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호에 게재된 이야기가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가상적으로(hypothetically) 만든 이야기인지 필자로서는 알 길이 없다. 위에 인용한 자유주의 신신학(新神學)을 추종하는 목사는 용감하고 순진한 사람인 것 같다. 자신의 자유주의 신학사상을 교인들에게 굳이 말하여,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고 자신은 직업을 잃는 어려움을 개의치 않는 목사가 얼마나 있을까? 그러나 자신이 믿는 자유주의 신학사상을 교인들에게 밝히는 것이 양심적인 행위이다.
오늘날에는 자유주의 신학을 비롯하여 진화론을 믿는 신학자들과 목사들이 많다. 그러나 그들의 대다수는 교인들에게 자신이 믿는 바를 말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는 것은 거짓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속이는 것이다.
한번은 필자가 목회자를 대상으로 한 성경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 모임에 참석한 한 목사가 필자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저는 예수교 장로회 XX측 목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이 말은, 필자가 어떤 분과 창조과학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옆에서 듣고 있다가, 필자에게 한 말이기 때문에, 자신들은 진화를 믿는다는 말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필자는 그 목사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믿는 것은 자유죠. 그런데 믿는 것에 대한 책임은 지셔야합니다!”
필자는 생각해본다. 교인들이 ‘창조와 진화 둘 중 어느 것을 옳은 것이냐?’ 또는 ‘어느 것을 믿고 계시냐?’는 질문을 하지 않았는데도 먼저 자청하여 그렇게 담대하게 말할 수 있을까? 강단에서 그렇게 담대하게 설교 할 수 있을까?
물론 담대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사람도 있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태어난 찰스 템플턴(Charles Templeton; 1915-2001)은 담대함을 넘어서 기독교 신앙을 공개적으로 부인하고 기독교계에서 떠나버렸다.
찰스 템플턴은 1936년에 그리스도인이 되어, 복음전도자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1938년 까지 미국 44개 주를 순회하며 복음을 전하기도 했다. 세계 최고의 복음전도자로서의 명성을 얻었으며, 1941년에는 자신의 가족과 소수의 친지와 같이 캐나다 토론토에서 교회를 개척하여, 빠르게 성장하는 교회의 목사로서 성공적인 목회를 하고 있었다.
템플턴은 1945년에 새롭게 조직된 YFC(Youth For Christ)의 3명의 부회장 중 한 사람이 되었으며, 빌리 그래함(1918-2018)을 현장 사역 전도자(Field Evangelist)로 임명했다. 당시에 찰스 템플턴은 빌리 그래함보다 더 유명한 복음전도자였다.
찰스 템플턴은 빌리 그래함과 함께 미국과 유럽에서의 복음전도 집회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였다.
그러나 찰스 템플턴에게,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의 진화론과 (노아 홍수의 역사성을 부정하는)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 1797-1875)의 <지질학 원리>가 신앙의 걸림돌로 작용하기 시작하였다. 찰스 템플턴은 1948년에 프린스톤 신학교에 입학하여 신학을 공부하였으나, 프린스톤 신학교는 템플턴의 의구심을 완화시켜주기는커녕, 오히려 증폭시켰다. 찰스 템플턴은 결국에는 기독교를 부인하고 기독교계를 떠나버렸으며, 1996년에는 <하나님과의 작별>(Farewell to God: My reason for rejecting the Christian Faith)을 출판하여 자신이 기독교 신앙을 떠난 이유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