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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기 목사 범사회문제대책운동본부 사무총 (상리교회) |
롬 5장에는 ‘한 사람’이라는 말이 유독 많이 나온다. 12절은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라는 말로 시작된다. 15절 중반에도 보면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했고 16절 중반에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라 했다. 17절에도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라 했다. 19절에도 ‘한 사람’이라는 말이 2번이나 반복된다. 이 말씀을 요약하면 “한 사람으로 인해 죄가 들어왔고 다른 한 사람으로 인해 죄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1645년엔 단 한 사람의 표 차이로 ‘올리버 크롬웰’이 영국을 장악하는 권력을 얻게 되었다. 1776년엔 단 한 사람의 표 차이로 미국이 독일어 대신에 ‘영어’를 사용하도록 결정하였다. 독일 사람들에게는 정말이지 두고두고 아쉬운 일이었다. 1845년엔 역시 한 사람의 표로 ‘텍사스’ 주가 미연방에 편입되었다. 1868년엔 한 사람의 표차이로 ‘앤드류 존슨’을 탄핵 위기에서 구했다. 1875년엔 한 사람의 표 차이로 프랑스가 절대왕정에서 ‘공화국’으로 탈바꿈했다. 1876년엔 한 표 차이로 ‘러더포드 헤이즈’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1923년엔 한 표 차이로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 나치당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1960년엔 4개구 선거구에서 단 한 표 차이로 ‘존 F. 케네디’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한 표 차이로 운명이 달라진 사건만을 골라봤다. 이 모든 것이 ‘한 사람’의 중요성을 말해주고 있다.
특히 ‘리더’ 한 사람의 중요함은 말할 것도 없다. 어찌 보면 그 한 사람에 의하여 죽고 사는 것이 ‘조직’이다. 그 조직을 흥하게 할 수도 있고 쓰러뜨릴 수도 있는 것이 ‘지도자, 리더’인 것이다. 리더는 그 조직에 ‘대표성’이 있기 때문이다. 롬 5장이 이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먼저 인류의 첫 번째 대표주자 ‘아담’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17절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이라 했다. 여기서 말하는 한 사람은 ‘아담’을 의미한다.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망이 그냥 이르게 된 것이 아니다. 17절에 보면 사망이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되었나?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이라 했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이 범죄하였는데 그 결과 사망이 왕 노릇을 하며, 모든 사람을 죽음에 가두었다는 것이다. 죄의 문제는 인류의 시작과 더불어 계속되고 있다. 아담 이후로 모세가 등장하기까지 사람들은 율법이 ‘없던’ 시절에 살았다. 율법은 모세 시대에 주어진 것이다. 그러니 율법이 생기기 전까지 그들은 율법을 어기는 일이 없었다. 그들에게는 율법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율법을 어기는 일이 발생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죄의 문제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아담이 지은 ‘죄의 영향’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율법과 죄’는 서로 상관하는 관계에 있다. 예를 들어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좌회전 신호가 없는 곳에서 좌회전을 해도 잘못이 아니다. 큰길이든 작은 길이든 어느 도로에서나 ‘비보호 좌회전’이 다 허용되어 있다. 그리고 경찰이 보고 있어도 큰 도로를 달리다가 아무 데서나 ‘유턴’을 해도 죄가 아니다. 필자도 도로에서 차를 몰다가 신호가 없는 곳에서 유턴을 하곤 했다. 처음에는 너무나 생소했다. 속으로 “위험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위험하다는 생각보다는 “운전하기 편하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운전을 하다가 도로 중간에 유턴을 하면, 불법이고 범죄이다. 하지만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 그럴까? ‘교통법규’에 유턴이 불법이란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턴이 법으로 금지된다면 ‘죄’가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이다. 아담 이후로 모세 시대의 사람들은 율법이 ‘없던’ 시절에 살았다. 그러니 율법을 어기는 일이 없었다. ‘법’으로 금지하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도 죄로 말미암아 벌을 받았다. 왜 금지하는 법이 없는데도 ‘죄’로 인하여 벌을 받았을까? 아담이 지은 죄 때문이다. 인류의 첫 조상인 ‘아담의 죄’가 대대로 인류에게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죄’가운데 태어났기 때문에 죄의 영향을 받는 것이다. 이것을 ‘원죄’라고 한다.
인간의 죄에 대하여 언급할 때 ‘원죄, 자범죄’로 설명한다. 이 말은 성경에 나오는 말은 아니다. 신학적인 용어이다. ‘원죄’(原罪, original sin)는 모든 죄의 원인이 되는 죄이다. 나무로 하자면 ‘뿌리’에 해당한다. 나무의 ‘뿌리’는 나무 전체에 영향을 준다. 뿌리에서 물과 영양분을 공급받아야 나무가 살 수 있다. 원죄는 마치 나무의 뿌리와 같다. 아담의 죄를 ‘원죄’라고 한다. 원죄는 전염성이 아주 강하다. 구제역처럼 전염성이 강하다. 해마다 구제역으로 우리나라가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고 있나? 몇 년 전에는 영암에서 구제역이 발생하여 전남의 22개 시군의 축산 농가를 대상으로 긴급 백신 접종을 실시했다. 다른 지방에서도 그렇다. 구제역으로 수많은 가축들이 매몰되고 살육처분을 당하고 있다. 그런데 죄가 이와 같다. 죄는 강한 파워를 가지고 있다. 빠르게 퍼지는 힘이 있다. 아담이 범죄하자 죄가 후대에도 전염되어 인류에 ‘왕 노릇’을 하게 되었다. 아담의 자손들이 죄에 오염되어, 태어날 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나게 된 것이다. 이것을 ‘원죄’라고 한다. 다음은 ‘자범죄’(自犯罪)가 있다. ‘자범죄’는 원죄와 다른 것이다. ‘자범죄’는 내가 지은 죄이다. 내가 죄를 지을 수도 있고, 안 지을 수도 있다. 선을 행할 수도 있고, 악을 행할 수도 있다. 그런데 스스로의 의지로 죄를 짓는다. 이것을 자범죄라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원죄’로 인하여 모든 사람이 ‘오염’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해도 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우리는 행동으로 지은 죄만 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생각으로’ 지은 죄도 죄라고 하신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 이미 죄로 물들었다. 그래서 ‘자신의 힘’으로는 죄를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죄에 대해서 ‘무디어진다’는 것이다. 죄를 지을 때 처음에는 죄의식으로 괴로워한다. 그런데 반복하다 보면 양심에 가책이 없어진다. 죄를 지으면서 담담해진다. 죄의식이 점점 사라진다. ‘죄’가 이미 그 사람을 다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성경에서 “죄가 왕 노릇한다.”고 말씀한 것이다.
그런데 다른 ‘한 사람’이 있다. 그 ‘한 사람’으로 인해 절망 중에 있던 인류에 희망의 빛이 비추었다. 17절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앞에서 말하는 한 사람은 ‘아담’을 말한다. 아담을 통해 죄가 들어와서, 사망이 왕 노릇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다른 ‘한 분’이 오셔서 생명이 왕 노릇을 하게 되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한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되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었다. 예수님 한 분의 승리로 온 교회 온 성도가 그 승리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예수님 한 분의 속죄로 온 성도들이 속죄를 누릴 수가 있게 된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고 우리를 위해 살을 찢기셨고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리신 것이다. 이 십자가의 은혜가 독자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바란다! 한 사람 아담을 통해 들어온 죄와 사망의 권세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소멸되는 역사가 있기를 원한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 능력으로 ‘생명이 왕 노릇’하며 ‘변화’받는 역사가 있기를 바라며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