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행하는 것이 우리들의 습관이 되기를 바랍니다. 선한 일을 하는 자는 계획을 세우고 하는 것이 아니라,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믿음의 가정들에게 하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아야합니다. 포기하지 않고 때가 되면 이루게 됩니다. 포기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도 포기하십니다.
나치 독일 사람들이 유대인을 수없이 닥치는 대로 학살할 때였습니다. 어떤 비행장의 한 조종사가 자신의 비행기 속에서 무엇을 고치고 있는데 어떤 젊은 사람이 황급하게 비행기 안으로 들어와서는 “나는 지금 당신이 살려 주지 않으면 죽을 것인데 어서 이 비행기를 띄워서 독일 국경 밖으로 좀 데려가 달라”고 애원을 했습니다. 이 청년은 유대인이었습니다. 이 사람의 뒤를 지금 비밀 경찰대가 추격해 오고 있었습니다. 이 비행기 조종사는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 얼른 비행기를 띄워 멀리 국경 밖으로 데려다 주었다고 합니다. 물론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에 그 사실을 다 잊어버렸습니다. 얼마 후에 2차 대전이 일어났습니다. 이 조종사 역시 독일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영국으로 가서 연합국의 공군으로 종군하면서 전쟁에 가담해서 싸웠습니다. 한 번은 비행기를 타고 출전했다가 큰 사고를 당해 그가 탔던 비행기가 추락하면서 중상을 입었습니다. 뇌를 다쳐서 도무지 의식이 하나도 없고 중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때 수술을 제일 잘하는 의사를 초청하여 수술을 하고, 두어 주일 후에야 의식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의사를 만나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던 중 그 의사가 바로 여러 해 전에 자기가 비행장에서 구해준 그 유대인 인 것을 알았습니다. 덕을 심으면 덕을 거둡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하였습니다.
좋은 법관이자 훌륭한 정치인이며 오늘의 뉴욕을 세계제일의 도시로 일구어냈으며, 뉴욕시장을 세 차례(1933~1945) 역임한 피오렐로 라구아디아. 그가 시장이 되기 전 뉴욕지방법원 판사로 있을 때 내린 판결은 미국의 사법 역사에 전해지며 오랫동안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자주 인용되고 있습니다. 1930년 어느 날, 상점에서 빵 한 덩어리를 훔치고 절도혐의로 기소된 노인을 재판할 때 일이었습니다. 그 노인은 법정에 서서 눈물을 흘리며 “딸이 남편과 이혼한 뒤 병들어 누워있고, 손자들이 굶주리며 울고 있어 빵을 훔쳤다”며 선처를 호소했습니다. 판사는 전에도 빵을 훔친 적이 있는지 물었고, 그녀는 “아닙니다, 처음 훔쳤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판사는 "왜 훔쳤습니까?"라고 물었고, 이에 그 할머니는 "예, 저는 선량한 시민으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일자리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사흘을 굶었습니다. 배는 고픈데 수중에 돈은 다 떨어지고 눈에는 보이는 게 없었습니다. 배고픔을 참다못해 저도 모르게 빵 한 덩어리를 훔쳤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라구아디아 판사는 노인의 딱한 사정을 듣고 난 뒤에 "아무리 사정이 딱하다 할지라도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은 잘못입니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고 예외가 없습니다. 그래서 법대로 당신을 판결할 수밖에 없습니다. 피고에게 1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합니다"라고 판결을 내렸습니다. 방청석에서는 판사가 노인의 딱한 사정을 감안해 관대하게 선처할 줄 알았는데, 뜻밖의 단호한 판결에 여기저기서 술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라구아디아 판사는 논고를 계속했습니다. "이 노인이 빵 한 덩어리를 훔친 것은 오로지 이 노인의 책임만은 아닙니다. 이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도, 이 노인이 살기 위해 빵을 훔쳐야만 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임에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고 방치한 책임이 우리에게도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한 라구아디아 판사는 자신의 지갑에서 10달러 지폐를 꺼내며 “할머니의 벌금 10달러는 여기 있습니다. 제가 할머니에게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모자에 지폐를 넣고 법정에 있는 모든 이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이 법정에 있는 모두에게 50센트의 벌금을 선고 합니다. 그 이유는 누군가는 먹고 살기 위해 빵을 훔쳐야 하는 그 곳에서 우리 모두가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집행관! 벌금을 걷어 피고에게 주시오!” 그렇게 해서 그 자리에서 걷힌 57달러 50센트를 할머니에게 전해 드렸습니다. 노인은 돈을 받아서 10달러를 벌금으로 내고, 나머지 47달러 50센트를 손에 쥐고 감격의 눈물을 글썽거리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부터는 다시는 남의 물건을 훔치는 일을 하지 않겠습니다"라며 고마움을 표시하고 법정을 나갔습니다. 이런 판사, 이런 법관이 있는 나라가 되면 참 좋겠습니다. 법은 법 되로 판결하고 그 벌금을 자기 지갑에서 꺼내어주며 벌금을 내게 하는 판사… 라구아디아는 당시 재판에서 시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명 판결을 내렸고 이 사건은 미국 역사상 유례가 없는 판결로 당대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그 후로도 라구아디아는 원리원칙을 고수하며 부정부패와 맞서 싸웠고 시민들의 삶과 존엄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인간적인 판사로 이름이 널리 알려졌습니다. 얼마 후, 정치에 투신하여 선거공약으로 당시 뉴욕을 점령하고 있던 마피아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던 뉴욕시민들의 환호와 지지로 뉴욕시장에 당선되었습니다. 그는 부패한 경찰조직을 개편했으며, 불법 슬롯머신 소탕 작전에 들어갔습니다. 마피아의 갖은 위협과 협박에 굴하지 않고 ‘언터쳐블’이라는 영화로도 소개된 바 있는 ‘알카포네’보다도 훨씬 거물이자 뉴욕 마피아 보스였던 ‘찰스 루치아노’를 기소하여 뉴욕 내 마피아 조직을 와해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공화당인 그는 민주당의 뉴딜정책이야말로 경제대공황과 그로 인한 대규모 실업난을 해결할 수 있다는 소신을 가지고 공화당으로부터의 변절자라는 압박에도 불구하고 반대파인 민주당을 지지하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 결과 루즈벨트 대통령으로부터 약11억 달러의 지원금을 받아 뉴욕의 경제난을 해결했으며, 그 후 라구아디아는 시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세 번이나 뉴욕시장을 연임하며 뉴욕을 세계제일의 도시로 일구어냈습니다. 아깝게도 그는 뉴욕시장으로 재직 중에 비행기사고로 순직하였습니다. 64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시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았고, 그의 이러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딴 미국정부는 ‘라구아디아 국제공항’을 뉴욕에 만들었습니다. 뉴욕시는 시내에서 가까운 허드슨 강변에 위치한 이 공항에는 오늘도 많은 여행자들에게 편안하고 편리한 공항을 잘 쓰면서 이분의 이름을 기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