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쁘다 구주 오셨네.”
12월25일은 우리가 기다리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성탄절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가 무슨 날인지 물어봅니다. 아이들의 대답은 한결같습니다.
“산타 할아버지가 썰매타고 오셔서 선물주시는 날이요!” 성인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크리스마스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주고받는 날이 되어버렸습니다. 기독교 문화가 활발한 우리나라는 그나마 나은 경우입니다.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는 정말 크리스마스가 무슨 날인지 모릅니다. 모두들 산타클로스의 날이라고 대답합니다. 성탄절은 온 세상이 잘 아는 대로 예수님의 생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있는 남의 생일잔치에 참여하듯이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지나 않은지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곰곰이 새겨 보아야 합니다.
성경에는 그렇게 중요한 예수님의 탄생하신 날짜를 정확히 기록하고 있지를 않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예수의 무덤도 남아 있지를 않고, 성경의 원본도 없습니다.
왜 없앴을 까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단지 로마 황제 가이사랴 아구스도 시대에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습니다. 또 갈릴리의 헤롯 왕 때에 처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런 굵직한 역사적인 사실만 남겨 놓았지 태어난 날짜는 남겨 놓지 않았습니다.
이런 뜻에서 예수님의 탄생은 여느 인간의 생일과는 전혀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탄의 장소는 거룩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도둑의 소굴로 전락하고, 장사치들의 시장으로 변해버린 예루살렘의 성전은 만원이었습니다.
여관방도 인파로 가득 찼고, 가정집의 사랑채도 빈 곳이 없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3D 직종에 종사하는, 들판의 양떼를 돌보고 겨우 입에 풀칠하는 목자들이 성탄을 알아보고 마음으로 맞이할 뿐이었습니다.
유대 땅도 아닌 외지의 점성가들 즉 동방박사 세사람 만이 찾아와 맞이했을 뿐입니다. 세상의 그늘진 곳, 굶주림에 허덕이고 질병에 시달리는 곳, 의에 주리고 목마름이 심한 곳…그런 낮고 낮은 곳의 상징인 말구유에서 예수님이 태어났습니다.
이는 마치 큰 나라 임금이 벌레보다 못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퇴임 등으로 인해 과거보다 사회적 지위가 낮아지면 대개 우울증에 걸리고 심지어 자살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전직 대통령이었던 사람이 과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검사나 경찰에게 모욕을 당하면 죽고 싶은 심정이 든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저 높고 높은 보좌를 버리고 낮고 낮은 곳으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크리스마스의 참된 의의는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태어나셨다는 것입니다. 처녀 탄생은 하나님이 사용한 수단입니다.
그 수단이 꼭 인간의 이성에 맞아야 된다는 법도 없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 취하시는 수단은 인간이 생각하는 테두리 안에서 취하시지 않습니다. 처녀 탄생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고, 우리가 중요하게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관심은 이상하게도 “하나님이 이 세상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다”하는 이 굵직굵직한 진리에 대해서는 눈이 어두워져 있고, 크리스마스가 역사적으로 정확한 날짜니 아니니, 처녀 탄생은 인간이 만들어 낸 신화에 불과하다 아니다 라는 것을 떠들면서 조그마한 지식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성탄의 기쁨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성탄을 잘못 이해를 하면 성탄의 진실한 기쁨을 잊게 됩니다. 성탄을 사회 사업적인 해석을 하면 그렇게 됩니다. 즉 성탄에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 하자라든가 병든 사람을 찾아 보자라 던지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친구에게 카드를 보낸다던가, 어린이들에게 성탄 선물을 준다,’라는 의미를 찾으려고 하면 진실한 성탄의 기쁨을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이 그런 목적으로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탄을 정치적으로 해석을 하면 헤롯과 같이 엉뚱한 잘못을 저지르게 됩니다. 성탄을 종교적인 측면으로 해석을 하게 되면 바리세인들처럼 메시아를 기다린다고 하면서 막상 나타나신 메시아를 마귀의 왕이라고 하고 배척 죽이게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1.자기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마1:21)
2.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기 위하여(마3:11-12)
3.율법을 완전케 하시기 위하여(마5:17)
4.죄인들을 불러 회개시키기 위하여(마9:10-13)
5.하나님 아버지를 세상에 알리기 위하여(마11:27)
6.이방인들에게까지구원과심판을알리시기위하여(마12:18)
7.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마16:18)
8.잃은 자를 찾아 구원하시기 위하여(마18:12-14)
9.자기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 물로 주시기 위하여(마20:28)
10.많은 사람이 죄사함을 받게 하기 위하여(마26:28)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보다 더 기쁘고 좋은 소식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신 성탄절이 되었다고 금방 세상이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을 기대하고 바라는 것 자체가 이상한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성탄을 잘못 생각하기 때문에 성탄의 진실한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태어나시고, 구세주가 이 세상에 오셨고,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우리를 찾아 오셨다는 데 대해서 기쁨의 강수가 흐릅니까? 기쁨이 마음에 넘칩니까? 그렇다면 더 이상 다행스러운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성탄이 우리들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고 기쁜 일이 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1. 자신의 비천함과 죄인임을 알아야 합니다. 마리아는 자기를 일컬어서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 보셨습니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참으로 성탄을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의 비천함을 아는 사람입니다. 이런 말을 하면 어떤 사람은 나는 비천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좋은 가정이 있고 세상을 살기에 필요한 지식과 경험이 있으며, 건강이 있고 아름다움이 있는데 무엇이 비참하고 비천한가라고 물을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다고 해도 죄인은 언제나 비천하고 비참한 것입니다. 요사이 그런 사람들이 무척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런 사람들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데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찾아오신 예수님을 만민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탄생을 만민이 다 찬양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가 비천한 자이고 죄인인줄 아는 사람만이 진실로 기쁘게 영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리아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가브리엘이라는 천사가 찾아간 곳은 유대가 아니고 갈릴리였습니다. 갈릴리는 유대 나라 사람들이 멸시하는 지역입니다.
예루살렘이 아니라, 나사렛이었습니다. 왕궁이 있는 곳이 아니라, 초라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입니다. 왜? 천사가 그 곳을 찾아 갔을까요? 비천한 자를, 자기가 비천한자 라는 것을 아는 자들을 찾아가신 것입니다. 그것보다도 하나님 앞에서의 자기를 발견하는 사람, 즉 자기가 죄인임을 아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을 기뻐하고 찬양하며 이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합시다.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