 교회는 곧 선교를 의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