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에 이은 2016년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이 인용되자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가 주도하는 극우 세력은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의 연패에도 불구하고 2019년 2월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손을 잡고 이른바 광화문과 청와대 입구에서 태극기 집회가 본격화되면서 대한민국은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는 이념 선동으로 몸살을 앓았다.
전광훈 목사는 ‘자유통일당’이라는 정당을 만들어 권력을 통해 세력을 확장시키고 자신의 이념을 강제하려는 인상을 세속 사회에 심어 주었다. 진실된 기독교인이라면 ‘유배지’에 살고 있음을 인식하고, 나그네로서 선을 행하고 거룩함을 지키는 십자가의 방식을 따라가야 함에도 전 목사와 그의 동조자들은 완전히 예수 정신에서 역주행하고 있으니 말이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기독교는 전부 보수적인 성향인 줄 알았지만 막상 개표 결과 실제 그리스도인들의 정치적 지향은 보수와 진보가 비등했다. 당선자 가운데 그리스도인은 100명 내외인데, 이들 중 절반 가량이 더불어민주당 소속이었다. 또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특히 보수 진영 후보에게 투표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자유통일당은 그 때도 국회 입성에 실패했다. 이유는 분위기와는 달리 실제 투표자가 너무 미미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의 두드러진 변화 중 중대한 것은 한·일 관계이다. 일본을 향하여 상상을 뛰어넘는 굴종 외교를 국민과 합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성사시켰다. 일본의 대한(對韓)외교는 의구(依舊)한 채로 말이다. 그 뿌리에는 친일 식민사관(親日植民史觀), 역설적이게도 이명박 정부를 탄생시킨 뉴라이트 운동이 함께 내리막길을 걷다가 몰락했는데, 국정 경험이 전무한 윤석열 정부가 엉겁결에 집권하자 이명박 정부에 참여했던 뉴라이트 인사들이 대거 재등용되면서 국정운용 철학이 식민사관의 부활을 노골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정적인 예가 대한민국 건국과 초대 대통령 이승만 국부론(國富論) 띄우기다.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이 대표적이다.
필자는 이승만 정부 때 중·고·대와 36개 월의 군 생활을 육군 헌병으로 복무했으며, 교직 생활 초기에 3·15 정부통령 부정선거로 독재 정권이 무너지는 4·19혁명을 몸소 경험하였다.
사관보다 중요한 것은 상식이고 진실이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헌법 유린과 정적 제거, 6·25 한국전쟁의 과오와 양민학살 등 증거와 증인에 의해 이미 역사적 판독이 끝난 상태임에도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의 날을 건국일로, 이승만 전 대통령을 국부로 추앙하여 우남 이승만기념관 건립을 정부 차원에서 추진 중이란다.
우리 대한민국 헌병 전문(前文)의 서두를 상기해 보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헌법 전문은 대한민국 헌법의 조문(條文) 앞에 있는 공포문이다.
헌법 제정의 역사적 과정, 목적, 헌법 제정권자, 헌법의 지도 이념이나 원리 등을 규정하고 있다.
이 전문 서두에서 뽑아낼 수 있는 ‘건국일’(建國日)은 1948년 8월 15일이 아니라 1919년 3월 1일 기미 독립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나 전국적인 만세운동으로 뒤덮였으며, 일본 군경의 반격과 제압 또한 잔인하여 사상자와 투옥된 독립투사들이 속출했다.
1898년 독립협회 운동기에 처음 시작된 의회 수립 운동이 1919년 4월 11일 중국 샹하이에서 제1차 임시의정원 29명이 모여 개최됨으로써 대한민국은 건국되었다. 의정원·초대 의장에 이동녕, 부의장에 손정도를 선출했다. 그날 회의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제정하였다.
‘대한’은 일본에게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다는 의미가 있으며, ‘민국’은 군주제가 아닌 ‘공화제’ 국가임을 분명히 규정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국민은 10월 3일을 개천절, 건국일은 1919년 4월 11일로 통용되어 온 근거가 헌법 전문 “3·1운동으로 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이라고 명시하고, 또 국가적 인식인데, ‘건국일’(建國日)은 1948년 8월 15일로 주장하는 것은 1948년 정부수립 후 친일부역자를 주축으로 창당된 자유당의 후예로 이어져 온 현 여당과 뉴라이트들이 과거 친일 활동으로 영화를 누렸던 치욕의 역사를 감추고, 미화· 왜곡하기 위한 포장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승만 국부론은 더욱 부당하다. 일제 강점기에 잠시 상하이 임시정부 대통령직을 제외하고는 주로 미국에 체류하면서 유학과 정치활동을 했다. 1948년 실시된 총선거에 당선되어 국회에서 초대 대통령에 선출되었으나 재임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부부만 대전, 대구, 부산으로 도주했으며, 전쟁 중에도 권력에 눈이 어두워 ‘발췌개헌안’, ‘사사오입 개헌’안을 불법으로 통과시켜 재선·3선에 올랐다.
4선 도전은 종신 대통령 추대안으로 무투표 당선되었으나 4·19혁명으로 하야 후 하와이로 망명한 헌법 유린자이다. 그래서 헌법 전문의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는 글은 이승만의 실정(失政)을 자손만대에 각인시켜 주는 경구이기도 하다.
역사(history)는 아무리 슬픈 것이라도 정직하고 진실되어야 정사(正史)가 된다.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역사는 변명, 미화, 왜곡, 축소 일변도다. 일제 강점기 친일 배족(背族)의 역사는 깊이 숨기고 해방 후 대한민국의 보수파로 주류를 형성하여 반대 또는 비평하는 정언(正言)을 향해서 초법적인 가해는 물론 빨간 색깔을 입히고 매도하는 기울어진 역사가 대한민국의 현대사이다.
필자는 이 글을 쓰는 것은 한 사람이나 한 집단을 매도하려 함이 아니다.
우리 안에 있는 반지성적, 반역사적 식민사관을 바로잡아 줌으로써 정사(正史)에 빛나는 대한민국과 기독교 전체를 진리 위에 세우기 위함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 정신이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 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갈라디아서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