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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기 목사 (상리교회, 범사회문제대책운동본부 사무총장) |
뭔가 ‘잃어버린다’고 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몇 년 전에 부산에 갔을 때, 뒷주머니에 두었던 5만원을 잃어버린 적이 있다. 기분이 안 좋았다. 하지만 5만원을 잃어버린 것은 집에 도둑이 든 것이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치매’이다. 치매는 ‘기억’을 잃어버린 질병이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병’이 치매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50년을 함께 살아온 아내가 남편을 못 알아본다. 자녀의 얼굴도 못 알아본다.
만일 제 아내가 어느 날 갑자기 저에게 “누구세요?”한다면 가슴이 무너져 내릴 것이다. 요즘도 가끔 드리는 기도가 있다. “주여, 제 아내나 저나 치매에 걸리지 말게 하옵소서!”하는 기도이다.
그런데 기억을 잃어버리는 ‘치매’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우리 주님에 대한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에베소교회’는 요즘 말로 ‘스펙’이 대단한 교회이다. 에베소교회는 ‘바울’이 개척하여 세운 교회이다. 바울의 후임자는 ‘디모데’이다. 동시에 ‘사도 요한’이 말년에 목회했던 교회가 바로 에베소교회이다. 그러니 이보다 더 스펙이 좋은 교회가 어디에 있겠나? 그런데 주님께서 에베소교회에 대하여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다.”고 책망하셨다. 에베소교회의 처음 사랑은 ‘순수하고, 진실하며, 뜨거웠다.’ 그들에게 주님께 대한 ‘진실과 열정’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되었나?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다.
20세기 미국의 예언자로 불리는 ‘에이든 토저’(A.W. Tozer)목사가 ‘신앙이 타락하는 3단계(영적인 타락 3단계)’를 이렇게 설명했다. 타락하기 전에는 구원의 감격을 누리며, 뜨거운 열정으로 살아간다. 그런데 다음의 3단계를 거치며, 점점 타락해간다는 것이다.
첫째 단계, 기계적인 상태이다. 아무 느낌 없이 종교적인 활동을 반복한다. 오랫동안 교회에 출석하고, 자주 드리는 예배와 찬양으로 인해 새로운 감격과 기쁨이 사라진다. 이렇게 기계적으로 종교적인 행위를 반복하는 것이 타락의 첫 번째 단계이다.
둘째 단계, 습관적인 상태이다. 아무 느낌 없이, 종교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간다. 그래서 지금 자기 영혼 죽어가고, 공동체가 병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조차 분별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세 번째 단계, 부패의 상태이다. 이 상태는 양심이 화인 맞아, 죄에 대한 두려움을 모른다.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을 잊은 채 경건을 자기만족의 수단으로 삼는다. 아무 생각 없이 죄악을 반복한다. 그러면서 세상 사람들보다 못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에베소교회가 신앙이 타락하는 ‘첫째 단계’에 접어들었다. 오랜 신앙생활을 하면서 감격과 기쁨이 사라졌다. 주님께 대한 열정과 사랑이 사라졌다.
그런데 에베소교회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도 얼마든지 이렇게 될 수 있다. “나는 아냐~”하며 자신을 배제하지 마시기 바란다! 나도 얼마든지 에베소교인처럼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고 ‘기계적인 상태’에 접어들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어떻게 해야 처음 사랑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 계 2:5에 보면 주님이 주시는 처방이 나온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먼저 “생각하라”고 했다.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라’고 했다. “무슨 이유로 주님께로 부터 멀어지게 되었는지 생각하라”는 거다. 무슨 일이든지 ‘시작’이 있다. 처음 사랑을 버리게 된 일에도 ‘시작’이 있다. 그 시작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생각하고’란 단어의 헬라어는 ‘므네모뉴에’라고 한다. ‘계속 생각하고 회상하라.’는 뜻이다.
