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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헌 목사 (북교동교회) |
앤 설리반이 맹아학교를 최우등생으로 졸업하고, 시력도 회복한 어느 날, 신문 기사를 읽던 중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는 이 삼중고의 삶을 사는 ‘헬렌 켈러’라는 어린이를 돌볼 사람을 구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설리번은 자신이 겪었던 아픔을 기억하며 헬렌 켈러의 선생님이 되고자 결심하였습니다.
‘헬렌 켈러’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했기에 설리번 선생님은 그녀에게 남아있는 촉각 혹은 후각과 같은 모든 감각기관을 동원해 사물을 인지하게 했습니다. 돌을 헬렌 켈러의 손에 쥐어주며 단단하고, 매끄러운 것이 ‘돌’이라고 알려주었고, 꽃의 향기를 맡게 한 후에 ‘꽃’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설리번 선생님의 고민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정작 그녀를 힘들게 했던 것은 행복, 사랑과 같은 추상적 단어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특별히 헬렌 켈러에게 사랑이라는 단어를 꼭 가르쳐 주고 싶었던 설리번 선생님의 고민은 더욱 깊어만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설리번 선생님은 ‘헬렌 켈러’에게 ‘사랑’이라는 단어를 손에 써 주고 이 단어를 알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헬렌 켈러는 “저는 사랑을 이미 알고 있어요!”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사랑이라는 단어를 알고 있느냐는 물음에 헬렌 켈러는 “선생님이 처음 우리 집에 오셔서 저를 꼭 안아 주셨을 때, 이것이 무엇일까? 알 수 없는 기쁨이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며 그것이 사랑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설리번 선생님도, 헬렌 켈러도 서로에게 사랑이라는 단어는 단지 사용하지 않았던 단어이었을 뿐 이미 그 단어의 의미는 서로에게 깊이 각인 되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비록 ‘헬렌 켈러’는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볼 수 없는 고통을 겪는 삼중 장애인이었지만, 후에 그녀가 쓴 “3일 동안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책을 보면 우리가 감사해야 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헬렌 켈러’는 그 책에서 “만약 사흘간 볼 수 있다면 첫날에는 나를 가르쳐 준 설리번 선생님을 찾아가 그분의 얼굴을 바라보겠습니다. 그리고 산으로 가서 아름다운 꽃과 풀과 빛나는 아름다운 노을을 보고 싶습니다. 둘째 날엔 새벽에 일찍 일어나 먼동이 터오는 태양의 경이로운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영롱하게 빛나는 하늘의 별을 보겠습니다. 셋째 날엔 아침 일찍 큰길로 나가 부지런히 출근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표정을 보고 싶습니다. 점심때는 아름다운 영화를 보고 저녁에는 화려한 네온사인과 쇼윈도의 상품들을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와 사흘간 눈을 뜨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호남기독신문 애독자 여러분,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한 ‘앤 설리번’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큰 영광을 받으셨을 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도 하나님을 위해서 우리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며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