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재 목사
(전,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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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엉뚱한 화두인지 모르지만, 중국의 만리장성(萬里長城)이 천 년의 찬란한 역사를 이어왔던 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원인이 되었다는 이면사(裏面史, Behind History)를 아시는가?
서양 문명사에 있어 로마 제국의 존재감은 그 어떤 제국이나 문명도 비길 바가 되지 못할 만큼 강했다. 천 년 이상 존속하며 서양의 탁월한 문화유산을 조화롭게 흡수하고 받아들였으며, 정치, 건설, 문화, 예술 등 인류 문명의 모든 부분에 지을 수 없는 커다란 족적을 남겼던 그런 제국이 허망하게 무너진 이유가 중국의 만리장성 때문이라면 선뜻 납득하겠는가? 전혀 상관없는 것 같은 엉뚱한 답에 아마도 고개를 기우뚱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는 정사(正史)다. 브리테니카 백과사전의 편집자를 역임했던 저술가 찰스 벤 도렌(Charls ven Doren)은 그의 책 <지식의 역사>에서 로마제국의 멸망과 중국의 만리장성과의 관계를 설득력 있게 서술하고 있다. 만리장성은 오랑캐로 일컬어졌던 유목민 흉노족(匈奴族)의 침공을 막기 위해 중국을 통일한 진(秦)나라 시 황제(始皇帝)가 각 나라가 만든 북방의 요새와 성벽을 연결시켜 B.C. 214년에 총 길이 6,350km에 이르는 거대한 장성(長城)을 쌓았다. 이 거대한 장성이 얼마나 길던지 달에서도 보일 정도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와 같이 만리장성은 중국을 방어하기 위해 세웠지만, 이는 오히려 흉노족의 안전지대를 확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래서 이들은 만리장성 바깥의 안전한 지대에 결집하여 부족을 통일하고 군사 기술을 눈부시게 발전시켜 A.D. 1세기 경 장성을 넘어 한(漢) 나라를 공격했지만 실패하자 새로운 땅을 찾아 서진(西進)하여, 뜻하지 않게 로마 제국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흉노 기마 민족은 로마 제국 멸망의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한다. 결과적으로 흉노족은 만리장성 덕분에 서방으로 진출할 수 있었고 전광석화(電光石火) 거대한 로마 제국을 무너뜨릴 수 있었던 것이다. 진(秦) 왕조는 장성을 쌓을 때, 자신들이 쌓아 올린 만리장성이 이런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일하심은 종종 인간의 좁은 식견으로는 잘 헤아릴 수 없음을 본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는 것이다.
지난 편지에서 필자는 “교회와 세상을 살리려면 교회 영역을 넘어서 사회적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교회의 공공성(公共性)’ 확보 내지는 ‘대의명분(大義名分)’을 찾는 일에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것”과 “이제까지 한국 교회가 자신의 존속을 목표 삼아 사회로부터 분리된 택함 받은 사람들만의 집단이었다면, 이제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고 변화시키기 위해 세상 속으로 보내어진 공동체라는 본질을 추구하려는 ‘대전환(大轉換)’의 ‘의식변화(意識變化)’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좀 더 구체적인 사료(史料)를 가지고 설명할 필요를 느낀다.
먼저 초대 교회가 극심한 박해와 환난을 겪으면서도 놀랍게 부흥할 수 있었던 것은 ‘대의명분’이었다.
