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이 끝이 나자 각국은 해방을 맞이하게 됩니다. 우리 나라는 1945년 8월 15일에 해방을 맞이하여 78주년이 되었습니다. 같은 해에 필리핀도 독립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 후에 세계는 소위 식민지에서 해방되는 각국의 독립이 이어졌습니다. 인도는 1947년에 독립하게 되어 47이란 수를 잊지 못합니다. 미국은 76이란 수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1776년에 미국이 독립선언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도 우리와 비슷한 날짜 1948년 5월 14일 독립을 하였습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살고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우리 민족이 광복을 맞이한지 78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 민족은 완전한 해방을 맛보지 못했습니다. 일제 강점 시대에 우리에게는 빛이 없었습니다. 전혀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일제의 통치가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와 8월 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지 며칠 만에 꿈같은 일이 기적처럼 온 것입니다. 광복은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해방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된 것처럼 우리 나라의 광복도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입니다. 광복이란 단어가 ‘빛이 다시 돌아왔다’는 기독교 사상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성경은 예수님을 세상의 빛으로 표현하였고 예수님 역시 그리스도인을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광복은 우리 민족에게 비췬 최고의 크고 값진 ‘빛’이었습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기도로 세워진 나라입니다. 하나님이 해방을 주시고 하나님이 세워주신 나라입니다. 영원토록 하나님이 지켜 주실 줄로 믿습니다.
주님의 사역을 돕고 이어나가기 위해 주님은 열 두 제자를 세우셨는데 기도로 세우셨습니다. 배재학원 출신 감리교 장로인 이승만 박사가 대통령이 되면서 제헌국회 개원 때 감리교 목사의 기도로 이 나라를 세웠고, 감리교 윤치호 장로가 작사한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라는 가사가 (작곡은 안익태 선생) 있는 애국가를 삼았습니다. 기도로 세운 대한민국이며 기도로 세운 이 나라를 영원토록 하나님이 지켜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는 기독교 국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48년 5월 31일 오후 2시 제헌국회 개원식장(옛 중앙청 회의실) 역사상 최초로 실시된 5.10 총선거를 통해 국회의원 300명중 100명은 북한 몫으로 때어놓고 200명중 선출된 제헌국회 의원 198명(제주 2개 선거구는 4.3사건으로 선거 연기)은 결연한 모습으로 식의 거행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앞서 임시의장으로 선출된 이승만 박사가 단상에 올라 “동지 여러분! 대한민국 독립 민주국회 제1차 회의를 열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는 바입니다. 먼저 이윤영 목사님 나와서 하나님께 기도드리기 바랍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공식 회의 순서에도, 계획도 없는 기도를 감리교 목사 출신 의원에게 즉석에서 갑자기 부탁한 것입니다. 순간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누구보다 놀란 것은 이 의원이었습니다. 제헌국회 의원 중에는 이 의원을 비롯해 오택관, 이남규, 오석주 등 4명의 목사가 있었고. 신도로서 이승만, 김동원, 김상돈, 강영옥, 윤치영, 황두연, 서용길, 윤재근, 홍성하, 정준 등이 있었습니다. 기독교 사학자 김수진 목사는 “전체 의원 198명 중 크리스천 의원이 50여명에 달했다”며 “그중 30명은 신우회까지 조직, 교섭단체를 구성하려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의원들이 모두 일어선 가운데 이 의원은 간절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윤영 목사 개원식 기도입니다. “우리에게 독립을 주신 하나님!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 이 민족을 돌아보시고 이 땅에 복을 내리셔서 감사에 넘치는 오늘이 있게 하심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랜 세월 동안 이 민족의 고통과 호소를 들으시고 정의의 칼을 빼셔서 일제의 폭력을 굽히셨으며 세계인의 양심을 움직이시고 우리 민족의 염원을 들으심으로써 역사적인 환희의 날이 우리에게 오게 하시고 하나님의 섭리가 세계만방에 드러나게 하셨음을 믿습니다. 하나님, 아직까지 남북이 둘로 갈린 이 민족의 고통과 수치를 씻어주시고 우리 민족, 우리 동포가 손을 같이 잡고 웃으며 노래 부르는 날이 우리 앞에 속히 오게 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 민생의 도탄이 오래 갈수록 이 땅에 악마의 권세만 확대될 것이오니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이 속히 이 땅에 임하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독립을 주신 하나님, 이제는 남북의 통일을 주시고 또한 민생의 복락과 아울러 세계 평화를 허락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국회의사당 국회 속기록에 기도 전문이 실려 있습니다. 사전 준비 없이 짧지만 정말 미리 준비한 것 같이 간결한 기도, 남북대치를 내다보고 사탄의 역사를 막아달라고까지 한 이 기도는 예언적인 기도라 할 수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첫 헌법은 이 기도의 정신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의원은 헌법기초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참여했으며 초대 내각 총리로 물망에도 올랐습니다. 수많은 기독교 인사들은 불안한 광복 정국을 봉합하는 촉매제가 됐습니다. 원래 주일(1948년 5월 9일)에 치러지기로 했던 총선일도 기독교계의 반대로 변경됐습니다. 비록 기독교 국가는 아니지만 현재 국회조찬기도회 등을 통해 기도하는 국회·국가라는 인식을 세계에 심어주게 된 것도 제헌국회 첫날의 기도 정신이 계승됐기 때문입니다. 광복을 맞이하며 백범 김구 선생은 기쁜 마음으로 서둘러 귀국을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국내 사정은 너무나 좋지 않아 산업시설이나 교육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있지 않았고 또한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치안시설마저 부족하여 불안한 상황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김구 선생의 협력자들은 먼저 나라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경찰서를 추가로 건립해야 된다고 건의했습니다. 하지만 김구 선생은 그러한 건의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경찰서 백 개를 세우는 것보다 교회 하나를 세우는 것이 훨씬 낫네!” 김구 선생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은 누가 보지 않아도 시키지 않아도 법을 지킬 것이며 이웃을 사랑할 것을 믿었습니다.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