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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기 목사 상리교회 범사회문제대책운동본부 사무총장 |
아프리카 밀림에서 가장 강한 동물이 무엇일까? ‘개미’이다. “개미가 뭐 대단하다고 가장 강하다고 하나”하실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 개미들이 떼를 지어 이동하면 그 길이가 무려 10리나 된다. 밀림의 맹수들은 개미 떼를 보고 저마다 소리를 지르며 숲으로 도망간다. 몸집이 가장 큰 코끼리도 겁을 먹는다. 사자는 개미가 이동하는 반대 방향으로 쏜살같이 달려간다. 밀림에서는 개미가 가장 무섭다. 개미에게 잘못 걸리면 영락없이 놈들의 밥이 되고 만다.
수십만 마리의 개미가 동물의 몸에 붙어 살을 뜯어 먹으면 그것을 견딜 짐승이 하나도 없다. 맹수들이 개미를 두려워하는 것은 개미의 힘이 강해서가 아니다. 개미의 무서운 ‘협동’ 때문이다. 개미는 지극히 작은 벌레에 불과하지만, 수십만 마리가 힘을 합쳐 코끼리를 공격하면 단 하루 만에 앙상한 뼈만 남는다. 개미의 무기는 ‘협동’이다. 그러면 지상 최대의 무기는 무엇일까? 설교준비를 하며 검색해 보았는데 어느 블로거가 이런 질문을 했다. “미국 최강의 무기와 러시아 최강의 무기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누가 이길까? 대답은 “다 같이 죽는다”는 것이었다. 미국 최강의 무기도 핵무기이고 러시아도 마찬가지이다. 그러기에 서로 싸우면 지구 자체가 멸망하는 끔찍한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처럼 인류 최강의 무기는 ‘핵무기’이다.
그렇다면 우리 성도에게 ‘최강의 무기’는 무엇일까? 죄를 이기고 원수 마귀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나를 이길 수 있는 최강의 무기가 무엇일까? 바로 ‘보혈’(寶血)이다. 보혈은 ‘보배로운 피’라는 뜻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말한다. 하나님의 아들이 흘리신 피이기에 ‘보배로운 피, 보혈’이라고 부른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이런 말을 했다. “성경을 짜보아라! 그러면 피가 나올 것이다.” 그렇다. 구약성경을 짜보면 ‘짐승의 피’가 나온다. 구약성경에는 짐승의 피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신약성경을 짜보면 ‘예수님의 피’가 흘러나온다. 신약성경은 ‘예수님의 피’에 관한 말씀이 많다. 사도들이 증거 한 메시지의 핵심도 ‘예수님의 피’이다. 성경은 피의 책이다. 만약에 성경을 읽으면서 ‘피’를 보지 못한다면 그는 영적인 소경이다. 성경에서 뿐만이 아니다. 주님의 보혈은 지금도 식지 않고 능력을 나타내고 있다. 예수님의 보혈은 2000년 전 십자가에서 식어버린 피가 아니다. 지금도 우리를 위해 역사하는 뜨거운 피이고 살아 있는 피이다. 예수님의 피를 우리는 ‘보배로운 피, 보혈’이라고 한다. 왜 예수님의 피가 보혈인가? 그 피는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죄인을 대신하여 흘리신 피이기 때문이다. 그 피는 지금도 살아서 우리에게 능력으로 역사하는 피이다. 보혈의 능력이 여러분의 영혼을 감싸는 은혜가 함께하시기를 소원한다!
구체적으로 보혈에 어떤 능력이 있을까? 첫째, 죄 사함의 능력이 있다. 죄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보혈에 있다. 오늘 읽은 말씀에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했다. 구약시대에 죄 사함을 받는 방법은 ‘짐승의 피’를 흘리는 것이었다. 이것은 사람이 개발한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방법이었다. 하나님께서 ‘피’에 생명이 있게 하셨다. 그리고 죄의 결과는 ‘죽음’이다. 그러므로 짐승이 사람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죽음으로 그 사람의 죄가 사함 받을 수 있었다. 짐승이 흘린 ‘피’로 죄에서 벗어날 수 있던 것이다. 그런데 짐승의 피는 임시방편적인 것이다. 짐승이 사람을 대신할 수는 없는 일이다. 수백, 수천 마리의 짐승보다 사람 한 명이 더 귀하기 때문이다. 구약의 짐승은 예수님의 죽음을 ‘예표’하는 것이었다. 짐승의 죽음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그 의미가 완성되는 것이다. 요일 1:7에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했다. 예수님이 흘리신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며 자유롭게 한다는 뜻이다. 예수님 한 분이 죽음으로 흘리신 피는 ‘전 인류’의 죽음보다 훨씬 더 가치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고.. 우리는 단지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창조주가 흘리신 피는 수천억 아니 수십조의 사람이 흘린 피보다 더 가치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보혈은 ‘죄 사함’의 능력이 있다.
