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핀과 프로토케라톱스
학원출판공사에서 1993년에 발간한 <학원세계대백과사전>에 ‘그리핀’이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그리핀 griffin : 공상의 동물. 머리와 앞발 및 날개는 독수리이고, 몸체와 뒷다리는 사자이다. 고대 동방 여러 나라들이나 그리스 장식미술품에서 소재로 즐겨 사용하였는데, 눕거나 앉아 있는 모습이 많고 다른 동물을 덮치는 유린도(蹂躪圖)도 많이 부각되어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그뤼프스라 하는데 북방 미지의 나라 스키타이에서 황금 보물을 지키는 괴수로서 애꾸눈족인 아리마스포이 사람들이 황금을 훔치러 오는 것을 막아 싸웠다고 한다.”
미국 미네소타 대학에서 과학사와 신화학·고전을 공부하고, 2006년부터 스탠포드 대학에서 고전과 과학사 객원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아드리엔느 메이어(1946- )는 전설상의 그리핀이 공룡 프로토케라톱스를 근거로 하여 만들어진 것이라 주장한다.
그리핀에 대하여 더 자세한 것을 아드리엔느 메이어가 쓰고, 김정미가 옮긴 <화석오디세이> 31쪽에서 인용해보기로 하자.
“사람들은 그리핀을 가리켜 신화 속의 동물일 뿐이라고 치부한다. 17세기 이래 대부분의 고전학자, 고대사학자, 예술 전문가, 과학사학자, 고고학자, 동물학자들은 ‘사자와 독수리를 혼합하여 만들어 낸 상상의 동물’이라고 단정하고, 낯을 가리며 탐욕스럽고 황금을 캐는데 훼방을 놓는다는 이미지의 상징이라고 정의해 왔다. 이러한 견해를 처음 주장한 인물은 영국의 토머스 브라운이었다. 그는 1646년 통칭 ‘브라운의 미신론’으로 알려진 <전염성 유견>이란 저서에서 그리핀을 ‘불가해한 상징적인 짐승’이라고 단정을 지었다. 이때부터 고대 여행가의 기록을 믿지 않으면서 이른바 ‘객관적이고 과학적’ 사고를 중시하는 경향이 널리 확산되었다.”
“물론 반론을 제기하는 학자들도 있었다. 예컨대 1652년 앤드류 로스는 고대인들이 독특하고 실제적인 동물을 관찰한 후에 그리핀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목소리는 소수였다. 나는 앤드류 로스의 견해가 옳다고 믿었고 그리핀은 고대인들이 화석뼈를 관찰하고 만들어 낸 이미지였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고생물에 대한 전설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단서로 여겼다.”
“실제로 그리핀은 구성 면에서 단순한 요소가 하나도 없었다. 그리스 신화의 영웅 펠레로폰이 탔던 말 페가소스를 비롯하여 사자의 몸에 인간의 머리를 한 스핑크스, 위는 인간이지만 아래는 황소인 미노타우로스와 말인 켄타우로스처럼 가공적인 합성 요소가 하나도 없다. 그리스 신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자연 속의 어떤 존재를 기반으로 하여 민간에 전승되는 설화 속에서 탄생한 동물이다. 또 신화에 등장하는 괴물과 달리 신의 자손도 아니고 신과 영웅의 모험담과도 연관되어 있지 않다. 아시아에서 황금을 찾아 헤매는 평범한 사람들이 마주쳤던 동물이며 오늘날까지 살아 존재한다고 믿어지는 짐승의 하나일 뿐이다. 대부분의 현대 역사학자들은 그리핀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한 고대 작가들을 황당무계한 이야기에 잘 속는 어수룩한 사람 또는 공상에 사로잡힌 하수인 정도로 여긴다. 하지만 나는 고대 자료를 뒤지면서 그리핀을 묘사한 작가들이 선정적인 어휘를 무척 삼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