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을 주셨습니다. 일은 죄 때문에 들어온 것이 아닙니다. 미처 죄가 들어오기 이전에 이미 일이 있었습니다. 죄로 인해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일이 몹시 힘들게 느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생에게 일을 맡기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을 두고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요 5:17).
그러므로 우리는 몸으로 땀을 흘려 일해야 합니다. 우리의 몸을 움직이고, 머리를 움직이고, 그 외 다른 지체를 움직여서 하는 모든 일들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가 몸을 통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제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지극한 자비 때문에 자기의 몸이 새로운 가치를 갖게 되었다는 것을 발견한 신자는 속된 일과 거룩한 일을 구별하지 않습니다. 목사의 일이 거룩하다면 회사 일도 거룩합니다. 교회에서 하는 일이 거룩하다면 부인들이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바치고 있는 가사도 거룩합니다. 교회가 하나님 앞에 제사 지내는 제단입니다. 동시에 우리의 가정이나 직장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제단입니다. 구별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삶 전부가 하나의 제사로서 하나님께 드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철학자 스킬더는 “그리스도인은 중생 받지 않은 문화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고 만족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예수 안 믿는 사람, 즉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이 열심히 뛰고 있는 현장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나 주워 먹고 만족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 곳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일터요, 우리가 제사 드려야 할 제단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온 우주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일하는 모든 현장은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셔야 할 거룩한 곳입니다. 구원 받지 못한 사람들이 그 지역을 장악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됩니다. 보다 적극적으로 일터에 뛰어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몸을 사용해서 그 곳을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거룩한 제단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지는 직업이나 생업은 죄 짓는 일만 빼고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소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누추하고 천한 일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의 소명인 줄 알고 순복하면 하나님 앞에 빛나고 가장 귀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을 수 없다”는 신학자(칼빈)의 말은 옳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무슨 일을 하느냐’보다는 ‘어떤 자세로 그 일을 하고 있느냐’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소명입니다. 여러분의 직장이 인생의 거의 전부를 바쳐서 일하는 곳이라고 한다면, 그 곳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소명의 일터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이것을 등한히 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그 일이 무의미한 것이 될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호남기독신문 애독자 여러분, 이번 주도 우리에게 주어진 곳에서 하나님의 소명을 완성합시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