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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괄본부장 박정완 |
‘우리 시아버지는 교회 수석 장로, 나는 천주교 신자입니다’라는 말을 한다.
신앙은 개인의 신념과 삶의 방향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믿는 가정의 구성원이라 할지라도 믿지 않는 가족이 있거나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진 경우를 본다. 처지가 어떠한지 짐작은 되지만 같은 장로인 입장에서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설득해 개종할 순 없었을까 자문해 보지만 오늘따라 감당할 수 없는 혼돈이 온다.
목회를 하는 절친하게 지내는 친구의 교회 권사님이 승용차 구입을 하신다하여 돕기 위해 판매 사원과 함께 약속 장소인 카페로 갔다.
찻집에서 판매 사원의 차량 설명과 함께 계약이 이뤄진다.
벽쪽에 ‘주일은 쉽니다’라고 적힌 안내 문구에 눈길이 멈춘다. 속일 수 없는 부분은 어디가든지 신원이 파악되지 않은 곳에서도 예수를 믿는다는 말을 들으면 왠지 가까운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주일 성수 한다니 반가웠다. 그때 여주인이 서비스용 과자 더미를 가져와 “직접 만든 수제 과자니 맛있게 드시라”고 한다. “어느 교회 출석하십니까?” 묻게 됐다.
젊은주인이 대답한다. “우리 시아버지는 00교회 수석 장로님이십니다, 그런데 저는 천주교 다닙니다. 교회는 시아버지 따라 00교회 주일예배에 참석할 때도 있습니다”라고 한다.
순간 젊은 사람이 시아버지 따라 교회를 나가면 얼마나 좋을까? 시아버지는 며느리와 함께 신앙생활을 할 수는 없을까? 권면이나 해보았을까? 종교적인 갈등은 없었을까?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잡을래야 잡을 수 없는, 버틸래야 버틸수 없는 수렁 속으로 빠질듯한 걱정에 사로 잡힌다. 이럴때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망설여진다. 요즘 젊은 세대는 어른들을 ‘꼰대’라며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혹여 공격성 발언으로 다가올지 몰라도 참을 수 없는 궁금증에 묻게 된다. “사장님 왜 시아버지가 다니는 교회에 나가지 않고 천주교를 다닙니까, 시아버지가 함께 신앙 생활하자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구원의 확신이 있는 교회에 왜 나가지 못합니까? 결단을 내려 시아버지 교회에 함께 나갈 수 없습니까?” 물어도 옅은 미소만 짓고 대답은 들을 수 없다.
어린시절 숫 송아지 끌고 가다 고삐를 놓쳐 뛰어가는 송아지를 바라보고만 있던 모습, 우리 송아지가 제도권 밖으로 줄행랑쳐 미래의 불확실성, 지키지 못하고 놓쳐버린 죄책감과 상실감이 떠오르며 마음이 착잡하다.
귀갓길에 하나님께 기도한다. ‘서로의 이해와 존중으로 가정 내에서 갈등 없이 주님 섬기는 가정되게 하옵소서. 믿음으로 하나 되도록 선한 길로 인도하여 주시길 원합니다.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둘러앉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나눌 수 있도록 은혜를 내려 주옵소서. 며느리가 구원의 확신을 갖고 시아버지 손잡고 00교회 출석하도록 강권적으로 붙들어 주시길 원합니다.’
시아버지와 며느리 간의 종교가 다른 것은 단순한 갈등의 원인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개신교 장로로서 며느리에게 구원의 확신을 심어주어 개종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해야 할 줄 안다.
가정공동체는 가족 구성원 간의 의사소통과 정서적 지지가 중요하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서로를 돕고 지지함으로 가족의 전통과 가치를 공유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서로 감당하며 가정 신앙공동체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은혜가 충만하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