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생활은 지키는 것이다.
나는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지독하리만큼 우상 숭배를 터부시해 왔다.
그리하여 명절에 성묘한답시고 산소에 모여 조상이 먹을 거라며 상차림을 하고 엉덩이 처들며절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40여년의 신앙생활을 이어가며 단한번도 어긴적 없는 철학이 된 셈이다.
신앙생활 초창기 아버지의 출상때도 어김없이 지켰다. 어머니가 소천하셨을 때는 동네방네 떠들썩하게 믿지 않는 형제나 친척지간까지 도열시키고 찬송가를 목청껏 부르며 천국 환송예배를 드렸다. 하나님의 법은 철저히 지키는 못 말리는 성격의 소유자가 된 것이다.
금년 추석연휴에도 납골당이 있는 시골에 가지 않고 여느때처럼 자주 찾던 기도원에 갔다.
추석 전날 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변하여 새사람 됐네” “이때라 이때라 주의 긍휼 받을 때가 이때라” 힘찬 찬송을 부르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모습 속에 신앙인의 에너지가 힘차게 솟구친다.
오후 예배를 마치고 기도원을 출발 귀가길에 오른다. 옆 좌석 아내는 명절 연휴로 고속도로 통행료가 없음에 즐거워한다. 즐거움을 더하기 위해서는 점진적인 관심이 필요할듯했다. 즐거워하는 사람에게 공감의 추임새를 넣는 것은 건강한 가족공동체의 산물이 아닐까 싶다.
고속도로 톨게이트 입구를 지날때는 “입구영업소를 통과했습니다” 목적지 톨게이트에 도달하면 “영원(0)이 결제 됐습니다”라는 멘트에 어떤 재화라도 획득한 듯 야단법석이다.
통행료 무료가 그렇게 재미있었던지 “수원사는 손주 녀석이 감기로 오지 못했으니 수원 다녀오면 안되겠냐?”고 성화를 부른다.
콩나물을 살 때도 몇 줄기 더 주길 바라고, 생필품을 구매할 때도 얼마라도 싸게 사기 위해 흥정하며 깍쟁이의 대명사가 된 아내가 왕복 통행료 몇 만원의 기회를 놓치기 싫다는 듯 둘째 아들집에 역귀성(逆歸省)을 부추킨다.
다른때 같으면 피곤 운운하며 감히 생각지도 못할 상황이다. 사실에 비추어볼 때 나는 이미 허락이 아니라 공감하며 그리하기를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어린아이처럼 주섬주섬 선물 꾸러미를 챙기는 모습은 내가 어릴적 해남시골에서 목포 나온다며 잠을 안자고 설쳤던 모습과도 같았다.
네비게이션은 혼잡함을 피한다고 국도와 농로로 인도한다. 평상시 같으면 소요시간이 3시간 30분 정도인데 오전 9시경 출발 오후 7시 도착했다. 만 10여 시간을 도로 위에 있었던 것이다.
평상시 같으면 조금만 멀어도 괜히 왔다. 졸린다. 피곤하다. 언제 도착하느냐? 성화를 부릴것인데 길이 막혀도 “광야에도 길을 내시는 하나님 찬양”을 하고 사고로 인해 도로가 꽉 막혀 옴짝달싹 할 수 없어도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보호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하는 아내의 모습에 신앙인의 진수를 맛볼수가 있어 감사하다.
제로(0)통행료 덕분에 가족 여행하며 더욱 견고해진 하나님 사랑을 점검해 볼 수 있어 감사를 드린다.
아들집에 도착했다. 마중 나온 아들과 두 손주 녀석들을 보니 피곤함은 사라지고 즐겁고 기쁨뿐이다. 항상 그렇듯 꼬막손들과 함께 하나님 이야기하며 지내는 시간은 이루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이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다. 이모든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한다.
하나님이 추석연휴를 통해 영적 충전을 위한 기도원행, 무료 통행료 핑계삼아 자녀집을 방문해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다. 곡식을 심게 하시고 때에 따라 늦은비와 이른비를 허락하시어 풍성하게 열매 맺도록 하셨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추석 명절을 허락하셨다. 이 추수의 기쁨을 온 가족이 모여 기념하는 것이 추석이다”는 것을 아들과 손자들과 나눌 수 있도록 하나님이 자녀 삼아 주시고 보호하심에 감사드린다.
추석의 참 의미를 새기고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역귀성(逆歸省)하여 즐거움을 맛보아 가족공동체를 통한 배려심이 온누리에 솟구치는 형통의 날들이 도래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