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주헌 목사 북교동교회 |
소망이 없는 삶은 동물과 같은 삶입니다. 그런데 소망이라고 다 소망은 아닙니다. 소망은 아름다워야 합니다. 소망은 영원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소망을 갖고 있습니까? 이 소망에다가 자기 생을 던질 수 있습니까? 만일 그런 소망을 갖고 있다면 그 자체가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찍이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이 청중을 압도하는 설교를 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제가 어렸을 적에 들은 그 내용이 파도처럼 다가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조지아 주의 붉은 언덕에서 노예의 후손들과 노예 주인의 후손들이 형제처럼 손을 맞잡고 나란히 앉게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이글거리는 불의와 억압이 존재하는 미시시피 주가 자유와 정의의 오아시스가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내 아이들이 피부색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인격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나라에서 살게 되는 꿈입니다.”
저에게도 우리 교회 자녀들을 향한 꿈이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진리의 상아탑에 들어가 전 세계 지성계를 변화시키는 마중물이 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또 우리의 자녀들이 전 세계 재계를 움직여 재물의 노예가 아니라 재물을 다스리는 자들이 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우리의 자녀들이 영적 세계의 거장들이 되어서 하나님의 통치를 보게 하는 데 좋은 모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것을 소망하다가도 문득 이런 소망이 과연 이루어질까 의심할 때가 있습니다. 특히 자신의 형편이나 주변 상황을 바라보면 더욱 더 그러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을 실상으로 다가오게 합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라는 곳에서 희망 없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셨습니다. 그는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 갈대아 우르를 떠나기로 결단했습니다. 그가 갈대아 우르를 떠나고자 할 때의 상황이 어떠했습니까? 그에게는 자녀가 없었습니다. 고대 시대에 자식이 없다는 것은 미래가 없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아브라함은 이미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나이가 훨씬 넘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도 바라고 믿었습니다(롬 4:18). 그는 하나님이 자식을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는 하늘의 별과 같이 해변의 모래와 같이 많은 자녀를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믿음의 조상으로 삼으셨습니다. 우리 믿음의 조상이 그렇게 살았다면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좀 더 아름답고 멋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소망이 확고해야 합니다. 우리가 아름다운 소망을 붙들고 기도한다면 반드시 그 꿈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믿음의 소망은 절대로 부도가 나지 않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의 소망을 성취하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호남기독신문 애독자 여러분! 아름답고 멋있는 소망을 갖도록 기도합시다. 그리고 그 소망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는 한 주가 됩시다.
[2025년 1월 22일 수요일 제33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