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재 목사
(전,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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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 590년 경 로마가톨릭교회는 교황 제도를 정식으로 확립하였다. 이것은 콘스탄티누스 1세(Constantinus the Great, 272-337)가 313년 3월 2일 밀라노에서 발표한 칙령으로, 그 내용은 모든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포함해서 자신이 원하는 종교를 믿을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하며 보호 장려한다는 파격적인 종교의 자유 선언이었다.
콘스탄티누스 1세는 밀라노칙령을 계기로 자신의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기반을 확장하기 위해 기독교를 최대한 이용하는 한편, 교회와 성직자들에게 각종 특권을 주었으며 각지에 교회 예배당을 건립하는 데까지 지원하였다. 이와 같은 국정 전환의 동기는 로마 제국을 수시로 침략해 오는 북쪽 고트족과의 전쟁으로 불안했던 로마 제국은 하루는 콘스탄티누스가 십자가 깃발을 앞세워 고트족과 싸워 이긴 꿈을 꾸고 난 다음 그대로 십자가 군기를 앞세워 진격하여 알프스 설원 전투에서 승전했던 기적에서 기독교가 믿는 하나님이 참 신인 것을 확신하게 된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325년에는 니케아공의회(Councils of Nicaea)를 스스로 소집하여 기독교 교리를 체계화하는 데 공헌하였다(아타나시우스 신앙고백 채택). 콘스탄티누스는 점점 커져가는 로마 제국을 보다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하여 동서양의 교차로인 비잔틴(현재, 터키 이스탄불)으로 수도를 옮겨 자기 이름을 따서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이라 명명(命名)하였다. 콘스탄티누스 1세는 기독교를 종교로 인정했을 뿐,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한 것은 테오도시우스 1세(Theodosius, 379-395) 황제이다.
이로부터 약 1,100년간 콘스탄티노플은 동로마 제국의 수도로서 1054년 동방정교회(東方正敎會)가 로마가톨릭교회와 분리 이후, 동방정교회의 중심 도시로서 역사의 무대를 지켜왔다.
그러나 1453년 5월 29일, 오스만 투르크의 술탄 메메트 2세에 의해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점령당함으로써 동로마 제국도 동시에 무너지면서 ‘이슬람교여, 융성하라’는 뜻으로 도시 이름을 ‘이스탄불’로 개명하는 것은 물론 로마 교회의 상징인 성 소피아 교회당을 이슬람 모스크로 개조하여 박물관으로 사용하는 치욕의 이슬람 역사가 오늘에 이른다.
313년 로마 교회가 햇볕을 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형상은 교회 공동체의 질서를 명분으로 교권수립이라는 계급 문화를 이루었다. 지역 교회의 대표를 감독으로 규정하던 전통을 뛰어 넘어, 보편적인 공교회의 머리를 교황으로 규정함으로써 로마 교회는 교회의 참된 머리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를 찬탈하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이와 같은 로마 교회의 교권은 한 때 유럽 각국의 왕들을 임면(任免)하는 절대 권력을 휘두르기까지 하였다. 이 가공할 교권의 핵심은 교황권이었고, 교황권은 사제 계급과 소위 평신도 계급의 이분화라는 로마가톨릭교회의 신학적 입장을 근간하게 되었다. 이 입장에 따르면, 특수한 훈련을 받고 교황청에 의해 사제직을 서품 받은 소수의 신부(神父)와 이 신부들 보다 상층 계급에 속한 주교, 추기경들만 ‘제사장’으로 인정된다는 비성경적 교리였다. 오직 사제와 그 계급에 속한 자들만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으로서 이들에게만 하나님을 예배하고 제사드릴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되었다고 주장한다. 소위 ‘평신도’라고 불리는 대다수 성도들은 그들의 참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다는 복음의 진리를 배울 기회를 빼앗아버린 것이다. 오로지 일단의 사제 계층의 중보와 매개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고 잘못 가르쳤다.
