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은 과학주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을 과학으로 해결하려는 것이 과학주의이다. 과학은 인류가 발견한 탁월한 진리 탐구의 방법 중의 하나인 것은 분명하지만, 과학의 기능과 방법론, 과학의 탐구 대상, 과학의 한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사용한다면, 과학이 개인이나 사회에 재앙이 될 수 있다. 구약시대(舊約時代)에는 거짓 선지자(先知者)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듣기 좋아하는 달콤한 말을 하여 멸망의 길로 인도하였지만, 오늘날에는 과학을 빙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멸망으로 몰아가는 시대가 되었다. 성경을 공격하는 거짓 과학은 거짓 선지자처럼 사람들을 사망의 넓은 길로 인도한다. 마태복음 7장 15-16절(개역개정)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과학주의 시대 상황에서 추락하는 신학의 학문적 지위도 지키고, 교인들이 거리낌 없이 교회에 출석할 수 있는 명분을 부여해주면서, 종교(기독교)의 기능을 ‘윤리와 도덕’의 기능으로 재정의(再定意) 한 것이 ‘자유주의 신학’이다. 말하자면 자유주의 신학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용주의적으로 해석하여, 윤리 도덕 수준으로 격하시킨 것이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종교를 만들 목적으로 여러 문서를 편집하여 만든 문학작품이라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을 교인들에게 들려주면 어떻게 될까?
조용기 목사 저 <요한계시록 강해> 86, 87쪽을 인용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어느 자유주의 신신학(新神學)을 따르는 교회에서 목사님이 이렇게 설교를 했습니다. “여러분,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의 모세오경은 이스라엘 역사를 신화적으로 교훈적으로 기록한 책입니다.” 이 말을 들은 교인들이 생각하기를 ‘그래, 이스라엘의 신화적인 역사책을 내가 무겁게 들고 다닐 필요가 어디 있는가?’하며 성경에서 모세오경을 뜯어내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주일에 목사님이 또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성경에 있는 모든 예언서는 꿈을 많이 꾼 사람들이 자기 나름대로 이상한 꿈을 꾸어서 적어 놓은 것입니다.” 그러자 교인들은 “어쩐지 복잡하더라”라고 하며 예언서를 또 가위로 잘라 내어 버렸습니다. 그 다음 주일날 목사님이 또 “신약 성경의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은 사도들이 예수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종교를 만들려는 과대망상을 갖고 구전(口傳)하여 만든 책입니다”라고 설교했고, 교인들은 또 다시 복음서를 뜯어내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신약의 모든 서신서는 사도 바울이 교회를 일으켜 보려고 보낸 개인의 편지입니다”라는 목사님의 말을 듣고, 그것도 역시 잘라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요한계시록은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당했을 때, 너무 배가 고프고 고생을 하다가 정신적인 혼동을 일으켜 망상적으로 본 것을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라는 말을 듣고, 그것마저 뜯어내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남은 것은 성경을 포장했던 검은 가죽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교인들은 ‘교회에는 아무것도 없다’라고 생각하며 모두가 떠나가 버렸고, 교회에는 목사님과 가죽으로 된 성경 표지들만 남았다는 얘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