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편 42:1~5)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종종 낙심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의 원수 마귀가 낙심의 덫을 놓고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낙심”은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사탄의 강력한 무기 중 하나입니다. 낙심하기만 하면 그 때부터 사탄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우리를 넘어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시편 기자가 원수에게 조롱을 당하지만 그 와중에도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하겠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어려움이 올 때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고, 믿지 않는 자들이 아무리 네 하나님이 어디 있냐고 비아냥거려도,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면서 기도하고 찬송했던 것입니다. 명심하십시오. 신앙생활에서 낙심은 금물(禁物)입니다.
첫째, 응답이 더딜지라도 낙심은 금물입니다.
시편 기자는 비록 기도의 응답이 더디었지만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더욱 갈망했습니다. 기도하다가 응답이 더디면 낙심이 찾아오기 쉽습니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낙심치 말고 응답의 때를 기다리면서 끝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차분하게 하나님의 때를 바라고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시편42:1~2 눅18:1~8).
둘째, 열매가 안 보일 때에도 낙심은 금물입니다.
시편 기자는 지난날에 성일(聖日)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며 기쁨과 감사의 찬양을 올려드렸고, 또한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돌아온 것은 배신과 비방뿐이었습니다. 이처럼 죽도록 충성을 다해도 열매가 안 보일 때가 많습니다. 그럴지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거두게 하실 하나님 한 분만을 바라보면서 낙심하지 않기를 원합니다(시편 42:4 갈라디아서 6:9).
셋째, 고난이 계속 되어도 낙심은 금물입니다.
시편 기자는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라는 대적들의 비방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낙망하거나 불안해하지 않고 계속해서 하나님만 바랐습니다. 고난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가는 수단이자,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요 훈련의 도구임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도 고난이 계속될 때 낙심치 말고 하나님만 바라기를 원합니다(시편42:10 고린도전서 10:13 시편 119:71).
성도 여러분!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종종 낙심을 맞닥뜨리게 되지만 어떤 경우에도 낙심은 금물입니다. 즉 기도하다가 그 응답이 더딜지라도 낙심하지 말아야 하고, 부지런히 심고 거두어도 열매가 안 보일지라도 낙심하지 말아야 하며, 뜻하지 않은 고난이 연거푸 우리를 괴롭게 할지라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낙심해봤자 사탄에게만 좋은 일을 시키기 때문입니다. 낙심하면 우리의 미약함만 보이게 될 뿐(잠24:10) 백해무익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제라도 낙심 대신 소망을 품기 바랍니다. 즉 고난 중에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면서 여전히 찬송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