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재 목사
(전,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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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오늘날 일부 한국 교회가 예배 방식 때문에 정부 당국과 갈등이 생기는 것을 보면서 신간서적 ‘코로나 시대 한국 교회의 역할-3.1운동 정신과 코로나 극복(저자 : 라영환 외)’을 탐독하고 우리 교회의 나아갈 길을 공유하고자 요약 게재합니다.
제임스 화이트James E. White는 포스트 크리스천 시대를 살아가는 교회를 향하여 “오늘날 세상의 관심을 사로잡는 것은 다름 아닌 대의명분이다"라고 주장하였다. 그의 말처럼 교회는 세상이 교회를 인정할 수 있는 대의명분을 제공해야 한다. 초대 교회가 극심한 박해 속에서 부흥할 수 있었던 것은 대의명분 때문이었다. 로드니 스타크Rodney Stark는 『기독교의 발흥』에서 초대 교회의 부흥을 설명하면서 도시 위생의 문제와 새로운 이민자의 유입으로 인한 갈등, 그리고 자연 재해와 사회적 재난이 가득한 도시에서 기독인들이 보여 준 사랑과 헌신은 당시 로마 사회가 겪고 있던 고질적인 문제들에 대한 대안이 되었고, 2세기와 3세기 모진 박해를 받고 있던 소수의 종교가 놀랍게도 로마의 국교가 되는 대의명분을 제공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당시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는 불법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당했다. 믿음 때문에 자신이 가진 모든 것, 심지어 목숨까지도 버려야 했다. 그런데 오해와 박해 속에 살았던 그 시기에 교회는 오히려 성장했으며 다양한 형태로 로마 전역에 뻗어 나갔다. A.D. 100년에 2만5천 명 정도였던 기독인들이 A.D. 310년 경에 이르러 2천만 명에 육박하였다고 한다. 교회가 폭발적으로 부흥 확장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세상 사람들에게 교회가 매력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다음은 A.D. 2백 년 북 아프리카에 살았던 한 기독인의 고백이다.
"우리의 숫자가 날마다 증가하고 있습니다. 삶의 아름다움이 교인들을 오래 참게 하고 낯선 이들이 참여하게 합니다. 우리는 위대한 강설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삶을 살아내고 있습니다. 신앙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지만, 그러나 우리가 추구하는 그 가치가 너무 귀해 우리를 오래 참게 합니다."
당시 사회 문화적으로 영향력이 없고 경제적으로도 가난하였으며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았던 교회가 오히려 자신들을 핍박했던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강설이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과 변화된 삶,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교리의 힘이었다.
∎ 복음이 삶의 차이를 만들어 낸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우스Marcus Aurelius Antonius 황제가 로마를 통치하고 있을 때, 전 세계적인 전염병 대유행 Pandemic이 있었다. '안토니우스 역병’Antonine Plague 으로 불렸던 이 천연두는 165년 겨울에 발생하여 15년 간 로마 전역으로 퍼져 로마 인구의 4분의 1 이상의 목숨을 앗아 갔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도 이 역병으로 사망했다. '키프리아누스 역병' Plague of Cyprian은 251년에 시작되어 262년까지 지속되어 로마 전역을 강타했다. 두 번에 걸친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사회 시스템도 완전히 무너졌다. 당시 지식인들과 종교 지도자들은 재앙이 던진 시대적 질문 앞에 대답을 주지 못했다. 하지만 교회는 전염병 대유행이 던진 시대적 질문에 대답했을 뿐만 아니라, 감염된 환자들을 헌신적으로 돌봄으로써 그리스도의 사랑을 세상에 보여 주었다.
"우리 기독교인 형제들은 대부분 무한한 사랑과 충성심을 보여 주었으며 한 시도 몸을 사리지 않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데 온 힘을 쏟았습니다. 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아픈 자를 도맡아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필요를 공급하고 섬겼습니다. 그리고 병자들과 함께 평안과 기쁨 속에 생을 마감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환자로부터 병이 옮자 그 아픔을 자신에게로 끌어와 기꺼이 고통을 감내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다른 이를 간호하고 치유하다가 사망을 자신에게로 옮겨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으로 서로 방문하기를 꺼렸다. 많은 이들이 사람들의 돌봄을 받지 못한 채 죽어갔다. 당시 로마의 지도자들은 아픈 자들을 내쫓았고 병자가 죽기도 전에 거리에 내다 버렸으며 전염병의 위험을 피해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였다. 이 시기 교회는 사회가 설명하지 못하는 전염병과 같은 재난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명했고 삶으로 그 대안을 보여 주었다.
그리스도인들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마7:12) 라는 말씀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22:39)는 성경 말씀을 실천하며 살았다. 전염병이 유행하여 서로 방문하기를 꺼리던 그 때, 교회는 돌봄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찾았다. 병든 자와 가난한 자에 관한 관심과 헌신은 사람들에게 감동이 되었다. 특별히 이 시기 로마 제국에 살던 사람들에게 충격으로 다가간 것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하나로 연결된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당시 제국 내 어떤 종교에도 찾아볼 수 없는 기독인만의 독특한 사상이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희생을 통해 그 사랑을 보여 주신 것처럼, 기독인들은 서로를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고자 하였다.
4세기 후반 황제 율리아누스Flavius Claudius Julianus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제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는 당시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쳤는지를 알 수 있다.
"어째서 우리는 이 무신앙을 증대시키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타인들을 향한 그들의 자비, 죽은 자를 묻어 주는 보살핌, 진정어린 삶의 거룩함임을 인정하지 않는가? 그 어떤 유대인도 구걸할 필요가 없으며, 불경한 갈릴리인들은 자기네 빈민 뿐 아니라 우리네 빈민까지 떠받쳐 주는데, 우리네 백성들은 우리에게서조차 원조를 받지 못하는 것을 모두가 아는 건 치욕스러운 일이다". 율리아누스,『서한집』22.
초대 교회는 로마 사회가 해결하지 못했던 사회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대안을 제시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가난한 사람들'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가난한 사람들'도 돕는다고 말하였다. 그들 성도 간의 사랑, 그리고 가정과 민족을 넘어 낯선 민족에게도 확장되었던 자비와 긍휼의 감동적인 모습은 당시 온 세계인들에게 그 시대가 제공해 주지 못했던 사회적, 물리적, 경제적 그리고 정서적인 안정감을 안겨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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