두 번째, 보혈은 ‘성결의 능력’이 있다. 우리의 마음과 생활을 성결하게 하는 능력이 보혈에 있는 것이다. 히 9:14에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했다. 주님의 보혈을 의지하는 사람들은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된다. 이 말은 “그의 마음과 생활이 완전히 변한다”는 뜻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죄로 인해 더러워지는 것을 원하지 않지만 마치 늪 속에 빠져들듯이 죄악 속에서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자신의 힘으로 죄의 습성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죄악을 이기고 승리하는 비결은 오직 ‘보혈의 능력’을 의지하는 데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은혜를 깨닫고 그 보혈을 지나게 될 때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보혈은 어떤 죄인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다. ‘악한 마음’도 변화되고 ‘고질적인 죄의 습관’도 변화된다. 보혈에 능력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우리에게 있는 ‘악한 성품’을 변화시켜갈 수 없다. 오직 ‘예수님의 보혈’이 우리의 악한 성품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다.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우리에게 있는 ‘고질적인 습관’을 바꿀 수 없다. 오직 ‘예수님의 보혈’이 우리의 고질적인 습관을 바꾸는 능력이 있다. 그러므로 보혈을 의지하는 신앙으로 사시기 바란다!
셋째, 보혈은 세상을 이기는 능력이 있다. 예수님의 보혈로 ‘죄 사함, 성결의 변화’만 받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능력’도 부여받게 된다. 레 17:11에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했다. 피에 생명이 있다. 피가 모자라 창백하게 죽어가는 사람이 있다. 그에게 수혈을 하면 어떻게 될까? 창백한 얼굴이 불그스레 변한다. 그리고 힘이 생겨나고, 다시 살아나게 된다. 하물며 예수님의 보혈 수혈되면 어떻게 되겠나? 보혈이 들어오면 ‘새 생명’을 얻게 된다. 그리고 세상을 이길 만한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신앙은 예수님의 피를 수혈받으면서 시작된다. 하나님의 능력도 그렇다. 예수님의 보혈을 수혈하면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다. 예수님의 보혈이 흘러들어오면 마음에 ‘하늘의 평강, 기쁨, 깊은 만족’이 임한다. 예수님의 보혈이 흘러들어오면 병든 육신에 ‘치료의 능력’이 나타나게 된다. 예수님의 보혈이 생활 속에 충만할 때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주의 나라’가 임하게 된다. 가난이 떠나가고 막힌 문제가 해결되며 마귀의 권세가 두려워 떨며 도망가는 역사가 나타나는 것이다.
‘유월절’을 영어로 ‘Pass over’라고 한다. Pass over는 ‘넘어간다. 지나간다. 무시한다’는 뜻이다. 무엇이 넘어간다는 것일까? ‘재앙’이 넘어간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할 때, 하나님은 10가지 재앙을 내리시며 백성들을 구출하셨다. 이때 10번째 내린 재앙이 애굽에 있는 모든 짐승과 사람의 장자가 죽는 것이었다. 짐승의 첫 번째 새끼도 죽고.. 사람의 첫 번째 아들이 죽는 대 재앙이었다. 그러나 집의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바른 집은 재앙이 넘어갔다. 죽음의 재앙이 그냥 지나간 것이다. 여기에서 그날 밤의 구원을 기억하며 ‘유월절’(Pass over)을 지키기 시작했다. 이날 밤에 문설주에 바른 어린양의 피는 ‘예수님의 피’를 상징한다. 예수님이 흘리신 보혈은 ‘Pass over’은 재앙이 넘어가게 하는 능력이 있다. 질병을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죽음을 이기고 마귀를 이기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독자들에게 예수님이 흘리신 보혈의 능력이 충만하시기를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