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남’ 작가가 쓴‘열아홉 살이 사랑을묻다’는 책이 있다. 젊은이들이 흔히 하는 질문이 있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나요? 사랑은 죽을 때까지 변하지 말아야 하지 않나요?”하는 거다. 이에대해 강희남 작가는 “사랑도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글을 써 내려갔다. 신혼 초에는 어떤가? 그때는 사랑이 제일 쉽다고 생각한다. 초가삼간에 밥만 먹을 수 있어도 두 사람이함께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아진다.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하는 것처럼 신혼 때는 “사랑이 제일 쉬워요.”하는 생각을 가진다. 그러다가 2,3년이 지나며, 아기를 낳고 아기 키우는 일에 온통 시간을 빼앗기게 된다. 양육하는 일로 다툼이 생겨난다. 말다툼과 의견 충돌이 잦아진다. 그러면서 “사랑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나만 사랑하겠다고 해놓고, 사랑이 변했어! 어떻게 사랑이 변할 수 있지?” 그러다가 결혼 5년, 10년 차가 되면서 가지는 생각이 있다. “사랑이 어렵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관계가 ‘부부관계’라는 사실도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그리고 부부로 평생을 함께 살아오신 부모님이 존경스러워진다.
또 한가지 깨닫게 되는 사실이 있다. “사랑은 가시밭길과 같다.”는 것이다. 멀리서 보이는사랑은 꽃길이다. 하지만 사랑은 가시밭길이다. 왜 사랑이 가시밭길일까? 인생길에 ‘가시’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직장에도, 교회에도, 심지어는 가정에도 ‘가시’가 숨어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가시’가 되기도 한다. 믿었던 사람이 가시처럼 찔러댈 때가 있다. 때로는 사랑하는 연인이 가시처럼 찔러댈 때가 있다. 그럴지라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깨닫게 되는 사실이 있다.
“사랑은 가시밭길과 같다.”는 것이다. 최전방에 지뢰가 매설돼 있듯이 우리 인생에는 ‘가시’가 숨어 있다. 가시 같은 ‘사람’이 있다. 평소에는 가시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가시는 보이지 않고, 꽃만 보인다. 가시가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로 교제가 이루어지며 ‘가시’가 드러난다. 그리고 서로의 생각과 감정이 충돌하면서 하면서.. ‘가시’에 찔리게 된다. 가까이하면가까이할수록, 더 깊이 찔리게 된다.그럴 때 사람들이 취하는 방법은 주로 2가지이다.
1) ‘무시’이다. 상대방을 무시하는 것이다.상대를 무시하며, 아픔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한다. 그리고 다시는 상처받지 않으려고 한다.
2) ‘계속’ 사랑한다. 아무리 가시처럼 찔러대도.. 참고, 인내하며, 여전히 사랑하고, 믿어주고, 받아준다. 그런데 문제는 가시에 계속 찔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계속 아프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우울증이나, 조울증, 불안장애’과 같은 정신질환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현대 의학에서는 “아픔을 주는 환경에서 떠나라.”고 조언한다. 그런 환경을 떠나 있으라는 거다. 괴로움을 주는 사람을 피해있으라고 한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그런 환경이 ‘가정, 직장’이고 그런 사람이‘가족’이기 때문이다. 떠나고는 싶지만, 어떻게 가정과 직장을 떠날 수 있나? 나도 피하고 싶은데 어떻게 가족을 피할 수 있나? 나도 무시하고 싶지만, 무시할 수 없는 ‘환경’이 문제라고 하는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발표한 책에 ‘고슴도치 우화’가 나온다. 이때 등장한 말이 ‘고슴도치 딜레마’(Hedgehog's dilemma)라는 용어이다. 고슴도치는 다른 존재에게 가까이 가고 싶어도.. 몸에 난 ‘가시’ 때문에 가까이 갈수가 없다. 가까이 가면 갈수록 상대방을 찔러 대기 때문이다. 이것이‘고슴도치의 딜레마’라는 것이다.
‘고슴도치 딜레마’라는 말은 타인에게 다가가기 힘든 ‘두려움’을 대변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말이 과거에만 사용된 용어가 아니라, 요즘도 심리학자들에 의해 종종 인용되고 있다. 날이 가면 갈수록, 남에게 상처를 주기도 싫고, 받기도 싫어서 혼자 고립되려는 고슴도치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거다. 최근 ‘1인 가족’의 출현이 대표적이다. 왜 ‘1인 가족’을 선호할까? 남을 간섭하기도 싫고, 남에게 간섭 받기도 싫은 거다. 남에게 상처 주기도 싫고, 상처 받기도 싫은 것이다. 우리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먼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사랑은 가시밭길이다. 가시밭길을 가는 것이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길이 어떤 길인가? 예수님께는 가시밭길이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꽃길을 만들어 주셨다. 예수님이 흘리신 피는 ‘고통과 저주와 죽음의 피’였다. 그러나 그 피를 흘리심으로 꽃길이 만들어졌다. 이것이 영적인 진리이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나를 가시처럼 찌를 때, 내가 죽지 않으면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죽으면 꽃길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꽃길만 걷게 해줄게!” 하는 말을 자주 해야 한다.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해야 한다. “앞으로 꽃길만 걷게 해줄게!” 부모는 자녀에게, 그리고 자녀도 부모에게 이런 말을 자주 해야 한다. “앞으로 꽃길만 걷게 해 드릴게요!” 그런데 이런 말을 할 때는 “내가 당신을 위해 가시밭길을 걷겠습니다.”는 각오도 함께 해야 한다. 그럴 때 꽃길이 열리기때문이다.
이 글을 진지하게 읽으시는 분 중에는 마음에 불편한 분이 계실 거다. “그렇게 가시밭길을 걷다가 지치고, 찢기고, 쓰러지면 어떻게 하나...”하는 걱정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는여기저기 찢기고, 피투성이가 된 채로 살란 말인가...”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정말 그럴까?그렇지 않다.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성령’을 성경의 원어로 ‘파라클레토스’라고 한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셨다. “내가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 14:16,18) 여기서보혜사는 ‘성령’을 말한다. 이말은‘파라클레토스’라는 단어를 번역한 것이다. 성령이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파라클레토스’는 ‘위로자, 돕는 자, 조언자’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의 뜻은 이런 것이다. “성령께서 우리와 늘 함께하셔서 우리를 위로하시고,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에게 조언하신다.”는 거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우리는 가시밭길에 ‘홀로’ 두지 않으시겠다”는 뜻이다. 가시밭길에서 피 흘려 쓰러지도록 놔두지 않겠다는 거다. 성령께서 우리의 상처를 감싸주시고, 위로하신다. 우리를 도우시고, 인생 조언을 해주신다. 그래서 가시밭길을 걸어도 아프지 않고, 넉넉히 이기도록 하시겠다는 거다.군대에 갔다 오신 분들은 ‘전투화’가 얼마나좋은지 아실 것이다. 전투화는 바닥이 아주 두꺼운 고무로 되어있다. 전투화를 신으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성령은 마치 전투화와 같다. 성령이 임하시면, 성령께서 그 사람을 감싸주신다. 그래서 아무리 가시로찔려대도, 이겨낼 수 있다. 아무리 ‘상처 되는 말’을 들어도 상처로 남지 않게 된다. 성령께서위로하시기 때문이다. 아무리 ‘대적’에 둘러 쌓여도 승리하게 된다. 성령께서 도우시기 때문이다. 아무리 넘어지고 자빠져도 다시 일어나게 된다. 성령께서 조언하시기 때문이다. 성령과 함께 가시밭길을 걸으며 사랑의 열매로 가득하시기를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