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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수 교수 미남장로교 및 아르메니아 조지아 연구소 대표 |
목포와 신안 섬들을 복음화하는 데 헌신한 맥컬리(맹현리) 선교사로 대표되는 맥컬리 가문과 채터누가 제일장로교회(담임: 가브리엘 플러러 목사), 맥컬리 남학교, 그리고 맥컬리 여학교는 목포와 역사적인 유대를 형성하고 있다. 1950년대 맥컬리 남학교는 재학생 전원이 백인이었다. 2026년 현재 채터누가 제일장로교회를 섬기고 있는 토마스 맥컬리(Thomas McCallie) 장로에 따르면, 당시 맥컬리 남학교의 책임자가 자신의 삼촌인 스펜서 맥컬리였는데, 공군에서 전투기를 모는 한 공군 장교가 맥컬리 남학교에 자신의 양아들을 입학시킬 수 있는지 문의하였다. 스펜서 맥컬리는 백인 일색의 재학생 전원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한국인 학생의 입학을 묻는 투표를 진행했는데, 만장일치로 입학에 동의하였다. 이 한국인 학생의 입학을 시작으로 맥컬리 남학교에는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학생들이 입학하게 되었다. 그 한국인 학생의 이름은 주선환(Sun Hwan Chu)이었다.
주선환은 14세 무렵에 공산화된 북쪽 지역에서 목사인 부친과 모친이 공산주의자들에게 참혹하게 학살되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였다. 기적적으로 남쪽으로 피신한 주선환은 양아버지인 공군 장교를 통해 미국으로 입양되었다. 샌프란시스코 이민국 직원을 통해 공식 확정된 그의 생년월일은 1942년 12월 7일이었다. 그는 양부모와 아칸소주 로톤에 살다가 맥컬리 남학교에 입학하면서 테네시주 채터누가로 거처를 옮겼다. 1957년에 15세의 나이로 맥컬리 남학교에 최초의 외국인 학생으로 입학하였고, 1961년에 졸업하였다. 이후 그는 채터누가의 룩아웃 마운틴에 살던 멜린다 로렌스 양과 결혼하여 환, 마이클, 브리슨, 사마라 등 네 명의 자녀를 두었다. 주선환은 학사, 석사, 박사 학위까지 공부하여 재활 의학 관련 전문직 등 다양한 경력을 쌓았다. 그는 42세에 큰 교통사고를 당하여 사지가 마비되는 인생의 위기 속에서도 가장 모범적인 기독교인의 삶을 살았다. 주선환이 2021년 12월 17일에 79세의 일기로 하나님의 품으로 갔을 때, 그의 주변에는 9명의 손주를 포함한 모든 가족이 함께하고 있었다.