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열 목사 (본지주필, 기독교한국신문논설위원 군남반석교회담임목사)
|
|
때로는 매우 잘 알듯 하면서도 사실은 잘 모르는 것들이 우리게는 너무 많고 많다.
예수님은 열두명의 제자를 두셔서 세상을 변화시키셨는데 우리들에게는 이렇게도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있는데 작은 나라에서도 진정한 변화를 일으킬 수는 없는 것일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국방장관이던 뉴튼베이커(NewtonBaker)가 체험한 내용이다. 그는 전쟁 중 당시 유럽의 야전병원을 방문했는데 큰 부상을 입고 치료중인 병사를 만났다. 그는 두 다리를 잃고 한쪽 팔과 한쪽 눈까지 잃어버린 처참한 상태로 누워있었다. 그 후 얼마동안 기간이 지나고 다시 또 그 병원을 찾아갔는데 부상자는 보이지 않았다. 불안한 생각이 들어 원장에게 물어보았다. “그 환자는 어떻게 되었나요?” 원장이 말했다. “자신을 치료해준 간호원과 결혼하여 퇴원했습니다.” 베이커는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귀국했다.
그 후 세월은 흘렀고 베이커 국방장관도 퇴임했다. 그 후 그는 죤홉킨스대학의 재단이사장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재단이사장으로 졸업식을 주관하고 박사학위를 수여하던 중 휠체어를 타고 박사학위를 받으러 나오는 그 때 그 병사를 발견한다. 5년 동안 끈기와 인내로 박사학위를 받게 된 그 병사를 보고 너무나 놀라워서 그 학생의 남은 한손을 꼭 붙잡고 “정말 장하네요. 진심으로 축하합니다”라고 격려해 주었다. 그때 그 청년은 베이커에게 말했다. “베이커 장관님! 은퇴하신 것을 신문을 통해서 알게 되었어요. 그러나 아직도 보람 있는 일들이 많이 있으니 낙심하지 마시고 힘차게 사십시요!” 베이커에게 그 상이용사의 음성은 마치 주님의 목소리같이 들렸다.
‘더 힘차게 사십시요!’ 이 말은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음성일수도 있다.
어려움을 참고 견디며 이겨나가는 것이 신앙의 길이 아니겠는가?
영국의 시인 죤밀튼이 만일 나는 맹인이라고 좌절했다면 어찌 전 인류에게 주는 위대한 명작 신락원이라는 대서사시를 쓸 수 있었겠는가?
베토벤이 ‘나는 귀머거리다’라고 생각하고 살았다면 감동적인 선율의 작품들을 남길 수 있었겠는가?
죽고 싶을 만큼 힘든 환경에서도 그들은 아름다운 무지개가 떠오르듯 희망을 품고 오히려 아름답고 풍성한 고통 뒤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축복의 음성을 듣고 있었다.
행복한 삶을 누리기를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신앙의 꽃을 피워보자. 잿더미 속에서도 장미꽃은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