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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기 목사 상리교회 범사회문제대책운동본부 사무총장 |
1858년 미국 보스턴, 어느 교회 주일학교 교사가 구둣방에서 일하고 있던 아이를 전도했다. 아이의 고집이 보통 센 것이 아니었다. 번번이 거절하고 선생님을 무시하고, 말을 함부로 했다. 그러나 선생님의 끈질긴 전도로 그 아이가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는 그 아이를 맡아서, 열과 성을 다하여 성경을 가르쳤다.
시간이 흘러 그 아이가 자라 교회 주일학교 교사가 되었다. 이 아이가 바로 19세기 말, 미국과 유럽의 영혼을 뒤흔드는 세계적인 복음 전도자 ‘D.L. 무디’였다. 21년이 지난 뒤 무디가 영국 런던에서 집회를 했다. 그때 무디의 설교에 감동을 받고 회심한 사람이 ‘F.B. 마이어’였다. 마이어는 목사가 되어 영국의 3대 설교자로 인정받으며, 영국의 부흥 운동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후에 ‘마이어’의 설교를 듣고 회심한 사람이 있는데.. 그가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 ‘윌버 채프먼’이었다. 채프먼은 야구선수로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하던 한 선수를 전도했다. 그때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이 20세기 초, 미국 대부흥의 주역인 ‘빌리 선데이’였다. 빌리 선데이는 ‘힘’이라는 강사를 초빙해서 3주 동안 부흥회를 열었다. 이때 3주 동안 열린 집회에서 전도된 사람은 12살짜리 사내아이가 전부였다. 그 아이가 자라서 전 세계 수백만 명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가 바로 ‘빌리 그래함’ 목사이다. 필자는 ‘D.L. 무디’에서 ‘마이어, 윌버 채프먼, 빌리 선데이, 빌리 그래함’으로 이어지는 영적인 계보를 보며 보스턴에서 무디를 전도했던 선생님을 떠올렸다. 모두가 그 선생님을 시작으로 하여 이루어진 ‘구원의 역사이며 열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 선생님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 필자도 모른다. 그저 보스턴에 살던 주일학교 선생님으로만 기억한다. 하지만 누구도 그의 헌신을 과소평가하지 못한다. 그로 인한 열매가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은 기억하지 못해도 하나님은 기억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반드시 상급으로 갚아주신다. 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선생님이 과연 구둣방에서 일하던 그 어린아이를 통하여 앞으로 엄청난 역사가 일어날 것을 기대하기나 했을까?”하는 생각이다. 아마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기왕 전도할 거면 무디같은 사람을 전도하면 좋을까...”
성경에 바울의 심정에서 우리는 무디를 전도했던 그 선생님의 신앙을 엿볼 수 있다. 바울에게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려는 열정이 있었듯이 그 선생님에게도 같은 열정이 있었다. 바울은 당대에 누구보다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이었다. 얼마든지 편한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편한 길’보다는 ‘사명의 길’을 택했다. 그는 얼마든지 남들로부터 존경을 받으며 남부럽지 않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종이 되어 자신의 당연한 권리를 마음대로 사용하지 않았다. 바울은 왜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길, 남들이 가기 싫어하는 길을 선택했을까? 그 이유를 그는 고전 9:19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여기에 보시면 뒷부분에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했다. 그가 자기에게 주어진 당연한 자유를 스스로 포기했다. 그 이유는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었다. 한 명이라도 더 구원하고자 했다. 그래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며 가시밭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무디를 전도했던 선생님도 그렇다. 비록 어린아이이고, 구둣방에서 일하는 보잘 것 없는 아이였지만 그 한 영혼을 구원하고자 거절당하고 무시당하는 수모를 감당했던 것이다. 19절은 짧은 구절이지만,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분명한 답을 주고 있다. 우리도 그렇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도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함이 되어야 한다.