로드니 스타크(Rodney Stark)는 그의 책 <기독교의 발흥>에서 초대 교회 부흥의 배경을 설명하면서 도시 위생의 문제와 이민자의 유입으로 인한 갈등과, 그리고 천연두 바이러스로 수많은 시민이 목숨을 잃은 재난의 도시에서 지하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죽음을 마다하지 않고 보여 준 사랑의 헌신은 당시 로마 사회가 겪고 있던 고질적인 문제들에 대한 대안이 되었다. 2세기, 3세기에 걸쳐 모진 박해를 받고 있던 소수의 종교가 놀랍게도 로마의 국교가 되는 대의명분을 제공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당시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는 불법이었다. 그러므로 신앙 때문에 자신이 가진 모든 것, 심지어 목숨까지도 버려야 하는 박해 속에 살면서도 오히려 복음은 다양한 형태로 로마 전역으로 뻗어나가 A.D. 100년에 2만 5천 명 정도였던 그리스도인 인구가 A.D. 310년경에 이르러서는 2천만 명에 육박하였다고 스타크는 적고 있다. 로마 교회가 폭발적으로 내실 있게 부흥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세상 사람들에게 영혼의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먼저 로마 교회는 복음이 삶의 차이를 만들어 냈다. 그 실례가 2, 3세기에 있었던 두 번에 걸친 전 세계적인 전염병 대유행(Pendemic)에서 보여 준 교회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가 처한 상황에 가르치는바 너무 크다. ‘안토니우스 역병’(Antonine Plague)으로 불렀던 천연두는 A.D. 165년 겨울에 발생하여 15년 간 로마 제국 전역으로 퍼져 로마 인구의 4분의 1 이상이 목숨을 앗아 갔다. 당시 마르쿠스 아우레리우스 안토니우스(Marcus Aurelius Antonius) 황제 역시 이 역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251년 발병하여 262년까지 11년 간 전 로마를 강타했던 천연두 바이러스로 또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이 두 차례의 역병은 사회 전반의 시스템을 완전히 무너지게 했다. 당시 권력자와 지식인과 종교 지도자들은 역병이 던진 시대적 질문 앞에 대답을 주지 못하였으나 교회는 팬데믹이 던진 시대적 질문에 대답했을 뿐 아니라, 감염된 환자들을 헌신적으로 돌보았고, 곳곳에 쓰러져 있던 사체들을 수습하여 정중하게 매장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사랑을 세상에 보여 주었다. 당시 전염병으로 서로 방문하기를 꺼리고, 로마 정부도 넋 놓고 있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 22:28; 7:12)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좇아 정부와 사회가 해결하지 못했던 사회 문제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대안을 제시했기에 교회는 교회됨의 본질을 확고히 보여 줄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선진들이 삶으로 이루어낸 사랑의 실천은 가정과 민족을 넘어 낯선 민족에게 확장되었고, 그 자비와 긍휼의 강물은 온 세계인들에게 그 시대가 제공해 주지 못했던 사회적, 도덕적, 문화적, 경제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게 하였다. 이렇듯 어려운 시련과 가난 속에서도 세상을 변혁시켰던 힘의 밑바탕은 자신들이 누구이며 또 무엇을 위해 부름(Calling)을 받았는지 그 정체성(Identity), 즉 신앙의 원초적 힘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마 16:16). 또한 우리가 간과했던 16세기 종교 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전 유럽을 강타했던 흑사병(Pest) 바이러스 팬데믹으로 시련을 겪고 있을 때, 스위스 취리히의 개혁자 츠빙글리(Ulrich Zwingli, 1484-1531)를 비롯한 개혁자들이 2, 3세기에 보여 주었던 그리스도의 사랑을 유감없이 발휘함으로써 종교 개혁을 이룰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19세기 말 기독교 선교 초기의 한국 사회의 변혁 역시 그러하였고, 교회의 현존이 사람들에게 위로가 된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교회의 현존이 사람들에게 근심거리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비극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왜 그럴까? 교회가 세상에 존재하는 공공성, 즉 대의명분을 상실해버린 결과다.
이처럼 한국 교회는 2세기에서 4세기, 그리고 16세기 기독교 개혁시대와 구한 말 기독교인들이 당했던 환난과 박해 속에서도 교회의 본질을 잃지 않고 복음이 삶의 차이를 만들어 내었던 그 위대한 기독교 정체성을 잃어버린 결과다. 한국 교회는 현재 사회가 앓고 있는 병폐를 똑같이 앓고 있다. 이념과 갈등의 깊은 심연에 똑같이 갇혀 있는 것이다. 불신과 냉소와 증오가 가득 찼다. 세상을 향한 대안은커녕 갈라치기와 돌 던지기의 선봉에 서 있는 공포의 화신(禍神)과 같다. 한국 교회는 십자가 신앙으로 돌아서야 한다. 기독교 진리로 혁신되어 대의명분을 되찾아 실천할 때, 살아 있는 교회, 살리는 교회로 존재 이유가 될 것이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시 137:1)고 비탄의 노래를 부르며 통절했던 유다 백성들의 참회의 때가 바로 혁신(Innovation)의 시작이었던 것처럼,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역병이 교회의 본질과 사명을 깨닫는 계기가 되어 믿음의 선진들이 보여준 헌신과 당당함을 실천해야 하지 않겠는가? 만리장성의 비화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을 때가 바로 이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