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저자 윤문지(타우치 후미애) 공생복지재단 이사장 -1949년 일본 오사카 출생 - 쿄토 도시샤(同志社)대학 사회복지학과를 졸 - 1972년, 한국 목포로 건너와 목포공생원 생활지도원 역임 - 현재 일본 사회복지법인「마음의 가족」 이사, 사회복지법인 윤학 자공생재단 이사, 사회복지법인 공생복지재단 이사장으로 활동, -제3회 여성휴먼다큐멘터리 대상에《양이 한 마리》로 입선 - 1982년《나도 고아였다》로 일본 크리스천신문 제5회 아카시문학상 최우수상을 수상 애써 부인하려 했던 불길한 예감이 적중한 것이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렸다. 얼마나 상심이 클까를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에 가슴이 저렸다. 어머니는 용기를 내어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남편이 행방불명된 이래 오늘까지 큰 힘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사님 덕분에 CCF 원조도 받을 수 있게 되고 아이들 생활도 안정이 됐습니다. 언제까지나 대리 원장으로 계실 순 없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고아들을 위해 매각된 숙사는 어디까지나 저 아이들 것입니다. 누구 소유가 되건 아이들이 살 수 있다면 저로선 이의가 없습니다.” 여기까지 말하고 나니 참았던 눈물이 솟구쳤다. “하지만…” 하고 어머니는 말을 이었다. “목사님도 아시다시피 공생원은 남편이 생명을 걸고 키워왔습니다. 남편이 돌아왔을 때 그 공생원이 없어진 걸 알면 얼마나 낙담하겠습니까? 공생원의 이름만은 고수하고 싶습니다.” 조용하고 말수 적은 어머니가 담담히 이야기했다. 거지 대장이라 불리던 남편이 다리 밑에서 데려다 키운 아이들의 거취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다리 밑에서 주워다 기른 아이들만이라도 저에게 돌려주세요. 저 아이들과는 헤어질 수 없습니다. 저 아이들은 저를 도와준 은인입니다. 구두닦이, 껌팔이를 하면서 어린 동생들을 지켰던 제 친자식이나 다름없는 아이들입니다. 제발 아이들을 돌려주세요.” 사 목사의 표정은 점점 굳어졌다. 그리고는 차갑게 쏘아붙이듯 이야기했다. “공생원의 간판은 이제 없습니다. 공산군이 남하하여 수많은 사람이 피를 흘리고 죽었습니다. 공생원이란 이름은 다분히 용공(容共) 사상이 짙어 취소당한 겁니다. 두 번 다시 인가받지 못할 겁니다. 유달산의 정기를 받으며 자라는 아이들이란 뜻에서 유달원이라 이름을 지었습니다.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 생각지 않습니까? 장남 기(基) 군이 장성할 때까지 생활비는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부인은 이제까지 하셨던 대로 우리 유달원의 제1숙사 유아실에서 봉사해 주십시오.” 사 목사는 독단적으로 결론을 내렸다. 거의 명령조의 주문이었다. 어머니는 순순히 물러설 수가 없었다. “목사님! 그럼 저더러 공생원에서 손을 떼라는 말씀입니까?” “제 뜻이 아닙니다. 지난번 이사회(理事會)에서 결정된 사항입니다. 순전히 이사들의 의견이지요.” 사 목사는 이사회를 핑계 삼았다. 심신이 지쳐 있던 어머니에게는 모든 것이 캄캄한 절벽 같았다. 어머니는 정신을 잃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어머니와 동행했던 범치 형과 몇 명의 원아들이 제1숙사로 돌아온 것은 밤 9시였다. 공생원에서는 원아들이 울분을 터뜨리고 있었다. “사 목사놈, 내가 죽여버리겠어!” 재균 형은 흥분을 가누지 못했다. “참아! 이런 때일수록 침착해야 해. 어머니가 걱정이다. 식사도 못 하시고 이대로 병환이라도 나면 큰일이야. 재균아, 바다에 가서 고기를 잡아 와라. 그걸로 죽이라도 끓여야겠다.” 범치 형이 연장자답게 제안했다. “나도 갈래.” 평소 툭하면 내게 시비를 걸고 말썽을 피워 왔던 정철(正喆) 형이 일어났다. 모두 어머니 일을 염려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이들의 갸륵한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헤아리고 있었다. “이대로 누워 있을 순 없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 공생원을 재건시키지 않고선 죽으려야 죽을 수도 없다.” 어머니는 아이들이 요리해 온 죽을 천천히 입으로 갖다 댔다. 비틀거리면서도 일어서려고 애쓰셨다. “시청에 가서 협조를 구하면 어떨까? 그리고 이사들에게도 다시 간청해 보면?” 어머니는 어떻게 해서든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 있었다. 비틀거리는 불안한 동작이지만 원아들은 어머니의 심정을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범치 형과 재균 형 등 15~6세 정도의 나이든 아들들이 어머니를 옹호하고자 모여들었다. 그들은 친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거칠 게 자라 예의범절은 모르지만, 인정(人情)에 민감하고 의리도 강했다. 어머니는 아이들이 시청이나 이사(理事) 댁에서 행패를 부리지 않을까 염려되었다. “선생님들 앞에서는 공손해야 해요.” “어머닌 항상 그런 식이니까 손해만 보지요. 사 목사 따위 주먹 한 방이면 끝나는데.” 다혈질인 재균 형은 손을 불끈 쳐들어 때려눕히는 시늉을 했다. “그러면 안 돼.” (다음 15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