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이 맞다고 생각하고 기독교 신앙을 포기하려고 하던 찰나, 창조과학 강의를 듣고 믿음을 회복한” 모태신앙인(母胎信仰人)인 군목(軍牧; chaplain)을 필자가 만나 본 적이 있다. 반대로 진화론과 성경을 조화시켜 보려고 무진 애를 쓰다가 “진화론과 성경은 도저히 양립(兩立; compatible)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어릴 때부터의 신앙을 버린 S대학교 교수도 있다.
진화가 사실이라면 성경이 틀린 것이고, 성경이 맞다면 진화론이 틀린 것이다. 진화론도 진리이고, 동시에 성경도 진리일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위의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길을 가기는 했지만, 자신의 양심에 따른 사람들이다. 물론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각자 계산을 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진화(Evolution)도 인정하고 성경(Bible)의 창조(Creation)도 인정하는 방법은 성경 창세기의 창조 기사를 뒤틀어서 진화에 맞추는 방법 밖에 없다. 예를 들면, 창세기의 창조 기사는 사실의 기록 아니라 시적(詩的)인 표현이라든가! 또는 신화(神話)라든가!
창조를 믿지 않고 진화론을 믿으면서 기독교 신앙을 유지해보려고 만든 진화론이 유신진화론(有神進化論; theistic evolution)이다. 유신진화론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모순이다. ‘유신(有神)’과 ‘진화(進化)’는 같이 붙여서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동그란 삼각형’이란 말처럼 모순적인 표현이다. 진화라는 말 자체가 신(神)을 거부(拒否)한다.
진화의 시간 순서(timeline of evolutionary theory)에 따른 새로운 종(種); species)이 출현할 때마다 하나님이 그 새로운 종을 창조하셨다는 이론이 점진적창조론(漸進的創造論; progressive creation)이다.
일단 성경을 처음부터 이렇게 뒤틀어 놓으면, 성경의 다른 부분을 뒤트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더 쉽다. 부활 기사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납득이 안 되면, 거리낌 없이 자신의 상상에 맞추어 해석하면서도 아무런 두려움도 느끼지 못한다.
성경의 신적 기원을 부정하는 철학에 대한 문제를 논의하기에 앞서, 과학과 철학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철학은 고대로부터 존재했던 학문 분야이지만, 과학은 과학혁명을 통해 탄생한 비교적 최근의 학문 분야이다. 철학을 포함한 다른 학문분야에는 없는 과학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은 무엇인가? 어떤 학문분야가 과학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과학이란 말은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그 의미가 다를 수 있다. 과학자가 생각하는 과학, 과학의 문외한이 생각하는 과학, 또한 과학이라는 학문 자체를 연구 대상으로 하여 과학의 본질을 연구하는 과학철학자가 생각하는 과학은 서로 다를 수 있다.
앨버트 아인슈타인(1879-1955)과 함께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로 일컫는 저명한 물리학자인 리처드 파인만(1918-1988)의 이야기를 들어 보기로 하자.
파인만에 의하면, 사람들은 ① <무엇을 발견해내는 특별한 방법>과 ② <그렇게 해서 발견한 것들의 지식 체계>와 ③ <어떤 것을 발견해 냈을 때 그것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새로운 것이나 현실에서 구현해 내는 것> 중에서 하나 또는 둘 또는 모두를 과학이라 생각한다.
위에서 ③은 과학기술이라 불리기도 한다. ②의 지식 체계는 과학만의 고유한 특성은 아니다. 과학이 다른 학문 분야와 구별되는 특징은 ①에 언급한 <무엇을 발견해내는 특별한 방법>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