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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교동교회 김주헌 목사 |
‘인생이란 무엇인가?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나는 왜 이곳에 존재하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모든 인간이 항상 품고 있는 이 질문이 어느 날 가슴속에 밀려올 때, 우리는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을 느낀다. 너무나도 벅차고 중요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질문의 대답을 발견할 때부터 인생은 달라지기 시작한다.
어느 날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깊은 사색에 잠긴 채 골똘히 생각하면서 길을 걷노라고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길 한 가운데서 두 사람은 부딪혔다. 맞은편에서 오던 사람이 벌컥 화를 내면서 ‘당신은 누군지 앞도 확인하지 않고 다니는 거요’하고 책망을 했다. 그때 ‘쇼펜하우어’는 정신이 들어 멋쩍은 표정으로 ‘글쎄올시다. 내가 누구냐고요? 나도 방금 그것을 생각하고 있는 중입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우리는 세상에 대해서는 제법 알고 있다. 또한 남들이 나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하는지에 대해서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그러나 정말 알아야 할 자기 자신을 잘 모르고 있다. 사람이 자기가 누구인지, 어떤 존재인지 깨닫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자기를 바로 발견한 자만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굉장히 쉬운 질문인 것 같은 데 막상 답을 하려고 하면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 게 사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글쎄요?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요!”, “나는 나다.” “나는 누구의 아빠이다.” “나는 누구의 남편이다. “나는 누구의 아내다” 등등.... 자기의 직업이나 소속, 지위 등 막연한 대답으로 일관한다. 아니면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채 살아간다. 그러나 이 답은 진정한 답이 될 수 없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하루는 소크라테스 제자가 스승에게 찾아와서 물었다. “선생님, 선생님이 말씀하신 ‘너 자신을 알라’는 말씀은 참으로 대단하신 발견입니다. 그런데 선생님 나 자신에 대해서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질문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나도 그것을 모른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어떤 이는 인간을 해부학적이고 생리적으로 규명할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이는 심리학적이고 철학적으로 규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누가 어떤 식으로 인생을 논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정확한 답이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시계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그것을 파는 사람이나, 차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만든 사람인 것처럼, 인간 본질에 대해 가장 정확하게 답해줄 수 있는 이는 인간이 아니라 그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본질을 밝히는 인문학적인 첫 번째 질문인 ‘나는 누구인가?’를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고 물으라. 그러면 누구도 답을 줄 수 없는 명쾌한 답을 듣게 될 것이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 때 우리의 정체감이 확립되고 우리의 자존감이 높아질 것이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