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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열 목사 본지주필 군남반석교회 담임 |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어느 때보다 더 깊이 생각해 본다.
옛말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어서 부활의 생명을 주셨다. 우리는 사순절을 보내면서 해마다 지나가는 행사로 보낼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바로 나의 죽음으로 내 삶에 각인되어야만 한다.
골고다 언덕 위에서 절규하셨던 그 십자가의 사랑을 날마다 찬송해도 부족함뿐이다.
우리의 믿음은 예수님의 죽으심에 동참하고 부활의 기쁨을 누리며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서 세상에 복음 전하는 행복이 함께 해야 하지 않을까?
세상은 좋은 세상이나 때때로 사람을 속인다. 즉 믿을 세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람도 믿음의 대상은 없다. 사랑의 대상이다.
화사한 봄날을 보내면서 일상생활에 한없이 바쁘지만 때로는 발걸음을 멈추고 파아란 높은 하늘을 쳐다보며 가자.
내 인생에서 아니 신앙의 여정에서 나는 너에게 어떤 영향을 주며 살아가고 있는가?
인생을 감동적으로 성령님께 이끌려서만 살아간다면 그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인생길은 언제나 꽃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용사처럼 싸워야 할 때는 사탄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하고 열심을 내서 주님의 마음을 닮아야하는 길이다. 문제는 신앙의 길은 아무도 대신 할 수 없는 것이다. 부모나 자식이나 남편이나 아내가 신앙을 대신해 줄 수가 없다. 밥을 내가 먹어야 하듯 믿음은 내가 믿어야만 한다.
아버지나 어머니나 남편이나 아내의 신앙에 기대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내가 기도하고 내가 말씀을 듣고 내가 순종하는 길이다. 축복의 주인공이 되는 길도 세상에서 사업을 하는 모습을 보고 찾아볼 필요가 있다.
세상 사업에 성공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충분한 투자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적당히 넘어가며 요행이나 기적을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라는 것이다.
어디 세상 사업뿐이겠는가? 영적인 세계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투자의 법칙은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사업을 위해서 투자를 충분히 하면 풍성하신 하나님은 최소 30배를 약속하신다. 예수님의 사업을 위해 어린아이가 바친 물고기와 보리떡은 기적을 일으키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았다. 밤새도록 고기 한 마리 못 잡던 고기잡이기술자 베드로가 예수님의 복음 사역을 위해 빈 배를 투자 했을 때 배가 잠길 만큼 많은 고기를 채우지 않았던가?
우리말에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난다.’는 말이 있다.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갈라디아서 6장 7절은 말한다. 감사의 문으로 행복은 들어오고 불평의 문으로 행복은 나간다.
금년 사순절에는 의식을 넘어서 가슴 바쳐서 예수님의 십자가 그 은혜를 고마워하자. 그리고 그 사랑 고마워서 작은 보답이라도 정성껏 다해보자고 한경직 목사님의 찬송 시 ‘겟세마내 동산에서’를 다시금 되새겨본다.
겟세마내 동산에서 피땀흘린 주의 기도
십자가에 죽으심도 모두 나를 위함이라
주홍같은 붉은 죄를 흰눈같이 씻기시고
하나님의 자녀삼아 영원한 삶 주시었네
나의몸과 나의마음 내게 주신 모든 것을
주께 모두 바친대도 아쉬움만 남아있네
내게 주신 크신 사랑 무엇으로 보답할까?
내게 주신 모든 은혜 무엇으로 보답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