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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열 목사 본지주필 군남반석교회 담임 |
우리가 글을 대할 때는 시간과 공간의 차이가 있어서 생각을 하게 된다. 말과는 다르다.
과거 옛날에는 중학생도 학교 다니며 잉크병을 가지고 다니고 펜촉에 찍어서 쓰던 그 시절에는 볼펜이나 만년필은 참으로 귀한 것이었다. 타자기, 복사기, 볼펜은 2차 대전 이후 사무기의 3대 혁명품으로 꼽혔다. 우리나라에 볼펜이 처음으로 들어온 것은 6.25 동란때 전쟁을 취재하러 온 외신기자들에 의해서였다고 한다.
볼펜이 국내에서 처음 생산된 것은 1963년 5월 모나미의 전신인 광신화학공업사가 153볼펜을 개발 하면서부터이다. 그 당시 산업이 낙후되어 있어 모양도 없고 거꾸로 들면 잉크가 새어 나오고 겨울이면 난로가에 쪼이며 썼으니 짐작이 간다.
그 후 많은 노력 끝에 1963년 검정색 뚜껑과 흰색 몸체 똑딱거리는 노크의 심플한 디자인을 사내 공모해서 만들어 monAmi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모나미는 프랑스어로 내 친구라는 뜻)
153이란 숫자는 15는 15원이란 뜻이고 3은 광신 화학이 세 번째로 만든 제품이란 뜻이다.
이 제품은 완전 히트를 쳤고 지금까지도 이 볼펜을 사용하고 있다.
유행은 잠깐이나 진짜 좋은 것은 소비자들이 알고 찾는다.
영화 기생충에서 짜파게티와 너구리 라면을 합쳐서 짜파구리라고 세상에 알려졌는데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짜파구리 라면을 모르는 나라가 없게 되었으니 기생충의 주역들의 피땀흘린 열정을 세계인들은 박수를 보내고 있지 않은가?
물론 대다수의 설교자는 은혜와 감동을 주는 정제된 언어임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극히 일부라고 하더라도 목사의 설교에서는 천박하거나 막말이 동원되어서는 안된다.
하이데커는 ‘말은 생각의 집이다’ 라고 했고 칼 야스퍼스는 ‘언어와 더불어 사유할 수 있다’고 했다.
볼노우는 ‘말은 생각의 통로다. 즉 물이 수로를 따라 흐르듯이 생각도 말이 마련한 길을 따라 흐른다’고 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창조하셨다. 우리는 어떠한가?
남의 말이면 쌍지팡이 짚고 다닌다는 속담도 있다. 자기 눈에 들보가 있는데 남의 눈에 티끌만 말한다. 있는 잘못도 덮어줘야 하거늘 없는 것도 만들어서 중상모략해서야 어찌 기독인이라 하겠는가?
말하기 전에 먼저 신용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신용이 있어야 말도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