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롬 12:1).
어떻게 우리 몸을 드려야 합니까? ‘하나님께 몸을 드린다’는 것은 전적으로 헌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무엇이 전적인 헌신인가에 대해서는 잘못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위에서 이런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 몸을 바치려면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교회를 위해 24시간 충성해야 한다. 세상 직업은 다 일시적인 것일 뿐, 하나님 나라에 가면 아무 의미 없는 것이다. 그러니 너는 목회자가 되어 전적으로 주를 위해 살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우리 주위에서 조금 은혜 받은 사람 보면 너도나도 신학교 가라고 했습니다. 또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여 신학교 문을 두드리고 목회자가 됩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 한국 교회가 얼마나 문제가 많습니까? 이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병들고 피해를 입고 있습니까? 그래서 혹자는 한국 교회의 문제는 신학교 문제요, 교회의 문제는 결국 목회자 문제라고 했습니다. 한때 무인가 신학교의 양산, 무자격자들의 양산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출산율 저조로 우리의 다음세대가 줄어들고 그에 따른 학령인구와 교회학교 인구가 줄어 그런 사람조차도 찾아 볼 수 없는 심각한 시대입니다.
성직자가 되어야 하나님께 몸을 바치는 것이라면, 성직자가 아닌 대다수의 성도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들은 몸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과 상관없는 사람들입니까? 어떤 학자의 계산에 의하면 우리가 한평생을 살면서 시간의 40%를 직장에서 보낸다고 합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잠자는 시간이나 여가 시간을 빼고 나면 우리가 한평생을 통해 교회에 나와서 앉아 있는 시간은 계산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미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7,80년밖에 안 되는 인생의 전부를 세상일만 하다가 보내 버린 꼴이 될 것입니다. 이런 경우 누가 감히 하나님 앞에 가서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몸을 드렸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가 의기소침해져서 절망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차라리 지키지도 못할 로마서 12장 1절은 성경에서 도려내 버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몸을 드린다는 것은 교회에서 예배하거나 성직자가 되어 헌신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몸을 가지고 활동하는 모든 영역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가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전 생활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헌신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몸을 사용해서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께 바쳐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호남기독신문 애독자 여러분, 우리가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몸을 던져 일하는 생업이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의 성격을 가져야 함을 명심하고 오늘도 주어진 선물로 주신 하루를 잘 관리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