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박사 박승준 씨가 쓴 ‘내 몸의 설계자, 호르몬 이야기’라는 책이 있다.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유지하려면 무엇보다 ‘호르몬 관리’가 중요하다.”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호르몬이 결핍되거나, 과하게 분비되어 균형이 깨지면.. 우리 몸의 균형도 무너져 각종 질병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나에게 관심을 끈 내용이 있었다. “사랑도 호르몬의 변화로 인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현상도 그렇다. 생물학자들은 자식에게 쏟는 부모의 절대적인 애정의 근원을 ‘뇌와 호르몬’의 상관관계로 이해한다. 뇌에 ‘도파민’이 증가하면서, 자녀에 대한 애정이 생겨난다는 거다. 도파민 외에도 ‘옥시토신’이 뇌에 영향을 미치며, 자녀 사랑의 마음이 생겨나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본능적인 현상’이라는 설명이다. 나는 상당히 많은 공감을 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마 7:11) 아무리 악한 사람일지라도 ‘자기 자식’은 사랑한다는 말씀이다. 자식 사랑은 ‘본능’에 가까운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자녀를 사랑하라.”는 설교를 했던 기억이 없다. 구지 자녀를 사랑하라고 하지 않아도 누구나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람의 방법이다. “자녀 사랑이 얼마나 지극한가!”는 것은 문제 되지 않는다. 자녀를 사랑하는 방법이 문제이다. 부모들이 가지는 착각이 2가지 있다. 첫째, 자녀가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이 사랑이다. 자녀가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둘째, 자녀에게 사랑을 쏟으면 알아서 나중에 부모에게 효도할 것이다. 그러면 세상 모든 부모들이 자녀에게 효도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자녀에게 사랑을 쏟으면 알아서 나중에 부모에게 효도할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르쳐야 한다. ‘한양대학교’에서 고전문학을 가르치는 ‘정민’ 교수가 한 일간지에 ‘애이불교’(愛而不敎)라는 글을 실었다. ‘애이불교’(愛而不敎)는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인 ‘윤기’ 선생이 쓴 ‘잡기’(雜記)에 나오는 말이다. (愛而不敎 獸畜之也, 애이불교 수축지야) “사랑하기만 하고 가르치지 않으면 짐승으로 자란다”는 뜻이다. 정민 교수는 이 말을 설명하며, 중국 송나라의 주자(朱子)가 쓴 ‘주자가례’(朱子家禮)에 나오는 글을 소개했다. 어느 부부가 어려서부터 제 자식을 귀한 줄로만 알고 그저 오냐오냐 하고 키웠다. 아이는 ‘좋고 나쁨’을 구분하지 못했다. 나쁜 짓을 하면서도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그렇게 자란 아이는 그런 생각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나중에는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화를 낸다 한들,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막을 수 없었다. 사랑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에 아픔이 생겨나고.. 부모는 결국 그 아이를 미워하게 되었다. 아이도 자신을 그렇게 키운 부모를 원망하며, 결국 패역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이 이야기를 소개하며 (愛而不敎 獸畜之也, 애이불교 수축지야) “사랑하기만 하고 가르치지 않으면 짐승으로 자란다”는 말을 했다.
