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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헌 목사 북교동교회 |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에 대한 실물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증거입니다. ‘바라는 것’이란 소망을 말하고, 실상(being sure of)은 확증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실상’이란 히브리어로 휘포스타시스((ύπόστασις)로, ‘아래서 받쳐준다’는 뜻입니다. 즉, 믿음은 바라는 것들에 대해서 확신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을 받쳐주고 확증해주고 보증해 줍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믿음은 우리가 소망하는 것을 보고 만지고 듣고 체험하게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바라는 것은 모두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으면 믿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세상은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믿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천국의 실상을 볼 수 있습니까? 믿음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천국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증명해 보라고 요구합니다. 이것이 과학입니다. 과학의 중심은 증명입니다. 과학의 명제는 ‘있는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학의 증명으로 안 되는 것을 믿음을 통해서 증명됩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아무것도 바라볼 수 없는 절망의 벽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어려운 역경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해도 손에 잡히는 것이 없고 눈에 보이는 것이 없고 귀에 들리는 것이 없습니다. 기도가 이루어질 확신이 안 생깁니다. 그래서 절망하게 됩니다. 그럴 때 히브리서 11장 1절 말씀을 묵상해 보십시오. 불신과 절망의 구름이 걷히고 확신이 생길 것입니다. 믿음은 불신과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그리고 믿음이란 바라고 소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이를 다른 말로 말하면 소망이 없으면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바라고 있는 그 소망이 무엇입니까? 아마 모든 사람들의 공통점은 재물에 대한 소망일 것입니다. 과거에는 명예를 소중하게 여겼지만 지금은 재물로 바꾸어졌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눈에 보이는 돈을 탐하고 지위를 탐하게 되면 세계를 품는 비전을 놓치기 쉽습니다. 도스도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의 소설에서 소망이 없고 비전이 없는 삶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인간 존재의 비밀은 그냥 생존만 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인가 확실하고 분명한 비전을 위해 사는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 인생은 끝내 스스로 파멸에 이르는 것이다. 반면에 그것을 위해서 살 수 있고 그것을 위해 몸을 던져 죽을 수 있는 그런 소망, 그런 비전을 가진 자는 가치 있고 위대한 삶을 살 수 있다.”
사랑하는 호남기독신문 애독자 여러분! 새해 소망이 무엇입니까? 당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나의 유일한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보여줍시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전부임을 증명합시다. 예수님만이 존귀케 되고 높여지는 한 주가 되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