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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고난에 감추어진 섭리

2026-05-13 10:34 | 입력 : 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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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기 목사
홍석기 목사
범사회문제대책운동본부 사무총장
(상리교회)

서구 사회의 결혼 풍습 중에 시집가는 딸에게 엄마가 ‘진주’를 주는 전통이 있다. 진주를 영어로 ‘pearl’이라 한다. 그런데 진주를 의미하는 영어 표현이 또 하나 있다. ‘frozen tear’(얼어붙은 눈물)이라고 부른다. 어머니가 시집가는 딸에게 진주를 주는 이유가 있다. 시집을 가면 ‘흘려야 눈물’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집을 가면 눈물을 많이 흘릴 것이니 이를 각오하고 결혼하라는 의미가 담긴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눈물이 결국 ‘진주’라는 보석을 만들어낼 것이니 잘 참아내라는 뜻이 있다. 자연산 진주 가운데 ‘아비큘리데’(Aviculidae)라고 하는 특별한 ‘조개’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있다. 빛깔이 좋아서 비싸게 거래되고 있다. 이 조개 속에 모래알이 들어간다. 그러면 조개가 ‘나카’라고 불리는 물질을 만들어서 모래알을 싸 바르기 시작한다. 모래로 인해 조개가 너무나 고통스러우니까 ‘나카’라는 물질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나카’라는 물질은 조개가 흘리는 일종의 눈물이다. ‘나카’가 많이 덮일수록 진주가 더 커지고, 값도 올라간다고 한다. 그런데 ‘나카’라는 물질이 아주 조금씩 천천히 만들어지기 때문에 조개가 고통을 견디어내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하여 만들어지는 진주는 인공진주와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하지만 조개 속에 들어온 모래알이 모두 다 진주가 되는 것은 아니다. 모래가 몸속에 들어오면 조개에게는 두 가지 선택의 길이 있다. 하나는 ‘나카’를 만들어내서, 코팅 작업을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모래알을 무시해 버리는 것이다. 모래알을 무시할 경우 조개는 ‘나카’를 생산하기 위해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 대신 이 모래 때문에 조개가 병들고 결국은 일찍 죽게 된다.

고난을 당할 때 가지는 의문이 있다. “왜 나에게 고난이 있나?”하는 것이다. 내가 직접 고난을 당하지는 않아도 믿음이 좋은 분들에게 고난이 있을 때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반문한다. “왜 이런 아픔이 있는 것입니까? 왜 제 아들에게, 제 딸에게 이런 질병이 찾아온 것입니까?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잘만 사는데 왜 믿는 사람들이 이렇게 어려움을 당하는 것입니까?” 이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분들 중에는 시험에 들어 믿음에서 멀어지는 분들도 있다. 왜 고난이 있는 것일까? 믿음이 좋은 분들에게 왜 ‘질병, 가난과 아픔’이 있는 것일까? 그들의 믿음이 진실하지 못해서일까? 어딘가 문제가 있기 때문에 고난의 기간이 길어지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믿는 사람들에게도 고난이 있다. 믿음이 신실한 성도에게도 고난이 있다. 그것도 많은 고난이 있다. 고후 11:23-29에 보면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겪었던 고난을 말하고 있다. 자신이 당한 고난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고후 11:23,24) 바울은 아무 죄도 없이 감옥살이를 많이 했다. 매도 많이 맞았다. 여러 번 죽을 뻔했다. 같은 유대인에게서 마흔에 하나를 뺀 매(39대)를 다섯 번이나 맞았다. 이어지는 말씀에 보면 돌에 맞아 죽을 뻔했다. 배를 타고 가다가 3번이나 파선을 당하여 죽을 뻔했다. 길을 가면서 ‘강물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 거짓 형제의 위험’을 당했다. 수고와 고역에 시달리며 밤을 지새우고 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추위에 떨고 헐벗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이 얼마나 귀한 일인가? 그런데 정작 그의 앞길에는 고난의 가시밭이 펼쳐져 있었다. 꽃길은 아니어도 평범한 길이 열이면 좋은데.. 가시밭길이 놓여 있던 것이다. 하지만 바울은 낙심하지 않았다. 자신이 당하는 고난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착각에서 깨어나야 할 위험한 신앙이 있다. “예수님을 믿으면 반드시 복 받고 잘 살고 뭐든 잘 된다.”는 생각이다. “잘못된 신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질병에 걸린 것이고, 가난한 것이고, 안 좋은 일이 생기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은 위험하다. 물론 맞는 부분도 있다. 예수님을 믿으면 복 받고, 잘 산다.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이 부으시는 복을 받게 된다. 기도하면 응답받고 하는 일이 형통한다. 필자는 신실한 성도들이 예수님을 잘 믿고 형통한 복을 누리시기를 원한다. 기도하는 대로 응답받는 역사가 있기를 누구보다도 간절히 소망한다. 그러나 믿음이 신실한 성도들에게도 ‘고난’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믿음이 좋은 성도들에게도 고난이 따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고난을 주시는 이유가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 1가지만 살펴보고자 한다. 고난을 통해 ‘영광스럽게’ 하시기 위해서이다. 고난은 힘든 과정이다. 그러나 그 안에 감추어진 축복은 대단한 것이다. 롬 8:18은 ‘고난’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먼저 “현재의 고난은”이라 하였다. 이것은 그냥 고난이 아니라, 성도들이 당하는 고난을 말한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난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가지 알아야 할 사실이 더 있다. 18절을 계속 이어서 보면 이렇게 말씀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바울이 고난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내린 결론이 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고난은 반드시 영광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작은 영광이 아니라, 지금 당하는 고난과 비교할 수 없이 ‘커다란 영광’이 따른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 이유가 있다. 마치 딸이 시집을 갈 때 ‘얼어붙은 눈물’이라고 하는 ‘진주’를 주는 어머니의 심정과 같다. 고난의 뒤에는 영광이 있을 것이니 현재의 고난을 잘 이겨내라고 하는 것이다. 고난 중에 경험할 수 있는 진주 중에 하나가 위로이다. 하나님이 고난 당하는 성도를 위로하신다. 독자 여러분도 고난을 당할 때는 기쁘게 여기시기 바란다! 고난을 통해 나를 영광스럽게 하시며 내 속에 진주를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믿으시기를 원한다. 그리하여 고난 중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위로와 축복을 풍성히 경험할 수 있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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