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포교회사의 공공성과 국제적 기준


  • 최은수 교수
    최은수 교수 
    남장로교 연구소 및
    아르메니아 조지아 연구소 대표



    1. 표절의 국제적 기준을 준수해야 한다.

    2. 목포 기독교 역사관은 차별화 되고 특성화 되어야 한다.

    3. 미 남장로교 전라도교회사의 식민지화 내지는 종속화 시도를 척결해야 한다.

     

    국제적인 관점에서 볼 때, 선구자적 연구를 한 글에 대해서 반박이면 반박, 인용이면 인용을 해야지 은근슬쩍 선구자적 연구자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전체적인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분위기를 풍기는데도, 자신만의 논지를 펴는 듯한 태도까지도 표절에 해당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필자가 오래전에 은퇴한 선교사님들의 유지를 받들어서 최초의 7인의 개척선교사 제위 중 주목받지 못하고 있었던 리니 데이비스 선교사와 매티 새뮤얼 테이트 선교사에 대한 글을 발표했었다. 그이후 후발 연구자들이 본 연구를 기반으로 미 남장로교 초기 역사에 대한 지평을 넓혀가고 있어서 보람을 느끼며 감사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의 디지털 아카이브 제작 연구팀을 비롯하여, 한일장신대의 임희모 교수와 미국 엘에이의 옥성득 교수가 대표적이다. 특히 미 남장로교 최초의 내한 선교사인 리니 데이비스의 미국내 활동, 파송과정, 한국 도착 및 초기 활동들에 대하여 단행본과 논문, 개인의 온라인 공간을 통해서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거의 모든 미 남장로교 전라도교회사 연구의 한계가 있는데, 기록된 원사료에만 의존하여 진행되어 왔다는 점이다. 기록된 원사료와 함께, 전라도교회사 연구의 필수적인 근거가 ‘교회사적 현장’이라는 굉장히 중요한 원사료가 있어야 하는데, 연구의 근본적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현장’의 생생한 생명력이 결여된 연구가 진정 교회를 위한 섬김의 학문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학제간 연구가 보편화 된 현실에서 그 어느때 보다도 ‘현장’의 실제는 필연적이다. 현장이 결여된 그 어떤 학문이라도 이론적, 실천적, 실용적 효과가 떨어진다. 교회를 섬기고 봉사하는 교회사가 중요한 이유가 현재 전개되는 학문 연구의 동향과도 일맥상통한다.

     

    한일장신대의 임희모 교수는 필자가 쓴 리니 데이비스 선교사의 연구를 제대로 인용하며 기록된 원사료에 근거하여 교회사 서술을 하는 듯 하다. 그러나, 엘에이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옥성득 교수는 한국사 관점에서 기독교 역사를 기록하면서 반드시 교정해야 하는 내용들을 논문과 개인적인 온라인 공간을 통해서 공론화 함으로 사필귀정이 필요하다. 그는 2024년에 발표된 ‘미국 남장로회 한국선교의 시작 재구성, 1891-1894’을 발표한 바 있다. 두 개의 원사료, 즉 기록된 원사료와 ‘현장’이라는 원사료를 근거로 조목조목 반박은 필자의 근간인 ‘최초이 내한 선교사, 리니 데이비스’라는 책을 통하여 정확하게 지적하여 교정할 것이다. 아울러 필자의 또 다른 근간인 ‘최마태 전기’를 통해서도 포괄적으로 바로 잡을 것이다.

     

    본 지면을 통해서는 향후 발간될 두 권의 책을 통해서 사필귀정 될 핵심적인 내용들을 언급한다.

