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한다. 난 믿음이 있다. 믿음을 지킨다. 믿음의 사람이라고 자부하며 하나님께 여쭙는 신앙인으로 살고파 노력을 경주한다. 믿음의 경주를 할 때 버거운 것 무거운 짐 하나님이 맡으시고 벗겨주시니 가벼운 마음으로 삶의 터전을 향해 주 만 바라보고 경쾌한 뜀박질을 한다.
매월 1일이 되면 새롬의 한 달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린 후 어김없이 지인들에게 안부를 묻고자 이동통신사에서 제공하는 무료문자 3000건을 사용하여 인사말씀을 올리는 것으로 의례적인 정례행사를 치른다.
이번 달도 예외 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청명하고 풍요로운 10월을 맞아 항상 강건하시고 형통하시길 기도합니다’라고 하나님께 먼저 여쭙고 문자를 드린다.
문자 후 답장을 받아보며 각인된 활자를 통해 마음이 교감하는 재미는 쏠쏠하다. 문자를 받고 “오 또 한 달 됐습니까? 하나님 복 많이 받으세요”, “박 회장님, 어김없이 시간은 갑니다. 기도 덕분에 한 달도 무사히 끄떡없이 보낼라요. 언제 한번 봅시다”고 한다. 늦게 문자를 보내려고 하면 “왜 무슨 일 있었냐. 기다렸다. 아프지 말고 건강하시라”고 답이 온다. 이 맛 때문에 십 수 년 동안 소통의 장을 이어가는 것이고 계속 이어질 동력을 얻는다.
간혹 어리둥절할 때가 있다. 연로하신 분의 전화번호가 없는 번호(결번)라고 뜨면 혹시나 돌아가셨을까 걱정되어 되돌아온 번호로 눌러 본다. 역시 ‘없는 전화번호입니다’라면 궁금증이 더한다. 젊은 사람 소유의 전화번호가 ‘회신불가’처리 되면 무슨 일 없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차제에 이번 달도 어김없이 행사를 진행했다. 흥겨운 마음으로 회신목록을 점검하다 “문자 보내지 마라. 네가 기독교인이고 장로냐?”는 어처구니없는 답신을 접하게 됐다.
그냥 넘어 가려고 해도 미련이 있어 되돌아보아진다. 잊으려고 해도 계속 마음속에 남아있다. 털어버리려고 해도 계속적으로 화가 치밀어 제어가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기도하고 ‘무슨 일이든 주께 맡기고 주님의 뜻대로 하십시오’하면서 그것도 참지 못하고 신앙인의 자세를 흩트리며 역정을 내는지 헤쳐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믿음이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려니 애써 잊으려 한다.
믿음의 성장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나로서는 장로 직분을 감당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며 삶을 영위했다. 좋으신 하나님을 욕되게 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주일을 범지 않기 위해 주위 모임이나 단체에서 진행하는 주일날 행사는 어떤 행사든 마다하고 주일 성수했다. 신앙인의 지조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단 말이다.
물건을 살 때도 깎지 않고 달라는 대로 지불했고 어렵다며 돈을 빌려달라거나, 보증 서 달라 하면 사양하지 않고 응해서 수억 원을 대리 변제한 것도 나의 인생 이력의 한 줄이다. 그래서 무지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며 여기까지 오면서도 신앙인의 긍지를 저버리지 않고 꿋꿋이 살아오며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사명을 감당해 오고 있다. 그런데 날더러 “장로 자격이 없다, 기독교인이 아니다”라는 문자를 접했다.
지금까지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격이나 권한에 침해 당해본 적이 없다.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질서를 최대한 지키며 내가 손해 보는 인생 여정을 살아 왔기 때문이다. 나는 나 자신에게 묻는다. 진짜 장로의 자격이 없는 신앙인인지 겉만 예수를 믿노라하며 크리스천의 냄새가 나지 않는지 말이다. 그러나 시시비비를 따지기 전 옷 매무새를 고쳐 입고 주님 앞에 엎드려 눈물 바가지 쏟아야 할 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은 추석 연휴로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쌓으려고 기도하는 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이 또한 나를 시험하는 일이다.
자기 뜻에 맞지 않는다고 음해해도 참고 웃어 제치자. 하나님은 그러하지 않은 줄 아시기 때문이다. 잘못하거나 무서워서가 아니다. 하나님께 맹세코 그 자에게는 잘못 한 것 없고 혹여 무섭거나 두려워서는 더욱 아니다. 아무렇게나 말하고 산다면 누군들 못하겠는가만은 그래도 지성인이요, 교계 지도자라면 한번 쯤 생각하고 의사를 표시하는 크리스천이 되자. 상대방은 하나님께 여쭙고 안부를 묻는데 보이지 않는다고 바보 같은 심보는 근절되어 건강한 사회공동체가 형성되길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