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열 목사 (본지주필, 기독교한국신문논설위원 군남반석교회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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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기독교사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발견하고 잘 감당하다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랑과 존경을 받으며 사도바울처럼 달려갈 길을 다 가신 분들이 수없이 많다.
그중 김정준 목사님이 있다. 한신대학교 학장과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원장을 지낸 구약학계의 석학으로 잘 알려지신 분이다.
30대에 경주의길 교회 목사로 있다가 결핵으로 죽음의 직전에 이르게 되었다. 교회를 사임하고 결국 결핵환자들의 무덤이라고 부르는 마산 결핵병원으로 가게 되었다.
폐의 70%를 잘라내고 남은 폐로는 3개월 정도만 살수 있다는 선고를 받았다.
절망에 빠졌다. 그러나 다시금 마음을 바꾸었다. 앞으로 남은 3개월을 낙심하면서 울며 눈물로 보낼 것이 아니라 3년처럼 여기고 보람 있게 살다가 죽으리라 다짐했다.
김정준 목사님은 남은 3개월을 죽음의 병동 이라는 제7병동에서 죽어가는 환자들의 각혈을 깨끗이 닦아주었다. 대소변을 받아주며 미소를 잃지 않으며 자원하여 봉사했다.
3개월이 지났다. 그러나 목사님은 의사의 말대로 죽지 않았다. 자신이 결심했듯이 3년 동안이나 더 그 병원에서 봉사했다. 기적같은 일은 계속되었다.
3년이 아니라 그 병원에서 나온 후에도 30년을 더 살았다. 70세에 소천하셨다.
더 말할 나위 없이 목사님의 삶은 고통 받는 자들을 위한 희생과 헌신의 연속이었다.
김정준 목사님의 호는 만호다. ‘늦을만’자에 ‘벼이삭호’이다. 찬바람이 불어오는 초겨울에 어느 요양원 옆 논둑길을 산책했다. 논에는 벼들이 다 베어져 소산하기만 하는데 유독 한포기의 벼가 베어지지 않고 벼알을 가득히 매달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요양원에 있는 다른 친구들은 다들 앞에 갔는데 나만 이 벼처럼 늦게까지 외롭게 서 있구나. 늦었지만 열매 알알이 맺고 있는 저 벼처럼 나도 저렇게 살아야지 결심하고 늦이삭이라는 호를 갖게 되었다.
1981년 세상을 떠났는데 다음은 그의 유작이다.
<내가 죽는 날>
그대들은 저 좋은 낙원 이르니 찬송을 불러주오 / 또 요한계시록 20장을 끝까지 읽어 주오 / 그리고 나의 묘비에는 이것을 새겨 주오 / ‘임마누엘’ 단 한 마디 만을 / 내가 죽는 날은 비가 와도 좋다 / 그것은 내 죽음을 상징하는 슬픈 눈물이 아니라 / 예수의 보혈로 내 죄 씻음을 받은 감격의 눈물 / 내가 죽는 날은 바람이 불어도 좋다 / 그것은 내 모든 이 세상 시름을 없이하고 / 하늘나라 올라가는 내 길을 준비함이라 / 내가 죽는 날은 눈이 부시도록 햇빛이 비추어도 좋다 / 그것은 영광의 주님 품에 안긴 내 얼굴의 광채를 보여줌이라 / 내가 죽는 시간은 밤이 되어도 좋다 / 캄캄한 하늘이 내 죽음이라면 / 저 빛나는 별의 광채는 새 하늘에 옮겨진 내 눈동자이리라 / 오! 내가 죽는 날 / 나를 완전히 주님 것으로 부르시는 날 / 나는 이 날이 오기를 기다리노라 / 다만 주님의 뜻이면 이 순간이라도 번개처럼 닥쳐와 번개처럼 사라지기를 / 그 다음은 내게 묻지 말아다오 / 내가 옮겨간 그 나라에서만 / 내 소식을 알 수 있을 터이니 / 내 얼굴 그곳에서만 볼 수 있을 터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