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가 심각한 위기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국민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장로교단 주요 6개 교단 신자만 해도 3년 사이에 55만 명이나 줄었다고 합니다. 목회자들이 모이는 곳에 등장하는 대화의 주제 중의 하나가 한국 교회의 위기입니다. 한국 교회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논의가 많지만 이를 타개할 길은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이 더 큰 위기입니다. 이원규 교수는 한국 교회가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양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끝없이 그 위상이 추락하여 사회적 공신력을 상실했다는 질적인 측면에서 생겨나는 문제의식이라 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실제로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종교 가운데 유일하게 개신교만 교인 수가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한국 교회가 사회적으로 존경과 신뢰를 잃어버리고, 오히려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교회가 사회를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교회를 염려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개탄의 목소리도 들리는 현실입니다. 왜 한국 교회의 위기를 나타내는 징후들이 일어났습니까? 그 원인은 보는 시각에 따라 다양합니다. 그 중에서도 한국인들은 한국 교회의 어떤 점이 문제라고 보는 것일까요? 이 문제는 한국 교회에 대한 낮은 신뢰도의 요인이 되고 있기에 매우 중요합니다. 한국 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한국 개신교의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양적 팽창/외형에 너무 치우친다는 것입니다. 물량주의에 너무 물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세속화되어 세상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회봉사와 이웃사랑의 실천에 인색하며 교파가 너무 많고 단합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전도활동이 지나쳐서 혐오감을 주고 타종교인과 무종교인에게 너무 배타적이라는 것입니다. 너무 시끄럽고 요란하다는 것입니다. 헌금을 지나치게 강요하며 도덕적으로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목회자의 사리사욕/이기심 등 그 자질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지나치게 자기교회 중심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평가는 목회자나 교인들이 생각하는 한국 교회의 현실과 다소 동떨어진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밖 사람들은 바로 그러한 문제적인 현실 때문에 한국 교회에 대하여 냉소적이거나 비판적이라는 사실에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로부터의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는 한 한국 교회의 미래는 밝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 조사에 따르면 위에서 지적된 한국 교회의 문제에 대하여는 상당히 많은 교인들도 공감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이원규 교수는 “물론 섬김과 나눔의 실천을 통해 사회적으로 모범을 보인 교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도 있기는 하지만, 세상에 비쳐진 한국 교회의 자화상은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 교회는 그동안 돈과 권력과 명예를 놓고 끊임없이 다투고 헐뜯고 갈라지고 분열되었고 (장로교단만 130여개라니 우리 신도들은 갈라져서 좋을 것 하나도 없는데 왜 그렇게 노회까지도 쪽이고, 쪽이어 힘이 없게 만드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권과 파벌과 금권으로 얼룩진 교단 정치의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교단 간의 이합집산과 갈등, 되풀이되는 이단 시비와 사이비 교회 집단의 출현도 문제가 되고 있다. 일부 교회의 목회 리더십 교체의 무리한 방법 사용과 재정 비리, 상업화 혹은 기업화된 운영, 초호화판 건물 건축도 매스컴이 한국 교회를 비판할 때 어김없이 단골 메뉴로 등장하고 있다. 물량주의와 성장제일주의, 그리고 개 교회주의에 물들어 있는 것도 세속화의 전형으로 지적되고 있다. 타 종교와 전통 문화에 대한 지나친 배타성도 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이 교수의 말은 틀린 지적이 아닙니다. 또한 정재영 교수는 축약하여 “한국 교회의 위기는 신앙과 삶의 ‘이원화’에서 기인됐다”고 진단한다. 곧 교회가 기독교적 가치로 세상과 구별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공공성’ 회복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릅니다. 사실 초기 한국 교회는 사회 부조리를 혁파하고 새로운 가치 질서를 제시하는 선구자의 역할을 감당했지만, 오늘날 공공의 선을 향한 교회의 노력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국 교회 구성원들이 시민사회에서 공적인 역할을 하는 책임과 노력이 요청됩니다. 필자는 조심스럽게 존경하는 목사님들에게 물어 보고 싶습니다. 단상에서 성도들에게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이 말씀 귀 아프게 들었습니다. 그런데 정년 은퇴할 때 규정에 의해 교회들이 성을 다해 예우하는 데도 어떤 목사님은 이상의 금전 요구를 하여 ‘빵 목사로’ 전략해버리는지 바라보는 우리 성도들은 평생목회 여기서 망처 버리는 것 같아 안타갑기만합니다. 매사가 처음도 중요하지만 끝이 중요합니다. 처음에 아무리 잘했어도 끝맺음이 좋지 않으면 평생 잘했던 것 소용없습니다.
지금 우리 기독교가 위기라고 합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기독교를 떠나고 있고 전도하기 힘 듭니다. 이것은 나를 포함한 이런 지도자들의 탓으로 생각이 듭니다. 한국 교회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희망은 있기라도 한가? 어려운 질문이지만 얼마든지 희망은 있습니다. 문제는 한국 교회가 초대 교회가 가진 풍부한 성경적, 영적 보고를 어떻게 찾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종교사회학자 로드니 스타크의『기독교의 발흥』은 유익한 방향성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줍니다. 김영래 교수가 요약한 스타크의 자료에 의하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부활, 그리고 서기 350년 사이 일어난 교회의 경이적인 성장을 연구해 왔습니다. 그의 연구를 요약하여 정리하면 첫째로 기독교인들이 세상에서 일반인과 구별되게 살았습니다. 둘째로 기독교인들이 진심으로 서로를 섬기고 이웃을 참된 사랑으로 돌보았습니다. 셋째로 기독교인들은 성경의 가르침대로 결혼과 가정생활을 성결하게 지켜갔습니다. 넷째로 기독교인들이 인종차별과 신분차별을 강력히 거부했습니다. 다섯째로 기독교인들이 성실히 일했으며 주변으로부터 신뢰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지적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일 수도 있지만 오늘의 한국 교회가 비중 있게 들어야 할 메시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교적 삶으로 변화만이 희망이라고 봅니다. 여기서 선교적이라 함은 소속이나 행위가 아니라 삶의 방식을 의미합니다. 즉 선교 적으로 살고. 선교 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세상에서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선교와 연결하여 바라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삶의 양식을 갖게 되면 목회의 초점은 내부에서 외부로, 프로그램에서 인간으로, 개 교회 관점에서 하나님 나라의 관점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결국 ‘한국 교회의 희망이 있는가?’ 그 해답은 교회지도자들의 변화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언제나 희망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희망을 만들기 위해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 모두가 절실한 심정으로 선교 적 삶을 통하여 타인보다 먼저 자신을 목회하고, 한사람의 소중함에 열정을 쏟아야 합니다. 지금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요나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다른 곳으로 갔던 것처럼 한국 교회가 다른 곳으로 가고 있지 않습니까? 스스로 해답을 찾아야 합니다. 문화는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도 빠르게 쇠퇴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의 희망을 위한 변화도 빨라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