이상과 같은 중세 말기 로마 교회의 구조는 성직자(사제 계층)와 평신도의 이중적 계급 구조를 만들고, 이 구조 속에 사제 계층만 거룩한 직분을 가진 자들이며, 평신도는 속되거나 의롭지 못한 직업을 가진 자들이라는 비성경적 성·속(聖·俗)을 구별 짓는 계급 사회를 고착시킨 것이다. 이에 대하여 로마서와 시편 등을 통해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새롭게 발견한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성경 진리의 최고의 ‘적’(敵)이 바로 로마가톨릭교회의 ‘사제주의’(司祭主義) 또는 ‘교황주의’(敎皇主義)에 있으며, 모든 그리스도인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됨으로써 하나님의 제사장이 되어 자유롭게, 그리고 직접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만인 제사장’(萬人祭司長) 교리를 역설하기에 이른다(벧전 2:5-9). 특히 “너희도 산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는 5절의 교회론 말씀과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라는 9절 상반절 말씀은 한 마디로 모든 그리스도인이 아무 차별 없이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영적 제사, 즉 만인이 제사장(사제)이 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고 해석하였다.
그러므로 기독교 개혁 사상의 원리는 첫째, 교황 권위에 대항하는 원리로서 오직 성경의 원리(sola scriptura)이며, 둘째는 행위 구원론에 대항하는 원리로서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이신칭의의 원리(solafide)이고, 셋째는 성직자와 평신도의 계급적 구분을 철폐하는 만인 제사장의 원리(the priesthood of all belivers)이다. 단, 한 가지 조건은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분의 공로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만인 제사장’이란 그들이 교회 내에서 가지는 직분(목사, 장로, 집사, 권사 등)과 교회 밖에서의 계급(왕, 관리, 평민 등), 그리고 빈부나 교육의 격차 등 차별적인 모든 조건과 무관하게, 진실로 ‘모든’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제사장이 되었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따라서 개혁 교회에서 목사, 장로, 집사, 권사, 교사 등과 같은 직분 상의 구별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와 기능상의 수평적 구별일 뿐, 어떤 계급적 의미가 포함되는 수직적 관계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개혁자 장 칼뱅(Jeang Calving)은 목사와 장로 직은 계급적 의미에서 섬김과 존경을 받는 직분이 아니라, 신앙적으로 더 어리고 연약한 자를 섬기며 돌보는 종의 직분임을 강조하여 가르쳤다. 칼뱅을 비롯한 개혁자들은 교회 내에서 어떤 계급주의적 요소도 자리 잡을 수 없도록 하는 것이 바르고 성경적인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렇게 볼 때, 현재 한국 교회의 상황에서 만인 제사장 교리만큼 그 회복의 절실한 가르침도 아마 없을 것이다. 한국 교회 전체가 반성경적인 계급주의로 병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기 때문이다. 계급주의 뿐만 아니라 미신적이며 무속적인 제사장 개념 때문에 여러 교회가 어려움 가운데 처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무지한 목회자의 가장 무서운 질병은 목회자가 주님의 자리를 자기가 차지하고 군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말한다. 목회자는 섬김을 받는 자가 아니다. 먼저 섬기는 자리일 뿐 아니라, 끝까지 섬기는 자로 남아야 하는 자리다. 왜냐 하면 예수를 구주로 고백한 모든 자는 거룩하고 신성한 ‘성도’(聖徒)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성도들의 직업 역시 성직(聖職)이며, 모든 직업이 하나님의 소명(calling)에 따라 주어진 고귀하고 값진 것이다.
성도들이 목회자를 존경하는 것은 목회자가 성도들 보다 더 높은 계급의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말씀과 양치기로 자신들의 영혼을 섬겨 주는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서의 존경이다. 또한 목회자는 주님의 종일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의 종 된 자라는 섬김의 도를 항상 기억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섬김의 도, 종의 도를 실천하신 주 예수님을 본 받는 목회자들이 선순환으로 배출될 때 한국 교회의 앞날은 밝아질 것이다.
교회 안에 평신도는 없다. 모두가 신성하고 구별된 고귀한 성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