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환호하는 길이 아닌 주님이 가신 고난의 길을 통해 생명에 이르는 자 되게 하옵소서” 육신의 건강을 위해서도 많은 것을 절제하며 적절한 운동을 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영적 건강을 위해서도 절제해야 할 것과 해야 할 일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고난은 영광의 선물입니다. 영광은 고난 뒤에 옵니다. 지금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시고 기꺼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을 깊이 묵상하는 고난 주간입니다. 주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습니다.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든 길이었습니다. 온갖 수치와 모욕을 다 당하신 길이었습니다. 하나님과의 단절을 경험해야 했던 아픔의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기꺼이 그 길을 가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셨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가운데 고난 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도 예외는 아닙니다. 주님을 믿는 것 때문에 고난을 받을 때도 있지만 스스로 고난 받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고난은 힘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고난을 통해서 얻는 유익이 많습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놀라운 말씀입니다. 인생은 날 때부터 시작하여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고난 속에서 인생을 보내는 고난의 연속인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평안을 맞이하고 고난을 면하기 위하여 정치, 사회, 교육, 경제, 종교운동 등 별별 운동이 예부터 오늘까지 사람들 간에 쉬지 않고 계속되어왔지만 원하는 평안은 오지 않고 원치 않는 고난은 연속적으로 인간생활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들이 고난 없는 자가 없습니다. 기독교인도 예외가 아닙니다. 많고 작은 차이는 있지만 고난 받지 않은 사람은 아담 이후 한사람도 없습니다. 역사는 고난을 극복한 사람에 의해 창조되어 왔고 또 이뤄져 갈 것입니다. 고난은 보다 더 나은 하나의 새로운 길을 향하여 통과해야 할 관문입니다. 인간의 고난의 관계는 몸의 그림자와 같습니다. 욥기에(14:1) “여인에게서 난 사람은 사는 날이 적고 괴로움만이 가득하다”고 했습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파스칼은 인간은 자연계에서 가장 연약한 갈대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습니다. 생각하는 갈대, 참 좋은 표현이지만 생각하는 갈대이기에 인생은 괴로운 것이며, 갈대처럼 그 연약함을 생각 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괴로운 것이 인생인 것입니다.
프랑스의 군인이며 황제였던, “나의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며 승승장구하던 당대의 영웅 나폴레옹은 워털루전투에서 패하고 세인트 헬레나 섬으로 귀양을 가서 적막한 최후를 마칠 때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오대양에 넘치는 물은 이 세상 사람들의 눈물인가? 육대주에 부는 바람은 이 세상 사람들의 한숨이 아니냐”고 한탄했습니다. 또한 “과연 고난 때문에 누가 울지 않았으며 고난 때문에 누가 탄식하지 않았는가? 먹는 것도 괴롭고 자라는 것, 공부하는 것, 일하는 것, 자녀 기르는 것, 미워하는 것, 사랑하는 것, 사는 것도 괴롭고 죽는 것은 더욱 괴로운 일이다. 이토록 인생은 괴로움에서 출발하여 그 괴로움에서 신음하다가 결국 그 괴로움에서 끝을 마치는 존재가 인생이 아닌가?”라며 탄식의 노래를 했습니다. 한때 유럽의 6개국을 정복하고 종신 통령이 되었으며 영웅이며 황제였던 그는 52세로 생을 마치면서 행복은 없었다고 고백합니다. 남의 나라를 침공하고 괴롭혔으니… 남을 불행하게하면서 내가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는 이렇게 한탄했습니다. “내 평생 행복한 날은 단1주일도 안된다.” 그러나 어려서 열병으로 앓다가 듣지도 보지도 못한 미국의 사회사업가 여류문필가인 헬렌켈러는 88세를 살면서 나는 내 평생 행복하지 않은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남을 불행하게하면서 내가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의인은 고난이 없을까요? 아닙니다. 의인은 고난이 많다고 했습니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고난에서 건지신다고 하였습니다. 고로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불평하지마세요! 고난의 뒤에 오는 주님이 주실 축복 감사하세요! 왜 이런 슬픔 찾아 왔는지 원망하지마세요. 동서고금, 모든 사람들이 한 결 같이 고난과 형국의 길을 걸어왔고, 또한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고난당할 당시에는 괴롭고 아프지만 인생에 양약이 되며 성공으로 이끄는 과정입니다. 성경은 “내가 고난을 당하기 전에는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찾게 되며, 기도하게 됩니다. 환난 중에도 즐거워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기독교인만이 가질 수 있는 비밀입니다. 욥은 대답합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이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욥을 봅니다. 고난이 깊을수록 영광은 더 찬란한 것입니다. 금과 은을 뜨거운 용광로에서 제련하는 것처럼 여러 가지 시험과 고난이 우리들 믿음을 연단시켜 더욱 굳게 강하게 온전케 한다는 것입니다. 밤이 깊을수록 빛은 더 강합니다. 고난이 클수록 하나님의 사랑은 더욱 뜨겁게 힘을 발휘합니다. 세상이 어두울수록 하나님의 사랑은 더욱 빛을 냅니다. 나의 고통을 하나님은 희망으로 바꿔주십니다. 진퇴양난 속에서 새 길이 있고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거센 비바람도 태풍을 이겨낸 소나무는 더 깊게 더 크게 더 강하게 자랍니다. 태풍이 지난 후 바다 속 물고기는 더 먹을 것이 풍부하고 활력을 얻게 됩니다. 태풍이 잠시 지나가듯이 우리의 괴로움도 잠시 지나가는데 이 괴로움의 순간을 잘 참고 견디는 자에게는 좋은 연단과 함께 자기의 사명을 다 할 수 있을 것이며 내일의 축복의 열매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시험과 역경 속에서 시달릴 때 비로소 생명과 축복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찾게 되며 경배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고난의 쓴잔을 통하여 인류의 구원과 부활과 영생의 주가 되신 것입니다. 고난을 통한 후에 비로소 인생은 진실한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게 됩니다.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쓰시려고 연단하시는 지금의 고난은 장차 받을 영광에 비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어떤 고난이 와도 믿음으로 승리하여 우리에게 주어지는 열매와 기쁨, 행복한 성공적인 생을 누리시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