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승 장로 (목포복음교회, 목포문화원 향토문화 연구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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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제목은 어느 부잣집 딸과 결혼한 사위를 향한 장모의 말이다. 장인의 회갑연에 온 축하객 중에 사위의 친구가 한사람도 없음을 보고 장모가 사위를 꾸짖는 말이었다. 그러면 친구는 누구인가?
故이희승 문학박사가 편저한 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친구는 ‘오래두고 가깝게 사귄 벗’이라 하였고, 벗은 ‘마음이 서로 통하여 친하게 사귄 사람’이라고 하였다.
요즘은 소위 ‘소주 한 잔 나누면 친구요 밥 한 끼 같이 먹으면 친구’가 되는 세태와는 분명이 다르다. 성인들의 명언에 의하면 진정한 친구란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자’라고 한다. 자기생애에 단하나 뿐인 목숨을 친구를 위하여 바치는 사람이 있을까?
이조 광해군 시절, 자기의 목숨을 담보로 사형대에 있는 친구 ‘나성룡’이 고향에 계신 어머님을 뵙고 오도록 도왔던 ‘이대로’의 우정이 있다. 또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관포지교’의 우정이 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 나라의 ‘관중’과 ‘포숙’의 우정이다. 지금 사형대에 있는 친구 포숙을 위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임금께 진언하여 사형을 면하게 하고 나라를 위하여 헌신하는 대신의 자리에 등용하게 한 관중의 이야기다.
지금같이 100세를 위하여 발버둥치는 이 세상에 ‘이대로’와 ‘관중’같은 우정을 가진 친구가 있을까?
또한 친구의 부모님 소천 시에 자기의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황망중인 친구를 대신하여 3일간의 장례일정을 주관하고 마무리하여주는 친구가 있을까?
지금부터 5년 전, 서울에서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김철수 씨는 고향 전라도 낙도에 사는 친구의 부친이 교통사고를 당하시어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의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낙도로 내려가서 장례를 잘 치루어 주었다. 요즘 세상에 돈 몇 푼 봉투에 넣어 조문하거나 그나마 바쁘다고 은행구좌번호 알려달라고 하며 조위금 몇 푼 송금하는 세상에 생각해볼 우정이다. 이에 필자 자신부터 부끄러워진다.
어진 친구를 사귀면 나에게 지혜를 주고 착한 친구는 나에게 편안함을 준다. 좋은 친구를 사귀면 나에게 행복을 주고 마음이 따뜻한 친구를 사귀면 나에게 포근함을 준다. 진실한 친구와 사귀면 나에게 믿음을 준다. 나를 위하여 매일 기도하는 친구를 사귀면 나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 당신에게 다른 사람의 험담을 하거나 이간질을 하는 친구가 있으면 당신은 적이 많아진다.
당신은 지금 어떤 친구를 사귀고 있는가? 당신은 친구를 위하여 무엇을 하고 있는가? 기도를 하는가? 안부를 물어보는 전화를 일주일이면 몇 번이나 하십니까? 친구와 친구가족의 굶주림을 알고 계십니까? 친구의 건강상태나 고통을 알고계십니까? 당신은 지금 종교의 울타리 안에서만 거룩한가? 울타리 밖의 생활이 더욱 진실 되고 이해와 배려의 사랑이 있는가?
얼 마전 모 일간지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래목회포럼 이사장 정성진 목사는 한국의 기독교 지도자들이 돈에 집착하고 권력과 명예에 집착하면 한국의 교회를 강물에 가라앉게 한다고 말했다. 우리 모두가 울타리 밖에서 생활이 모범이 되며 모든 사람에게 진정한 친구가 될 때 우리의 미래는 밝아지고 행복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