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에는 미네아폴리스 주에서 루터교 목사로 활동하던 월터 랭이 BSA(Bible Science Association)을 설립하여 활동하였으며, 회원은 주로 비(非) 과학자들이었다.
1963년에 CRS(Creation Research Association)를 설립하여, 원예 유전학자인 Walter Lammerts가 초대 회장으로 활동하였다. 설립 당시 회원은 10명으로 회장을 제외한 나머지 9명은 , , , , , , , , 이었으며, 회원들은 성경무오와 홍수지질학, 창조를 믿는 석사, 박사들로 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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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모리스 |
헨리 모리스(1918-2006)는 유신론적(有神論的) 진화론자로 시작하여, 창조론자로 변신하였는데, 죠지 맥크리디 프라이스의 저서 <신지질학>을 보고 난 후, 과학적 창조론의 개발 필요성과 가능성을 확신하여, 과학적 창조과학 운동에 헌신하게 되었다.
버지니아 공대 학과장(hydraulic engineer)으로서 CRS(Creation Research Association)에 참여하여 활동하다가, 1970년에 교수직을 사임하고 팀 라헤이와 함께 근본주의 학교인 Christian Heritage College를 시작하였다.
1972년에는 헨리 모리스의 주도로 Institute of Creation Research(ICR)를 설립하여, 창조과학 연구와 교육, 출판, 강연 활동을 하다가, 2006년에 사망했다.
헨리 모리스는 근대 창조과학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하며, 창조과학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헨리 모리스의 아들인 존 모리스(1946년~ )는 1980년 오클라호마 대학에서 지질공학(Geological Engineering)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지질학 교수로 활동하다가, 1984년에 ICR에 합류하여 활동하였으며, 2006년에는 아버지인 헨리 모리스의 뒤를 이어 ICR 소장으로 헌신하고 있다.
ICR에서는 창조과학 연구와 출판, 교육 활동을 하고 있다. 교육 활동으로는 창조과학 관련 학부과정과 대학원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80세계복음화대회’(1980.8.12.~15.)에 참석하였던 김영길박사 등 기독교 과학자 25명이 간담회를 하면서 한국창조과학회 설립을 결정하여 8월 16일에 창립 예비 모임을 하였다. 복음화 대회 기간 중, ‘창조냐 진화냐’란 세미나에 학생, 일반인, 교역자, 과학자 등 연인원 4000여명이 참석하여 생명의 기원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었다.
1981년 1월 31일에는 한국창조과학회를 창립하여(전경련 사무실에서 모임), 김영길박사가 회장을 맡고 C.C.C. 사무실을 첫 학회 사무실로 하여 본격적인 창조과학 활동을 시작하였다.
창조과학을 처음으로 한국에 소개하고, 초대 한국창조과학회 회장을 맡아서 창조과학 전파에 헌신한 김영길박사(당시 한국과학술원 재료공학과 교수)는 미국 우주항공국(NASA) 루이스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하던 중 거듭난 그리스도인(born again Christian)이 되었으며 동료 연구원들을 통하여 창조과학을 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