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정보들을 많이 알고 있다. 교회나 가족, 책, SNS를 통해서 자주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보’로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과 직접 ‘만남’으로 아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한 번은 교회 제자반에서 출산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참고로 그 모임은 50대-60대 초반 여성이 대부분이다. 필자는 딸을 넷 기른 아빠로서 첫 아이부터 넷째 아이까지 나름대로 전문가인 것처럼 장황하게 설명하였는데, 그 중 장난기 있는 제자 한분이 질문을 했다.
“목사님, 아이 낳아 보셨어요?” 나는 그 날 한 방에 가버렸다. 그 다음은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다.
아이를 낳아 본 적이 없는 내가 출산이 이렇고 저렇고 하는 지식은 경험적인 지식이 아닌 정보적인 지식이다. 사람을 아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지식적으로 아는 것과 경험해서 아는 것은 다르다. 얼굴이 어떻고, 키가 얼마나 크고, 고향이 어디이고, 나이는 몇 살이고, 뭘 좋아하고 등.... 하지만 프로필을 아는 것만으로는 그 사람을 안다고 할 수 없다. 정보적인 지식은 마음에 큰 감동을 가져다 줄 수 없다.
하지만 실제로 그 존재와 만나면 어마어마한 감동이 생기게 된다. 정보를 통해서 아는 지식은 이 실제적인 만남을 통해 아는 지식을 결코 넘어설 수 없다.
한 달에 한 번 교회 권사님이 운영하시는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단장한다. 갈 때는 아내와 동행한다. 미용실에 들어가니 TV를 보시던 권사님이 평소와 다른 환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한다.
“목사님 어서 오세요.”
“아니, 뭐가 그렇게 재미있으셔서 TV에 빨려 들어가고 있어요?”
“목사님, 요새 뜨고 있는 TV 프로예요. 지금 보이스트롯 재방송 중인데 권사가 찬양보다 트롯에 빠졌어요...”라고 말하며 약간 부끄러워하였다. 권사님은 손으로는 머리를 다듬으면서 눈과 귀는 TV 보이스트롯으로 가있었다.
그러다 염려했던 불안이 현실로 다가왔다.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가 높은 점수를 받자 흥분하여 잠시 머리 다듬는 것을 잊어버린 것이다. 탄성을 지르다 머리 일부분에 가위 자국을 더 깊게 내었고, 평소보다 더 짧은 머리로 한 달을 살아야 했다.
그때 나는 보이스트롯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나 또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도대체 설교자의 설교보다 권사님의 마음을 빼앗아가는 것이 무엇일까? 그래서 트롯 관련 자료들을 검색했고 그동안 방영했던 최근 프로들을 ‘재방송’ 프로그램을 통해서 거의 다 섭렵했다.
보이스트롯, 미스트롯, 미스터트롯, 뽕다발, 신청곡을 불러드려요, 히든싱어 등등... 각 방송사마다 경쟁적으로 프로그램을 방영해서 코로나 펜데믹 시대에 트롯의 열풍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한 달 후 머리를 단장하기 위해 미용실에 갔다. 그 날은 못 보던 파스를 자랑하였다.
“목사님 파스 좀 드릴까요?”
“무슨 파스인데 주시려고 하세요. 권사님 붙이시기도 부족할텐데 권사 님 쓰세요.”
“아니예요. 나눠줘도 될 만큼 충분해요. 사실은 미스터트롯에 나오는 김호중이 팬이에요. 그래서 호중이가 홈쇼핑에 나와서 이 파스를 광고하기에 호중이가 좋아서 파스를 샀어요.”
“얼마인데요?”
“16만원 이에요.”
그때 나는 내심 놀랐다. ‘도대체 호중이가 뭐라고 이런 파스를 돈 아까워하지 않고 사나였다. 이래서 광고회사들이 비싼 돈을 투자해서 유명인들을 쓰는 구나.’
덕분에 파스를 선물로 받아와 요긴하게 사용하였다. 그 후로 권사님의 변명은 ‘호중이 권사님’이 되었다. 재밌게 붙여드린 것이지만, 호중이 관련된 질문을 하면 평소에 말이 없는 분이 흥분하며 술술 이야기를 곧잘한다. 그리고 행복해한다.
그 당시 호중이를 모르는 나에겐 그 이름이 별로 큰 울림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나보다 호중이에 대해서 많이 아는 권사님은 ‘호중이’하면 먼저 가슴 속에서 벅찬 감동이 솟아오르는 것이다. 만약 ‘호중이 권사님’이 호중이를 직접 만난다면 그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으리라....
성경은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에게 아주 풍성한 지식을 제공한다. 그분이 행하신 일, 그분의 성품, 그분의 생각 등등.... 성경을 잘 읽을 때 우리는 그분이 누구신지에 대해 최상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프로필에 대한 정보를 소유한다고 해서 그것을 하나님을 진정으로 아는 지식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나님의 프로필을 넘어서 그분과 실제적으로 만날 때, 그 경험은 우리의 존재에 지각변동과 같은 울림을 가져다주고, 그 감동은 각 사람에게 주어진 내면세계의 특성에 따라 화산이 폭발하는 듯한 무수한 언어들을 솟구쳐 오르게 한다.
어떤 사람은 그 언어가 글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노래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을 춤일 수도 있다. 사람에 따라 다 다르지만 각자 하나님과의 실제적인 만남 속에서 ‘영감’을 얻고 각자의 언어들을 통해서 그분의 존재를 표현하고자 하는 벅찬 갈망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과의 만남은 너무 중요하다.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이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기 때문에 만나기를 원하는 사람은 만나주신다. 국민일보에 연재되는 내용 중에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들’이라는 글이 있다. 개인적으로 만난 주님을 간증한 내용이다. 어떤 사람은 질병 가운데서, 어떤 사람은 사업의 실패 가운데서, 어떤 사람은 사고 가운데서, 또 어떤 사람은 관계의 깨어짐 가운데서 주님을 만난 것이다.
하나님과의 실제적인 만남은 우리의 영혼에 말할 수 없는 기쁨과 감격을 가져다준다. 선하심, 인자하심, 거룩하심, 자비로우심, 전능하심 등... 프로필로만 알았던 하나님의 성품들은 그분을 실제로 만나 뵈었을 때 오직 그분만을 기뻐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쌓고, 깊은 기도 속에서 그분을 날마다 만나며, 생활 속에서 그분의 성품을 알아가며 동행할 때, 우리 삶에는 시냇가에 심긴 나무와 같은 풍성함이 나타나게 된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삶(간증)’을 살게 되는 것이다.
사람도 만나고 싶은 사람을 잠깐 만나도 하루종일 기분이 좋고 자랑을 하고 다니는데, 나는 만왕의 왕,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과 날마다 만난다고 하면서 기쁨도 없고, 그분을 자랑하지도 못하는 메마른 상태일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구주를 생각만 해도
내 맘이 좋거든
주 얼굴 뵈올 때에야
얼마나 좋으랴?
구주를 생각만 해도
내 맘이 좋거든
주 얼굴 뵈올 때에야
얼마나 좋으랴?
사랑의 구주 예수여
내 기쁨 되시고
이제와 또한 영원히 영광이 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