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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교동교회 김주헌 목사 |
요사이 분배의 문제로 우리 사회가 첨예하게 양극화 되고 있습니다. 진보주의자들은 평등을 말합니다. 이론적으로 그럴듯해 보입니다. “다 함께 똑같이 나누고 살자.” 그러다 보니 많은 사회적 문제가 발생합니다. 무상복지, 무상지원 등..그러나 성경은 공평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심는 대로 거두게 하는 것입니다. 무조건 퍼주기 무상 복지가 아닌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고 정당한 노력의 대가를 받을 수 있게 하는 복지가 우리 사회를 더욱 건강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공평이라는 것이 제대로 시행되느냐 하는 것은 아직 요원한 것 같습니다. 또 ‘공평하다, 공정하다, 공의롭다’는 말은 추상적인 말입니다. 요사이도 보면 저마다 공의와 정의를 부르짖지만, 아무리 보아도 어느 쪽에도 정의는 없습니다. 공평이란 그렇게 쉬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똑같이 만원씩 주면 공평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한 사람은 80세요, 한 사람은 60세입니다. 한 사람은 걸어 다니는 사람이요, 한 사람은 누워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똑같이 줄 수 있습니까? 똑같이 만원씩 주는 것은 공평이 아닙니다. 누워 있는 사람에게 더 주고, 걸어 다닐 수 있는 사람에게 덜 주어야 합니다. 이렇듯 공평이란 현실적으로는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 상황에 따라야 하는 대단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말로는 쉽습니다.
그러나 공평이란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만 있는 것입니다. 저마다 객관적이라 하고 가장 정의롭다 하지만 주관적 의견은 그대로 차이가 있고 말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공평이란 없습니다. 실질적으로 없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초대교회에서도 저들은 구제문제를 놓고 저마다 자기를 기준으로 이야기합니다. “나는 가난하니까 더 받아야 한다, 나는 이방인이니까 더 받아야 한다, 나는 집도 거처도 없으니까 더 받아야 한다, 너는 집도 있고 자녀도 있으니까 덜 받아도 된다” 저마다 할 말이 많았을 것입니다. 결국은 공평을 잃고 평형을 잃음으로 불평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원망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은혜 가운데서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다시 바꾸어지지 않는 한 바르게 세워나갈 수 없습니다. 초대교회에 이 구제의 문제로 말미암아 원망과 불평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호남기독신문 가족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입니다. 교회 안에서 예수님처럼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고 감사하므로 건강한 교회공동체가 이루어지도록 앞장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