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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헌 목사 북교동교회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신다.” 이 말처럼 가슴이 설레는 소식은 없을 것이다. 인간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가치는 ‘사랑’을 받는 일이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당신이 풍성한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당신의 삶이 불행에 울며 탄식하며 괴로워하며 저주스럽게 사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는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셨다. 그 사랑은 말할 수 없이 크다.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사랑은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고 죄악 가운데 죽어 가는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셨다.
기독교는 사랑의 끈에 묶여 사랑의 왕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고 사랑의 주님이 우리의 주님이 되시는 것이다. 사랑의 말씀을 읽고 먹으면서 사랑을 가지고 오늘날까지 살아온 것이 교회요, 주의 나라요, 우리 성도들의 삶인 것이다. 성경 66권은 요한복음 3장 16절의 낚시에 걸려있다. 66권을 하나로 딱 뽑아내면 이 구절(요 3:16)이다. 아무 곳을 찾아가도 이 구절(요 3:16)로 다 가게 되어 있다. 성경의 답이, 성경의 진리가 요한복음 3장 16절이다. 이것도 또 더 줄일 수 있다. 한마디로 줄이면, ‘사랑’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인간이 받아야 할 사랑, 있어야 할 사랑, 우리가 찾는 사랑이다. 우리 인간은 원래 그분을 사랑하면서 살았다. 하지만 에덴동산에서 살다가 범죄 하면서 이 사랑이 끊어졌다. 이 사랑이 떠나갔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고통과 허무함과 아픔과 불행이 찾아오게 되었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므로 우리에게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상처와 아픔과 터진 흔적뿐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인간에게 문제가 많은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이다. 그것은 사랑이 없어서, 사랑을 몰라서, 사랑받지 못해서이다. 잘못된 사랑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의 병이다. 이것이 우리의 아픔이다. 오늘 가정의 문제도 사랑이다. 사랑으로 인하여 이 찢어진 몸과 마음을 누가 덮어주며 누가 치료해 주느냐? 하늘에 계신 주님의 사랑이 오셔서, 참사랑의 주님이 오셔서 어린이로부터 노인까지 우리 온 인류의 마음을 싸매어 주시고 치료해 주시고 감싸주셔야 한다. 하나님은 그 아들을 이 땅에 보내 주셔서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랑이 없는, 사랑으로 인하여 상처받고 고통받는 우리를 위로하시고 구원하시고 행복하게 하신다.
하나님의 사랑은 참사랑이다. 거룩한 사랑이다. 아가페의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한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로 변치 않는 사랑이다. 땅에 있는 이런 사랑과 다르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치료하는 사랑이다. 우리의 빛이요, 힘이요, 능력이요, 구원이다. 모두를 다 해결하는 치료 약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사랑이 있으면 병들지 않는다. 사랑이 있으면 사람은 불행하지 않게 된다.
인간이 찾는 사랑은 주 예수님에게 있다. 주님의 사랑을 발견하기 전에는 우리는 탕자이다. 끊임없이 헤매는 것이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누구든지 내 안에 있으면 저절로 열매를 맺을 수 있다”라고 말씀했다. 예수님의 사랑은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 예수님의 사랑이 참사랑, 큰사랑, 거룩한 사랑, 영원한 사랑이다. 우리는 그런 마음을 가질 수가 없다. 우리는 그렇게 하루라도 살 수가 없다. 우리의 눈은 그런 눈이 아니다. 사랑의 눈이 아니다. 작은 허물도 크게 보이는 눈이다. 그러나 주님의 눈은 이 교회만한 큰 죄도 안 보이게 한다. 주님은 사랑의 눈이다.
세상에서 사랑이라는 것만큼 소중한 것이 없다. 먹고사는 것이 중요하고, 어느 정도 사람 대접받고 사는 것도 중요하다. 또 건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갈 때 가장 기본적인 요구들이 충족된 다음에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랑만큼 비중을 가지는 것은 없다.
당신은 진짜 사랑을 찾았는가? 할 때에 “예. 찾았습니다”하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당신 정말 사랑을 찾았습니까?” “아니요. 지금까지 신기루를 찾았지만 아직도 내 손에 사랑이라는 것을 잡아 보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하는 그 사람은 아직도 불행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랑은 그 사람의 인격을 좌우한다. 그 사람의 정신과 영혼을 좌우한다. 사람은 사랑에 의해 행복과 불행이 좌우된다.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설명한 글을 본 적이 있다. 어린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과학적으로 조사한 자료(데이터)가 있다.
미국의 아동 보호소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곳에는 많은 아이들을 데려와 기르고 있었다. 어떤 때는 어머니가 몰래 아이를 버려두고 가는 경우도 있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 없이 거기서 자라고 있었다. 일종의 고아원과 같은 곳이었다. 그런데 거기 들어온 아이들이 그렇게 잘 죽었다. 너무 잘 죽어서 왜 그렇게 죽는지 과학적으로 좀 알아보자는 여론이 일어났다. 그래서 유수한 과학자들을 초청해서 조사하게 되었다. 뉴욕의 스피치 박사가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고 결과를 발표했다.
한 집에는 아기로 하여금 친어머니의 젖을 먹고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도록 했다. 또 다른 집에는 보모가 아이 열둘을 맡아 우유를 먹이면서 키우도록 했다. 한쪽은 어머니가 젖을 먹이는 가족적인 분위기이고, 한쪽은 고아원과 같은 분위기였다. 여러 가지 면에서 똑같은 시설에다 똑같은 배려를 했다. 한쪽은 어머니의 사랑이 있고, 한쪽은 어머니의 사랑이 없다는 차이밖에 없었다.
이제 갓 태어난 아이들이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아이들이 ‘사랑’의 ‘사’자나 알겠는가? 먹이면 먹고 싸면 싸는 것이다. 별것 아니다. 어떻게 보면 물리적으로 똑같은 조건이니까 똑같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했는데 나중에 결과는 전혀 달랐다. 여러 가지 발달지수를 조사해 보니 엄청난 차이가 났다.
엄마 밑에서 사랑을 받으며 자란 아이는 발달지수가 자꾸 높아 가는데 보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점점 떨어졌다. 2년 기간 안에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산 아이는 하나도 죽지 않았다. 보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37%가 죽었다. 조사의 결론은 이렇다.
아이들이 사랑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지만 사랑은 생명 그 자체이다. 사랑을 받으면 생명이 살고, 사랑을 받지 못하면 살지 못한다. 설사 산다고 해도 건전하게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을 이 조그마한 연구가 증명해 주었다. 참으로 사랑이라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