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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열 목사 본지주필 군남반석교회담임 |
사람은 인생을 살아가며 끊임없이 선택의 갈림길에서 때로는 방황도 하고 선택해야만 하는 관념 속에 살아간다. 지금도 우리는 빛과 어둠 사이에서 선택하며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선택은 자유지만 결과는 자유가 아니다.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 믿음과 불신을 좌우하기도 한다. 특별히 중요한 선택 세 가지를 사람은 반드시 해야 한다.
첫째는 직업의 선택이다. 그것은 일하기 위해서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둘째는 배우자의 선택이다. 일생의 반려자를 선택하는 것은 중요한 선택이다. 신발짝 물리듯이 물릴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삶의 중심을 이루는 가정을 세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종교의 선택이다. 이것은 직업보다 배우자의 선택보다 더 중요하다고 볼 수도 있다. 종교는 삶의 뿌리는 의미한다. 폴틸리히는 말하기를 종교는 궁극적 관심이라고 했다. 진정으로 사람에게 있어서 종교냐 하나님이냐 우상이냐 천국이냐 지옥이냐 이런 갈림길에서 올바른 선택을 하기란 쉽지 않다.
올바른 선택을 하려면 지혜가 필수다. 지혜는 성경에서 얻을 수 있다. 성경은 미련하고 우둔한 자에게도 지혜를 준다. 인류 역사의 불후의 삼대 걸작은 신약성경 요한계시록을 소재로 한 단테의 신곡과 구약 창세기를 인용한 밀턴의 실낙원 그리고 구약 아가서를 서술한 괴테의 파우스트이다. 세계적인 음악도 바하의 위령곡이다. 베토벤의 엘리야 하이든의 천지창조이다. 미술도 미켈란젤로의 모세의 성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등이 성경에서 지혜를 얻어 창조된 작품들이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지혜를 얻으면 결코 후회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대개 큰 것과 많은 것을 좋아한다. 자신에게 작은 믿음이라도 있지만 그 작은 것은 작다고 써보지도 않고 포기해 버리는 사람은 없을까? 활용하고 적용해보지도 못하고 작다고 핑계하고 불평하지는 않는가?
영국의 사학자 아놀드토인비는 말하기를 창조적 소수가 결단하고 선택한다면 세계의 운명을 좌우할 수가 있다고 말했다. 작은 믿음 작은 숫자 작은 일부터 믿음을 따라서 하자는 것이다. 성경에는 노아의 대홍수 이후 노아의 여덟 식구는 새 시대의 주인공이 되었고 아브라함은 혈혈단신으로 부름을 받아서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그를 덮으니 오늘날 믿음의 조상이 되지 않았는가? 기드온의 삼백 명의 용사는 불신의 오합지졸 수만 명을 물리쳤다. 작은 믿음의 숫자가 큰 군대도 물리치고 승리했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열두제자가 오늘날의 세계만방에 기독교를 형성하고 있다. 복음으로 전 세계를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무관심한 사람들 수많은 불신의 사람들보다 헌신하고 드려지는 작은 것 같으나 강한 믿음의 소수들이 역사를 바꾼다. 영국을 변화시킨 요한 웨슬레는 ‘내게 죄를 버리고 하나님만 사랑하는 사람 열두 명을 주십시오. 그러면 영국의 운명을 바꾸겠습니다.’라고 했다. 스코틀랜드의 존록스는 ‘스코틀랜드를 나에게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나에게 죽음을 주십시오’ 라고 기도했다. 아프리카의 선교사 리빙스턴은 ‘사자에게 물린 후에 내가 나의 사명을 다하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불러가지 않으신다.’라고 말하면서 본주의 선교부에 말하기를 ‘나를 아프리카보다 더 험한 곳에라도 보내주십시오’라고 전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움직이는 창조주 하나님은 언제나 작은 숫자지만 믿음을 선택한 사람들을 통해서 역사하신다.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를 이끌어간 사람들은 언제나 작은 숫자였다. 그들은 고독했다. 그 당시 사람들에게 조롱과 핍박과 버림을 당하지 않았던가? 개인은 약하다. 그러나 믿음을 선택한 개인은 강하다. 이 믿음의 사람의 특징은 자기희생을 주저하지 않으며 이웃의 눈길이나 비웃음도 개의치 않는다. 사욕을 위해 불의와 결코 타협하지 않는다.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함께 믿음을 선택하는 사람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