어떤 사람이 건강할까? 건강을 끊임없이 살피는 사람이 건강하다. 건강에 대해서 자신하는 사람은 길어야 40세까지이다. 건강을 자신하고 이것저것 다 먹고, 몸을 함부로 굴리고 다니면 건강에 적신호가 오게 되어 있다. 젊은 시절부터 자신의 건강을 잘 살피는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있다. 영적으로도 그렇다. 자신을 계속 돌아보며 생각을 해야, 영적으로도 건강해진다. 하나님의 처방도 그렇다. “생각하라”고 하신다. 한 번만 생각하고 말 것이 아니라 ‘계속 생각하고 회상하라.’고 하신다. 무엇을 생각하라고 하시나?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라”고 하였다. 내가 어디에서부터 주님에게서 멀어졌는지 생각하라는 것이다. 주님에게서 멀어지게 된 ‘처음, 그 시작’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하라는 뜻이다.
어떤 분은 교회에 와서 기도할 때 눈만 감으면 자동으로 나오는 기도가 있다. “주여, 저는 죄인입니다. 저를 용서해주옵소서!” 이런 기도는 소중한 기도이면서 동시에 위험한 기도이다. 용서의 내용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습관적으로 이렇게 기도한다. “주여, 저는 죄인입니다. 저를 용서해주옵소서!” 그러면 하나님이 뭐라고 하실까? “그래, 용서하마. 그런데 무엇을 용서해달라는 것이냐?”하실 거다. 용서를 구하는 회개의 내용이 있어야한다. 내용도 없이 습관적으로 “저를 용서해주옵소서!”하면 토저가 말했던 타락의 첫째 단계, 기계적인 상태에 머물게 되는 것이다.
에베소교회의 문제를 꿰뚫어 보셨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네가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라! 네 신앙이 어디에서부터 문제가 생겼는지를 생각하라!”
여러분도 생각해보십시오. 과거에 비해서 지금 어떠신가?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나? 예배를 더 열정적으로 드리고 있나? 그전보다 더 순수하게 교회를 섬기고 있나? 말씀에 순종하며 헌신하는 신앙의 질이 그전에 비해 어떠신가? 예배드릴 때, 예배 시간에 대한 기대감이 있나? 선뜻 대답할 수 없다면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이다.
세계적으로 볼 때, 코로나로 인하여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교인들이 많다. 코로나가 확산되며 대다수의 교회들이 ‘온라인예배’를 선택했다. 집에서 조그마한 핸드폰을 켜놓고 예배드리는 교회가 많아졌다. 코로나가 길어지며 멀리 야외로 놀러가서 핸드폰을 켜놓고 1시간 동안 예배드리는 교인이 많아졌다. 성가대도 안 서고, 주일학교 교사도 안 하고, 식당 봉사도 안내도 안 한다. 어디에서 무슨 옷차림을 하고 있든지.. 하루에 1시간 온라인으로 예배드리면 그만이었다. 그러다가 코로나로 인한 집합금지가 해제되며,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그런데 2년여 동안 집에서 온라인예배를 드리다 보니, 그 편안함에 길들여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든다. “구지 교회에 가서 예배드릴 필요 있어? 하나님은 영이신데.. 집이나 교회나 아무데서나 예배드리면 되는 거 아냐?” 그러면서 토저가 말한 둘째 단계 ‘습관적인 상태’를 거치고.. 세 번째 단계 ‘부패의 상태’에 접어들게 되는 것이다.
여러분은 어떠신가? 어디서부터 신앙심이 떨어지게 되었나? 신앙의 감격과 열정이 사라지게 된 원인이 무엇인가? 그 시작이 무엇인가? 여러분의 신앙이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시라! 어디에서부터 문제가 생겼는지를 생각하시라! 바로 그 자리가 회개의 자리이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던 바로 그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그 자리에서 회개해야 한다. 그래야 다시 돌아설 수 있다. 다시 일어서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