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고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애청자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예수 믿는 궁극적인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께 경배와 찬양과 영광을 돌리는 데에 있다는 것을 한시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전회위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화가 바뀌어 복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이런 경험을 하게 됩니다. 특히 신앙 안에서 그렇습니다. 강가에 버려진 기구한 운명을 살았지만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모세, 형들에게 위해서 노예로 팔려갔지만 애굽의 총리가 되어 이스라엘을 구한 요셉, 갈릴리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던 시골 어부에서 인류의 스승이 된 예수님의 제자들.. 처음의 출발이 힘들고 안 좋았다고 해서 끝까지 불행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불행한 조건이 더 복이 된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바꾸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정해진 운명은 없습니다. 오히려 운명을 사랑해야 합니다. 백범일지를 보면 김구 선생이 과거시험을 보러갔다가 그냥 돌아옵니다.
중인의 신분으로는 장원급제를 한들 관직에 오를 수 없으니, 해봤자 글 못 쓰는 양반들 대신 글 써주는 일밖에 더하겠는가 하면서 포기한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본 선생의 부친이 선생에게 풍수․역학․관상에 관한 책을 구해주고 그 책들을 공부하도록 권합니다. 그래서 관상학을 공부하였는데 어느 날 자신의 얼굴 관상을 살펴보았다는데 눈도 거지요, 귀도 거지요, 코도 거지요, 입도 거지라는 풀이가 나왔습니다.
이에 실망한 선생은 양반도 아닌데 관상마저 거지 관상이니 살 이유가 없다면서 자살을 결심합니다. 그런데 관상 책 마지막 구절을 보고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관상불여심상(觀相不如心相1)- 관상이 제 아무리 뛰어나도 심상(心相)을 따라 갈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을 읽고 마음의 상이 우선이라는 것을 깨달은 김구선생은 자살 대신 독립운동을 시작합니다. 국가의 큰 인물이 됩니다. 똑같이 거지로 살 사주였어도 한 사람은 서울역에서 구걸하는 거지가 되고, 한 사람은 운명을 극복하고 나라와 민족의 독립을 위해 몸 바쳐 일하는 국가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하나님을 믿고 시인하고 따르면 우리의 삶은 믿음대로 됩니다. 하나님은 마음의 심지를 보시고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은 특별히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운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배우고자 합니다.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 길을 행하였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 졌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을 경험한 이스라엘은 당당하게 수르광야로 들어갑니다. 엄청난 구원의 감격 속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광야 길을 사흘 동안 걸었습니다. 3일 동안 무더위 속에서 행군한다는 것은 엄청 어려운 일 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피곤에 지쳤고 목말라 고통 속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물 근원을 찾고자 애썼습니다.
더울 때 목마른 것처럼 힘든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또 물처럼 반가운 것이 있겠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너무나 기뻐 다투어 그 물을 마셨습니다. 그런데 즉시 다 뱉어냈습니다. 써서 마시지 못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마라에서 발견한 물은 단물이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쓴물 이었습니다. 이들은 그 물을 ‘마라’라 하였습니다.
그 쓴물로 인해 구원의 감격 속에 있었던 이스라엘 사람들 마음에는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이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홍해가 갈라지고 세계 최강 애굽 군대가 홍해 바다에 수장되고 자신들이 구원받는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 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해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아직도 원망하고 불평하였습니다. 백성들의 대놓고 원망하는 모습을 보고 있던 모세의 마음은 찢어지는 듯 아픔을 느꼈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의 원망을 듣고서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를 하였습니다.“원망하여 가로되 하나님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하셔서 마라의 쓴물로 인해 죽이시려 하십니까? 우리를 구원해 주시옵소서.”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을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그리고 그 응답과 함께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셨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단만 쓴맛 다 맛보게 됩니다. 달면 맛있어 삼키고 쓰면 인상을 찡그리며 뱉습니다. 그리고 아름답고 단맛이 나는 삶을 살 때는 하나님께 감사를 하지만 삶이 쓰고 고통스러울 때는 왜 나에게 이런 환경을 주셨는가 원망도 합니다. 그런데 결과를 보면 여전히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사랑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화위복의 하나님, 우리를 위해서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하나님을 가리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시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가 당한 힘든 환경도, 실패도, 실수도, 잘못도 바꾸어 선으로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라의 쓴 물에 어떤 선한 의미가 있습니까? 왜 우리의 삶 속에 때론 마라의 쓴물이 필요합니까? 하나님은 이 쓴 물을 통해서 우리를 시험하고 교훈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단련시키고 믿음의 사람으로 키워 가신다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원망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감사하는가 보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말에 산전수전 다 겪는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또 눈물을 흘리며 빵을 먹어보지 않고 인생을 말하지 말라는 말도 있습니다. 인생 경험이 많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인생은 단맛 쓴맛을 다 맛봄으로써 그만큼 연륜이 깊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단 맛만 맛보며 살 수 없습니다. 삶은 쓴맛 단맛을 맛보며 살아야 성숙해 집니다.
깊은 산 속에서 아름드리 나무를 벌목한 것을 보면 나무테가 뚜렷히 보입니다. 연하고 짙고 연하고 짙은 것이 반복됩니다. 추운 겨울은 옅게, 더운 여름은 연하고 넓게 그렇게 테를 이루며 든든히 자라는 것입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겪으면서 성숙해 가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의 인생을 역전시켜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