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턴의 운동법칙과 만유인력의 법칙은 천동설(天動說) 지지자들을 침묵하게 하였으며, 천동설-지동설 논쟁을 끝맺게 하였다.
과학혁명은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1473-1543)가 1543년에 <천구의 회전에 대하여>를 통하여 주창한 지동설(地動說)로부터 시작하여, 아이작 뉴턴(1642-1727)이 1687년에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통하여 발표한 만유인력과 운동의 세 가지 법칙을 발표함으로써 마무리되었다고 할 수 있다.
(지구상 물체의 운동인) 지상계(地上界)의 운동과 (천체의 운행을 의미하는) 천상계(天上界)의 운동은 서로 다른 법칙에 의해 지배를 받는다고 알려져 있었던 당시에, 뉴턴의 운동 법칙과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지상계의 운동과 천상계의 운동을 통합적으로 완벽히 설명하고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 말하자면 뉴턴이 운동 법칙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날아가는 화살이나 떨어지는 돌의 운동과 달이나 목성의 운동은 서로 다른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고 생각했다.
당시의 사람들에게 뉴턴의 업적은 대단한 것이어서,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정신 활동도 뉴턴의 운동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될 것이라 생각하기도 하였으며, 심지어 인간사회도 뉴턴의 운동법칙과 같은 과학적 법칙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과학은 원리상 물질계(物質界)만을 다룰 수 있으며, 현재 또는 미래에 실험이나 관찰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의 정신(精神) 활동이나, 영적(靈的)인 현상은 객관적인 관찰이나 실험을 할 수가 없으며, 따라서 과학에서 다룰 수 없는 영역이다.
저명한 과학철학자인 칼 포퍼는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아들러의 개인심리학⋅마르크스의 역사이론이 사이비과학(pseudo-science)인 이유를 논증함으로써 과학과 사이비과학의 판별 기준을 제시하였다.
과학이라고 주장하는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은 과학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임상 자료의 많은 부분이 조작되었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참고도서: 글항아리 출판 <우상의추락>).
인간의 정신 활동이나 사회 현상은 자연과학의 대상이 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오귀스트 콩트(1798-1857) 같은 프랑스 사람은 인류발전의 삼단계를 (1) 신학적 단계 (2) 형이상학적 단계 (3) 실증적(과학적) 단계로 보았다.
콩트는 주장하기를, 원시시대(原始時代)인 신학적(神學的) 단계에서는 만물의 기원과 존재 목적을 초월적, 초자연적인 설명으로 해결하였으며 따라서 성직자들이 지배자로 군림하였다고 한다.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단계에서는 자연, 평등, 국민주권과 같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추상적이고 불분명한 개념들을 사용하였다고 말하면서,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그러한 개념들은 배제(排除; exclusion)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지막 단계인 실증적(實證的) 단계에서는 과거로부터 전해오는 모든 환상과 거짓을 거부하며 인간사회를 과학적 법칙을 따라 재조직(再組織; reorganization)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학혁명으로 촉발된 급속한 지식의 증가와 기술의 발전에 따른 유럽 사회의 질적인 변화를 목격한 당시 유럽의 지성인들은 종교(당시의 유럽인들에게 종교는 기독교)란 여자나 어린아이들처럼 지적능력(知的能力; intellectual power)이 떨어지는 사람이나 믿는 것으로 생각했다. 정상적인 지성을 갖춘 남자가 교회를 다니면 조롱거리가 되기가 십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