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려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며, 살아가는 이유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분들이 다른 이유를 가지고 있다. “저는 학생입니다. 먼저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합니다. 저는 직장인입니다. 무엇보다 직장에서 열심히 일을 하는 게 중요합니다. 저는 가정주부입니다. 가정을 잘 돌아보고 자녀 양육에 힘을 다하는 게 제가 해야 할 우선적인 일입니다.” 맞는 말이다. 학생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직장인은 직장에서의 일을 열심히 해야 한다. 가정주부는 가사 일을 잘 돌봐야 한다. 그런데 그저 열심히 공부하고, 직장 일을 열심히 하고 가사 일에 정성을 다 쏟으며 살아서는 안 된다. 모두가 소중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만 살다보면 언젠가 허무함에 빠져들게 된다. ‘빈둥지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 자녀가 내 둥지를 떠나가면서 발생하는 심리적인 문제를 말한다. 보통 자녀들이 취업을 하거나 결혼하는 시점에서, 아이가 부모를 떠나간다. 그러면서 부모에게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엄마에게 문제가 많이 발생한다. 그동안 부모의 역할을 충실히 하다 보니, 자신에게 신경을 쓰지 못하며 살았다. 그런데 자녀가 품을 떠나면서 마치 ‘빈둥지’만 남게 되는 것을 깨닫게 된다. 왠지 서글퍼지고 우울해지고 살고 싶은 의욕이 상실된다. 이런 현상을 ‘빈둥지증후군’이라고 한다. 심리학자들은 빈둥지증후군을 극복하려면 “햇빛을 많이 쪼이라.”고 조언한다. 햇빛을 쪼이면, 몸에서 비타민 D가 만들어지고.. 신체 시계를 조절함으로 컨디션이 좋아진다고 한다. 그 외에도 “가족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주어야 한다. 운동이나 산책을 즐기라. 취미를 개발하라.”고 한다. 훌륭한 조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육신의 건강은 마음의 건강과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방법에는 한계가 있다. 사람은 육신의 만족으로는 충족될 수 없는 ‘영적인 영역’이 있기 때문이다. 영적인 영역이 충족되지 않는 한 누구도 ‘빈둥지증후군’과 같은 심리적인 문제에서 해방될 수 없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수님은 영혼에 ‘생수’를 부어주신다. 예수님은 죽어가는 영혼에 ‘생명’을 주신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 7:37) 예수님께서 서서 외치셨다. 모든 사람이 잘 듣도록 외치셨다. 목말라 신음하는 모습을 보시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일어서서 외치셨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내게로 와서 목마름을 해결하라!”는 것이다. 호남기독신문의 애독자 여러분 모두 한 분도 빠짐없이 ‘영혼의 생수’를 받아 마시기를 바란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전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 전도할 때 영혼이 건강해지기 때문이다. 전도는 영혼의 운동이다. 운동을 해야 몸이 건강해진다. 영혼도 그렇다. 운동을 해야 한다. 영혼의 운동은 어떻게 하나? 전도할 때이다. 전도할 때 영혼의 운동이 이루어진다. 학생은 공부를 열심히 하되 공부만 열심히 해서는 안 된다. 공부하면서 영혼의 운동도 해야 한다.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전도도 해야 한다. 직장인은 직장에서 누구보다 더 성실하게 일해야 한다. 그러나 일만 열심히 해서는 안 된다. 일하면서 영혼의 운동도 해야 한다. 직장에서 동료들에게 전도도 해야 한다. 그래야 영혼이 메말라지지 않는다. 주부들은 가사 일을 하며 자녀 양육에 열과 성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가사 일만 해서는 안 된다. 영혼의 운동도 해야 한다. 이웃에게 전도도 해야 한다. 그래야 우울증에 빠져들지 않는다. ‘빈둥지증후군’과 같은 심리적인 문제에 빠져들지 않게 되는 것이다.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은 복음의 능력을 믿는다. 성령의 역사를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생명과 변화’의 역사를 믿는다. 복음을 전할 때 나타나는 ‘영혼의 성장’을 믿는다. 바울처럼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성령께서 역사하실 것이다. 우리가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변화, 생명, 성장’의 역사가 나타날 것이다. 앞으로 더욱 바울의 심정으로 살아가시기 바란다. 그리하여 ‘복음의 능력, 변화, 생명, 성장의 역사’를 풍성히 이루어가시길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