     

    1. 옥성득 교수의 관점은 미 북장로교 소속의 언더우드 등의 선교사들이 미 남장로교 전라도교회사에 미친 영향이 크다는 논지를 증명하기 위해, 미 남장로교 한국선교의 시작에서부터 그 과정을 나열하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명백한 역사왜곡이며, 미 남장로교 전라도교회사를 미 북장로교 영향하에 두려는 학문적인 식민지화 내지는 종속적인 발상인 것이다. 필자의 기존 논문들과 저술들을 통해서 보아서 알겠지만, 두 개의 사료에 기초한 근거가 확실하고 합리적인 교회사 서술을 기술해 오고 있는 중이다. 필자는 한국사의 관점에서 기독교사라는 명칭으로 교회사를 서술한 적이 없다. 학문하는 시작 자체가 다른 것이다. 신학의 사명이나, 교회사의 사명도 교회를 섬기고 봉사해야 한다는 기본 원칙에서 단 한번도 어긋난 적이 없다. 이런 원칙도 철저하게 두 개의 원사료, 기록된 원사료와 ‘현장’이라는 원사료에 균형을 맞추어서 실증적이고 과학적으로 말이다.

     

    2. 필자는 옥 교수의 주장대로 언더우드 선교사가 초기에 했던 노력들에 대하여 반대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 주장의 근거가 약하고 두 개의 원자료 모두 합리적으로 과학적으로 논거가 정확하지 않다는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그는 언더우드 선교사의 역할이 미국 남부에서 지속되었다고 하는데, 두 개의 원사료에 근거해야 명확한 논거를 제시하는 것이 옳다. 필자는 노회 파송인 카메론 존슨이 자신의 글에서 배선 여사의 세례식을 가능하게 했다고 주장하나, 원사료도 검증과 교차 확인이 필요한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하여 명확한 원사료의 증명이 필요하다.

     

    3. 리니 데이비스 관련 논문에서도 그렇고 여타의 글들을 통해서 최초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기존의 사실들을 무시하고 왜곡하는듯한 언급은 극히 자제해야 맞다. 미 남장로교 소속으로 치면 최초로 한국땅을 밟은 사람들은 모두 3명이다. 미 남장로교 총회 파송이라는 정확한 기준으로 보면, 현재 이해되고 있는 7명이 맞다. 단어 표현과 기준을 어찌 잡느냐의 문제이지 근본적인 사실적 교정의 관점이 아니라는 말이다. 교회사 서술이 아니고, 한국사 관점에서 기독교사를 하기 때문에, 전체의 흐름을 간과하고, 지엽적인 것에 너무 많은 집중을 하는 듯 하여 현실적인 지적을 해 본다.

     

    4. 필자가 2025년에 출간한 ‘최초의 서양의사 드류 유대모’와 관련하여, 드류 선교사가 한국에 도착했을 당시에도 미국에서 얻은 시민권에 문제가 있었다는 증거를 들었다. 그랬더니 옥 교수가 기록된 원사료를 열심히 찾아서 본인이 운영하는 ‘옥성득 교수의 한국 기독교 역사’라는 공간에 ‘남장의 첫 의료선교’라는 제목으로 본인이 찾은 시민권 관련 기록된 원사료를 제시하며 또 필자를 거론하였다. 옥 교수가 제시한 시민권 관련 문서가 심각한 하자가 있어서, 드류 선교사가 시민권을 다시 신청했다는 기록된 원사료와 ‘현장’이라는 원사료를 통해서 원사료 비평을 향후 출판될 두 권의 책을 통해 할 것이다.

     

    5. 필자는 전라도사관을 개척하면서 미 남장로교 파송 선교사 제위가 전라도 민초들을 얼마나 높이고 아름답고 고상하다고 높였는지에 대하여 두 개의 원사료들을 통하여 합리적으로 과학적으로 근거를 분명히 하였다. 교회사학계에 먼저 입문한 필자의 견지에서 볼 때, 학문의 한 분야에서 아무리 많은 연구를 했어도 신학적 사고와 교회사적 사고의 긴장을 늦추면 곤란하다. 필자는 미 남장로교 선교사 제위의 성경적 원칙인 ‘행함과 진실함으로’에 큰 감명을 받고 교회사 서술의 객관적, 합리적, 실증적, 과학적 근거 제시에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옥성득 교수도 그리해야 맞고, 그리 할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 글쓴날 : [26-01-27 10:50]
    • admin 기자[honamc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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