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재 목사 (전,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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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다.
한 부자가 있었다. 그는 무인도(無人島) 하나를 사서 값이 나가는 나무를 심고 희귀한 꽃들로 온 섬을 아름답게 조성했다. 그리고 그가 평소 좋아하는 토끼들을 풀어 살게 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토끼들의 눈빛이 흐려지고 고왔던 털에 윤기가 사라지면서 병든 토끼같이 보이더니 드디어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부자는 탄식을 하면서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병이 나다니…”
부자는 수의사를 불렀지만, 수의사 역시 고개를 저으며 왜 그런지 알 수가 없다고 돌아갔다. 부자는 지혜로운 랍비를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한 다음 왜 그러는지 이유를 물었다. 현자는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이리를 같이 기르라!”, 부자는 깜짝 놀라며 묻는다. “토끼를 다 잡아 먹으면 어떻게 해요?” 랍비가 말했다. “ 토끼의 병은 환경이 너무 좋아서 생긴 병이다. 이리와 함께 기르면 이리에 안 잡혀 먹히려고 힘차게 도망치며 살 것이고, 그리하면 긴장하여 눈빛이 빛나게 되며, 다리에 힘이 생기고 털에 윤기가 흐를 것이다.” 부자가 그렇게 하였더니 토끼들은 몇 마리 잡혀 먹히기는 했지만 모두가 건강해졌고 섬 전체에 생동감이 넘쳐났다는 이야기다.
우리 인간도 어려운 환경을 헤쳐 나온 사람이 보다 알찬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교훈이다. 내가 사는 동네 석성산을 오르내리다 보면 하늘로 쭉쭉 뻗은 소나무들보다 찌들면서 자란 소나무가 훨씬 아름답고 멋지다. 몸집을 키울 때마다 바위 틈 사이에서 용틀임하며 천신만고 끝에 구불구불하게 옆으로 뻗어 자란 줄기와 가지들이 더 가치가 커 보일만큼 그 나무의 선의 조화가 탄성을 지르게 한다.
찌듦의 연속에 포기할 법도 하지만 온갖 풍상을 겪어오면서도 푸르름을 잃지 않고 예술적 모습을 뽐내며 버티고 있는 그런 나무에게서 생의 경외감을 느끼기까지 한다.
불꽃같은 삶을 살다가 2009년 5월 19일 만 5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고 장영희 교수가 그런 역경의 삶을 살았다. 1952년 9월 14일 생인 장 교수는 생후 1년 만에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소아마비에 걸려서 평생 비장애인들의 차별과 싸워야 했다. 입학시험조차 보지 못하게 하는 대학들의 차별의 벽에 막힌 딸을 위해 아버지 고 장왕록 서울대 영문과 명예교수가 던진 질문에 서강대 영문학과 학과장 브루닉 신부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무슨 그런 이상한 질문이 있습니까? 시험은 머리로 하는 것이지, 다리로 보나요? 장애인이라고 해서 시험 보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서강대에서 영문학 학사, 석사 과정을 마친 그녀에게 국내 대학들은 다시 한 번 박사 과정 입학허가를 꺼렸다. 그녀는 결국 방향을 미국으로 돌려서 1985년 뉴욕주립대학교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그 해 귀국하여 세상을 떠날 때까지 24년 간 모교인 서강대학교 영문학과 교수로 후학을 가르쳤다. 안타깝게도 그녀의 시련은 장애인으로서의 생활에 그치지 않았다. 2001년에는 유방암, 2004년에는 척추암이 그녀를 엄습했다. 고난에도 주님의 뜻이 있다는 믿음과 자신의 의지로 이를 모두 이겨낸 그녀는 2008년 다시 찾아온 간암을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2009년 5월에 생을 마감하였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가 된 장영희 교수는 자신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시기 위해 넘어뜨린다고 나는 믿는다”라는 믿음으로 투병 중에도 희망을 버리지 않으면서 여러 권의 책을 냈다.
인터넷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글 “내가 살아 보니까”는 2009년 장 교수가 병상에서 쓴 마지막 책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의 한 구절이다.
내가 살아보니까, 사람들은 남의 삶에 그다지 관심이 많지 않다. 그래서 남을 쳐다볼 때는 부러워서든 불쌍해서든 그저 호기심이나 구경 차원을 넘지 않더라.
내가 살아보니까, 정말이지 명품 핸드백을 들고 다니든, 비닐봉지를 들고 다니든 중요한 것은 그 내용물이더라.
내가 살아보니까, 남들의 가치 기준에 따라 내 목표를 세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나를 남과 비교하는 것이 얼마나 시간 낭비고, 그렇게 함으로써 내 가치를 깎아 내리는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 줄 알겠더라.
내가 살아보니까, 결국 중요한 것은 껍데기가 아니라 알맹이인 것을,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이더라.
예쁘고 잘 생긴 사람을 TV에서 보거나 거리에서 구경하면 되고 내 실속 차리는 것이 더 중요하더라.
진지하게 공부해서 실력 쌓고, 재미있게 놀아서 경험 쌓고, 진정으로 남을 대해 덕을 쌓는 것이 내 실속이더라.
내가 살아보니까, 내가 주는 친절과 사랑을 밑진 적이 없더라. 소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한 시간이 걸리고, 그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하루가 걸리지만, 그를 잃어버리는 것은 평생이 걸린다는 말이더라.
내가 살아보니까, 남의 마음속에 좋은 추억으로 남는 것만큼 보장된 투자는 없더라.
이제 우리 나이면 웬 만큼 살아 본거지? 이제 우리 나이라면 무엇이 소중하고 무엇이 허망함인지 구분할 줄 아는 나이.
진실로 소중한 게 무엇인지 깊이 깨달아지는 나이.
남은 시간 동안 서로 서로 보듬어 안아 주고 마음 깊이 위로하며 공감하고 더불어 함께 지낼 수 있는 인간의 소중함을 깨우쳐 알아지는 나이.
그렇다. 그녀에게 소아마비라는 장애와 각 종 암이라는 형언 할 수 없는 역경이 인생에 감당하기 버거운 짐이었겠지만, 그녀는 그 고비마다 이를 지렛대로 삼아 영문학에 한 획을 그은 장영희 박사가 있게 한 역설(paradox)이 아니던가.
역경을 역설로 치환하는 자만이 인생의 가치를 높인다.
“거친 파도는 사공을 유능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