그렇다.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다. 사랑의 방법이 잘못되었을 뿐이다. 진정한 사랑은 자녀를 바르게 교육하는 데 있다. 그래야 자녀도 바르게 성장하고, 그런 자녀가 부모에게 효를 다하는 것이다. 잠 22:6에도 보면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했다. 이것은 세상 모든 어른들에게 주시는 말씀이지만 특히 ‘부모’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무엇이 마땅히 행할 길일까? 여기서 ‘길’은 히브리어 ‘다르코’라 하여 ‘삶의 방식과 태도’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마땅히 행할 길’은 ‘마땅히 행할 삶의 방식과 태도’를 말한다. 오늘 성경은 ‘마땅히 행할 삶의 방식과 태도’를 가르치라고 하였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무엇이 ‘마땅히 행할 삶의 방식과 태도’일까? 우리가 자녀에게 가르쳐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오늘은 그중에 가장 중요한 1가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무엇보다 ‘참과 거짓’을 가르쳐야 한다. 옳고 그름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남의 물건에 손을 대지 말아라. 거짓말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 어른을 보면 공손히 인사를 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어떤 부모는 자녀에게 ‘편하게 사는 법’만을 가르치려 한다. ‘공부 잘 하는 법, 성공하는 법, 남들보다 위에 서는 법’을 가르친다. 옳고 그름을 가르쳐야 하는데 잘못을 해도 그냥 지나간다. 그러면 나중에 불효를 해도 자기가 잘 하는 줄로 알게 된다. 잘못을 했으면 따끔하게 혼을 내야한다. 계속 말을 안들으면 매도 들어야 한다. 그게 자녀를 사랑하는 것이다. 잠 29:15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행하게 버려둔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채찍과 꾸지람’은 매를 들고 혼을 내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하면 자식이 어떻게 된다고 했나?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자녀들에게 지혜를 준다고 했다. “아, 이러면 안 되는 구나! 이런 짓을 하면, 혼이 나는 구나! 이렇게 하지 말자!” 이렇게 지혜로운 아이로 변화된다. 하지만 ‘임의로 행하게 버려둔 자식’은 어떻다고 했나? “임의로 행하게 버려둔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임의로 행한다는 말은 ‘자기 멋대로, 자기 마음대로’ 행한다는 뜻이다. 그런 자식은 결국 어떻게 된다고요? 어미를 욕되게 한다고 했다. “저거 뉘 집 자식이야! 못된 짓은 골라서 하네!”하며 부모에게 욕이 돌아간다.
그런데 요즘 부모들은 자녀들을 너무 사랑하는 나머지 혼을 내지 않으려고 한다. 부모가 자식을 체벌하는데 신고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다가 자식을 망치는 것이다. 잘못을 하면 말로 타이르고, 그래도 말을 안 들으면 혼을 내야한다. 그래도 말을 안 들으면, 매를 들어야 한다. 그게 올바른 자녀 사랑이다. 잠 22:15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 아이들은 뭐가 옳은지 그른지 모른다. 기어 다니는 애기들은 손에 집히는 대로 다 입으로 들어간다. 과자 부스러기도 들어가고, 그러다가 머리카락도 들어가고 쓰레기통을 넘어뜨려서 다 입으로 가져간다. 음식만 그런 게 아니다. 눈으로 보고 귀에 들리는 대로 한다. 뭐가 참인지 뭐가 거짓인지 그분을 못 하고 마음 가는 대로 손이 가는 대로 한다. 그런 상태가 미련한 상태이다. 옳고 그름은 분별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하지만 ‘무엇’이 아이의 미련함을 멀리 쫓아낸다고 했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 때로는 매를 들 때 아이에게서 미련함이 벗어진다는 것이다. 이게 부모의 ‘진짜 사랑, 찐 사랑’이다.
어린아이들에게서 요즘에 관심있게 보는 것이 있다. ‘인사’를 하는지 안 하는지 하는 것이다. 요즘에 아이들은 인사를 잘 안 한다. 얼굴을 보면 그냥 지나간다. 왜 이런 일이 있을까? 점점 ‘올바른 가르침’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30일에 전남도의회에서 ‘성교육진흥조례안에 대한 공청회’가 도의회 2층에서 실시되었다. 조례안에는 학교에서 매년 15차시 실시하는 성교육을 20차시 이상으로 늘리자는 내용이 있었다. 대한민국에는 교육부가 제정한 ‘성교육표준안’이 이미 있다. 여기에는 매년 15차시 성교육을 하는 것으로 명시되어 있다. 사실 15차시도 많은 시간이다. 초등학생부터 중학생 고등학생까지, 해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성교육에 사용할 필요가 있겠나? 교육 현장에서는 부작용도 많이 나오고 있다. 다른 것을 다 떠나서 전남의 성교육 조례안은 불법이다. 그런데 다시 성교육 조례안이 고개를 들려 하고 있다. 건전한 자녀교육을 위해 반드시 막아야 한다. 그리고 자녀들에게도 가르쳐야 한다. 올바른 성교육을 학교에서 가르치고, 학교가 제대로 안 하면 부모가 가르쳐야 한다. 이렇게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칠 때 자녀들이 늙어도 그 가르침을 떠나지 않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