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종영된 SBS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가 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신기하고, 놀랍고, 재미있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소재로 했다. 시청하다 보면 “세상에 이런 일이~”하는 탄성이 나오곤 했다. 매주 새로운 사건을 소개했다. 그런데 무려 26년이나 장수했다. “세상에 별의별 일들이 많구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세상일뿐만이 아니다. 우리에게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그중에는 좋은 일도 있지만 ‘급작스러운 질병, 사고’도 일어날 수 있다. ‘자녀 문제, 배우자의 문제’도 일어날 수 있다. 이것이 남의 일만은 아니다. 나에게도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살다 보면 신앙과 현실이 출동할 때가 있다. 신앙이 좋은 분들에게도 불행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거다. 예를 들어 누구보다 신앙생활을 잘하던 집사님이 ‘교통사고’로 갈비뼈 3대가 부러진다. 누구보다 기도를 열심히 하던 권사님의 자녀인데 ‘시험’만 보면 떨어진다. 누구보다 모범적으로 봉사에 앞장서시는 장로님이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게 된다. 누구보다 목양에 힘쓰던 목사님이 갑자기 쓰러져서 ‘뇌졸중’으로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신앙생활을 잘하고 기도에 열심이고 봉사에 앞장서고 목양에 힘을 쓰면 생활이 형통해야 정상이 아니겠나?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 신앙과 현실이 ‘충돌’하는 것으로 보일 때가 있다.
이스라엘 역사에 가장 빛나는 왕이었던 ‘다윗’의 경우도 그러했다. 다윗은 하나님을 잘 섬기던 왕이었다. ‘기도, 찬양, 예배, 말씀 묵상, 헌신...’ 모든 면에 있어서 모범적이었다. 그런데 그의 인생 말년에 끔찍한 일이 벌어지게 된다. 아들 중에 ‘압살롬’이 군사를 일으켜서 다윗이 거하던 왕궁으로 쳐들어왔다. 왕위를 빼앗기 위해서이다. 아들이 역모를 일으킨 것이다. 그러자 급히 왕궁을 빠져나와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들이 역모를 일으켰으니, 얼마나 참담한 일인가! 나라를 빼앗기는 것도 충격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아들의 칼을 피하여 도망자의 신세가 된 것은 더 ‘충격적이고, 부끄럽고,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하나님을 잘 섬기던 다윗에게 이해하기 힘든 일이 벌어진 것이다. 감당하기 벅차고 힘든 고통이 찾아왔다. 자신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신앙과 현실이 충돌한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같은 극한 상황에서 다윗에게 발견되는 태도가 있다. 그는 잠잠히 하나님만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무너진 삶의 영역을 다시 세워주시기를 소망했다. 시 62편은 다윗 왕이 압살롬을 피해 도망 다니며 지은 시이다. 1절에 보면, 이런 말로 시작하고 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누구만을 바란다고 했나?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다윗은 오직 ‘하나님’만을 잠잠히 바라보았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해주길 원했다. 여기서 ‘잠잠히’는 히브리어로 ‘두미야’라 한다. ‘잠잠하다, 고요하다’는 뜻이다. 다윗은 참혹한 고난 가운데 있지만, 요란하게 떠들지 않았다. 하나님의 처분만을 바라보았다. 조용히 하나님께 의뢰하고, 하나님의 손에 맡기며.. 고요하게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렸다. 그는 오직 하나님밖에 없음을 절감하였다. 5절에 보면, 이와 비슷한 고백을 다시 반복했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이번에는 믿음에서 흔들리지 말라고.. 자기 자신에게 명령했다. 먼저 “나의 영혼아~”하였다. 그가 자기 자신을 부른 것이다. 이어서 스스로에게 명령했다. “잠잠히 하나님만을 바라보아라! 너의 소망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이 사실을 잊지 말라는 거다.
필자는 압살롬을 피해 도망을 다니는 다윗을 떠올리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당시에 다윗의 신앙이 좀 나태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다. 왕위에 40년 가까이 앉아 있었다. 40년이면, 처음에 가졌던 순수함을 잃어버리기에 충분한 기간이다. 신앙도 형식적으로 변하고 태만한 자세를 가지기 쉬운 기간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도 관행에 젖어서 습관적으로 치우칠 수 있는 기간이다.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용맹한 장수들, 최신 무기, 재물, 군사제도’를 의지하게 되는 기간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윗이 이러한 상태에 안주하기를 원치 않으셨다. 그래서 압살롬의 역모를 통하여, 다윗을 뿌리째 흔들어 놓으신 것이다. 이를 통해 다윗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었다. “네 몸에서 낳은 아들이 너를 죽이려 들고 있다. 하물며 네가 의지하는 장수들이 너에게 의지할 대상이 되겠느냐! 네가 의지하는 군사들과 백성들이 너를 구할 수 있겠느냐!” 다윗이 깨달은 사실이 있다. “누구도 자신을 도울 수 없다.”는 사것이다. 사람이 인생의 쓴맛을 보면서 깨닫게 되는 사실이 있다. “사람은 믿을만한 존재가 못 된다.”는 것이다. 아직 인생의 쓴맛을 보지 못할 때는 어떤가? 사람을 너무 잘 믿는다. 친구도 철석같이 믿고 직장 동료도 믿고 선배도 후배도 다 믿는다. “사람이 사람을 못 믿으면 누굴 믿어!”하면서 돈도 빌려주고 보증도 서고 한다. 그러다가 배신의 아픔을 당하게 되며 깨닫게 되는 사실이 있다. “사람은 믿을만한 존재가 못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 사람은 사랑하며 섬겨야 할 대상이지 믿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사람은 믿을만한 존재가 못 된다. 우리가 믿을만한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다. 왜 하나님만이 믿을만한 분일까?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시다. 약속을 반드시 이루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믿을만한 분인 것이다. 또 하나님은 능력이 무한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를 구하여 건질 수 있는 분이다. 우리를 건질 능력이 충분히 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믿을만한 분인 것이다.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2가지 있다. 첫째, 거친 파도를 잠잠하게 하신다. 내 힘으로 다스릴 수 없는 풍파를 잠잠하게 하신다. 살다 보면 갑작스러운 풍랑이 일어날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는 일이다. 모든 풍랑을 다스리시는 주님을 의지하는 일이다. 그럴 때 나를 둘러싼 풍랑이 잠잠해질 것이다.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볼 때 주님께서 하시는 일 두 번째는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신다. 우리가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과 계획을 이루어가신다.
여러 해 전에 미국 LA에서 안경점을 하고 있던 한인 교포가 지역 TV에 광고를 하게 됐다. 당시에는 아주 큰 화재 거리였다. 광고모델을 쓰지 않고 안경점 주인이 직접 나와서 광고 멘트를 했다. 영어를 잘 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음도 어눌했다. 그런데 이 광고가 크게 주목을 받았다. 나중에는 광고상까지 받았다. 그 이유는 그 안경점 주인이 했던 광고 멘트 때문이다. 이런 멘트를 했다. “내가 아는 것은 안경밖에 없습니다.”(All I know is glasses.) 안경점 주인이 “안경밖에 모른다”는 말은 안경점 주인에게는 ‘최고의 자랑’이다. 그리고 안경점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신뢰’를 주는 말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신앙고백은 “내가 아는 것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는 고백일 것이다. 다윗의 신앙을 거울삼아 잠잠히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만을 소망하시기 바란다! 언제나 주님을 바라봐야겠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는 더욱 하나님만 바라보시기를 소원한다!
홍석기 목사(상리교회, 범사회문제대책운동본부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